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전 울고 배터리·조선 웃고..코로나에 엇갈리는 희비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김성은 기자, 최민경 기자, 오문영 기자 2021.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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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주력 산업의 연말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치솟는 운임과 반도체 생산차질에 가전·완성차 업계는 시름에 잠겼다. 반면 대규모 수주가 이어지고 있는 배터리(리튬이온이차전지)와 조선업계는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며 본격적인 실적 개선을 목전에 뒀다.

배터리와 조선업계의 수주 호조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시장을 리딩하면서도 투자 부담에 수익을 내지 못하는 배터리업계가 특히 반색하고 있다. 업사이클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조선업계도 철강재 등 원가 부담을 딛고 다시 고수익 모드로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반면 블랙프라이데이 대목을 앞두고 고운임 악재에 발목이 잡힌 가전업계와 역시 연말 판매량 회복이 절박한 완성차업계는 코로나19 충격파가 야속하기만 하다. 주력기업들이 일제히 타개책 마련에 들어갔다.

블프 대목 앞두고 '高 운임' 악재, K-가전 어쩌나
지난 15일 부산항 감만부두와 신선대부두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이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사진=뉴스1지난 15일 부산항 감만부두와 신선대부두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이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사진=뉴스1


선박 공급이 물동량이 비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국내 가전 업계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성수기 대목을 놓칠 위기에 원가 상승까지 겹쳐 실적 타격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2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해운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7일 기준 지난두 대비 54.35 오른 4622.51을 기록했다. 선박 공급이 줄면서 운임 상승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운임 상승에도 어떻게든 선박 자리를 우선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연말 블랙프라이데이부터 크리스마스 연휴까지 이어지는 최대 쇼핑 대목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되는 11월말까지 물건을 배포하려면 통상 9월 내에 배가 움직여야 한다. 양사는 물량 차질이 없도록 선박 업체와 선제적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자재값 급등으로 인한 가전제품 가격 상승도 악재다. 가전의 뼈대와 외관을 이루는 철강 원자재와 레진의 평균가격은 올해 상반기 지난해 대비 각각 14%, 16.2% 올랐다. 이에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모바일기기(HPP) 가격은 지난해 대비 3% 올랐다. LG전자도 냉장고·세탁기가 4.6%, 에어컨이 12.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원가 인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내외 가전 업체들이 연말 세일 시즌에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지 관심"이라며 "시장 지배력과 영업이익 등을 고려해 각 사가 내놓는 전략에 따라 실적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 예상했다.

車값까지 끌어올릴까…끝모를 동남아발 반도체 공급난
현대차 아산공장/사진=뉴스1현대차 아산공장/사진=뉴스1
완성차업계는 동남아발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종래엔 차 가격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날 관련 업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의 발단이 된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를 차지한다. 인피니온, NXP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업체의 생산공장들이 자리잡았다. 코로나 여파로 공장 가동률이 20%까지 떨어지면서 납품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다.

말레이시아 내 코로나 상황은 심각하다. 일일 신규 확진자는 지난 5월 2500명 수준에서 지난달 2만명까지 8배로 뛰었다. 전체 코로나 사망자는 2만4000여명으로, 상당수가 지난 3개월간 숨졌다.

문제는 말레이시아발 반도체 수급난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고, 끝나더라도 수급난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웡시우하이 말레이시아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은 "베트남·대만 등도 코로나 여파로 인한 충격을 받았다"며 "(말레이시아) 가동률을 최대로 끌어올려도 글로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국 이는 차량용 반도체 가격과 더불어 자동차 가격도 끌어올릴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달 신차 평균 가격은 전년 동월대비 10% 오른 4만3355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소비자 반발로 출시차에 대한 갑작스런 인상은 어렵겠지만 부품 공급난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인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배터리업계, 수주고 바탕으로 증설 가속도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배터리업계는 몰려드는 수주를 중심으로 일제히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터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수익을 낼 시점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잇단 수주에 힘입어 2025년 배터리 생산능력 전망치를 기존 예상치(200GWh)에서 더 높일 예정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지난 16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수주량이 늘고 있어서 수주잔고가 1TWh 조금 넘는 수준인데 여기서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당장 합작법인으로 손을 잡은 포드와 유럽에서 공장 설립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기차 업체들이 SK이노베이션을 찾는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파악된다.

1500GWh(180조원)의 세계 최고 수준의 수주잔고를 자랑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기준 연간 120GWh 수준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2023년 260GWh로 늘리는 증설을 추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과 손잡고 5조4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오하이오주·테네시주에 70GWh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차그룹과는 2023년까지 10GWh 규모의 인도네시아 합작공장을 짓는다.

75조원 수준의 수주잔고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SDI 역시 미국 진출을 통한 퀀텀점프를 계획 중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 리비안 등과 합작사 설립 발표가 가시적이다. 헝가리공장 증설에는 1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9월에 1년치 다 채운 조선3사, 돈 들어올 일만 남았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조선업계도 수주를 바탕으로 실적 개선에 나선다.

한국조선해양은 194억 달러를 수주하며 올해 수주 목표 149억달러의 130%를 달성했다. 2013년 이후 최대 규모다. 대우조선해양은 80억4000만 달러를 수주하며 목표치인 77억 달러의 약 104%를 달성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주 목표를 달성한 것은 2014년 이후 7년 만이다.

삼성중공업도 올 초 세웠던 목표치인 78억 달러를 수주했다. 수주 목표를 91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으며, 마무리 단계인 러시아 '아틱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하면 이르면 이달 말까지 연 목표의 114%인 총 104억 달러를 수주할 전망이다.

글로벌 물동량 증가와 운임 상승, 유가 상승,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등이 맞물리며 선박, 해양플랜트 발주로 이어졌다. 연내 카타르, 모잠비크, 나이지리아 프로젝트 등 대규모 발주가 쏟아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조선업계의 수주 잔고는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지난해까지 이어진 수주 절벽과 급격한 후판 가격 인상으로 인해 조선 3사의 실적 부진은 내년 상반기까지 유지될 전망이다. 계약부터 인도까지 2년 정도가 소요되는 조선업 특성상 올해 실적에 반영되는 물량은 선가가 낮았던 2019년에 수주한 물량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이 떨어지면서 내년 상반기 후판 가격은 인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선가도 오르고 수주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어 내년 하반기부턴 실적이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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