그들은 왜 '발견' 50년 후 노벨상을 받았나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21.10.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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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한국인 노벨과학상, 불가능한 꿈일까 ①10년간 노벨과학상 살펴보니

편집자주 한국의 노벨상 수상은 요원한 일인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후 과학상은 한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도 수상대열에 합류하는 가운데 과학계의 표정은 씁쓸하다. 노벨상 수상의 필수요건과 한국의 현주소, 과제는 무엇있지 짚어본다.

슈쿠로 마나베(왼쪽)와 프랜시스 페이턴 라우스는 각각 연구 업적을 완성한 후 노벨상을 받기까지 5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사진=AP/Nobel Prize 홈페이지.슈쿠로 마나베(왼쪽)와 프랜시스 페이턴 라우스는 각각 연구 업적을 완성한 후 노벨상을 받기까지 5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사진=AP/Nobel Prize 홈페이지.


#1. 지난 5일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계 미국인 슈쿠로 마나베 프린스턴대 교수는 1931년생, 올해로 만 90세의 고령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마나베 교수가 지구의 기후 변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식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마나베 교수는 1960년대 연구를 시작했으며, 1967년 발표한 논문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 증가와 지구 표면 온도의 상승 간 모델을 제시했다. 무려 50년 만에 노벨위원회의 인정을 받은 셈이다.

#2. 196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의 병리학자 프랜시스 페이턴 라우스는 고형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발견, 암이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처음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879년생인 그는 만 87세가 돼서야 노벨상과 인연이 닿았다. 하지만 바이러스 발암 사실을 처음 알린 라우스의 논문은 그가 만 32세였던 1911년, 일찌감치 '미국 의학회잡지'에 실렸다. 노벨상 수상까지 무려 55년이 걸렸다.



매년 10월 초 '노벨상 시즌'이 되면 한국이 언제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지에대한 기대감이 고조된다. 최근에는 '노벨상 후보군'에도 한국인 과학자들이 하나둘씩 이름을 올리지만 매번 아쉬움이 반복되고 있다. 과학계에선 이에대해 과도한 '노벨상 콤플렉스'나 조급증은 도움이 되지않으며 한국 기초과학의 성숙을 기다려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10년 노벨과학상, 연구부터 수상까지 31.2년
올해 5월과 6월 한국연구재단이 펴낸 '노벨과학상의 핵심연구와 수상연령' 및 '노벨과학상 수상자 통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간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79명(물리학상 27명·화학상 26명·생리의학상 26명)이었다.



그들은 왜 '발견' 50년 후 노벨상을 받았나
이들의 연구 활동과 수상까지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평균 37.9세에 핵심연구를 시작하고 △55.6세에 연구가 완성되며 △69.2세에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핵심 연구 개시부터 실제 수상까지는 평균 31년이 걸리는 셈이다. 최근에는 수상자가 고령화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업적부터 수상까지의 시간차가 짧은 사례도 없지는 않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예측한 중력파를 100년만에 관측한 연구진은 2년 후인 2017년에, 가설로만 존재했던 '힉스 입자'를 2012년 발견한 연구진도 이듬해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흔치 않은 사례다.

'성숙의 시간' 필요…"노벨상 후보, 수십명 보유해야"
노벨상노벨상
결과적으로 기초연구가 성숙되지않은 한국으로선 참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노벨과학상 단골손님인 북미와 유럽 선진국은 물론 21세기 이후 '강자'인 일본에 비해서도 기초과학 육성의 역사가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한국은 검증된 기술을 응용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채택해 기술력·경제력 측면에선 그들을 따라잡았지만, 여전히 기초 과학·기술 육성은 더딘 형편이다.


2000년 이후 일본이 무려 19명(일본 국적자 또는 일본계)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도, 일본의 기초과학 수준이 급상승했다기보다는 그간의 축적된 역량이 점차 인정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마나베 교수의 연구는 1960년대 업적이다. 우리나라는 기상학자도 없던 시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노벨과학상에 닿을 만한 인재와 업적이 조금 더뎌도 포기하지 않는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는기자회견에서 "(비록 수상하진 못했지만) 후보로 거론된 것 자체가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급 반열에 올랐다는 하나의 좋은 지표"라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그만큼 수준 높이 올라갔다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한국의 과학자들을 노벨과학상을 노릴 수 있는 직전 단계에 비단 한두명이 아니라 30명, 40명씩 올려놓는 게 중요하다. 수준 높은 과학자들을 발굴·격려하고 지원해 노벨상급 연구들을 다양하게 배출해야 한다"며 "단기간에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타' 과학자의 탄생이 아니라 노벨상에 도전할 만한 과학자의 '풀(pool)'을 넓혀야 한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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