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에게 놀라려면 아직 멀었다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1.09.11 10:18
글자크기
사진제공=넷플릭스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D.P.'의 조석봉이 폭주하는 과정은 그를 연기한 조현철의 배우 인생에 있어 오래토록 회자될 명장면이다. 만화를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이었지만, 계속된 선임의 가혹 행위로 분노의 화신이 되어 버린 그가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자신의 목에 방아쇠를 당겼을 때 그 총알은 석봉보다도 시청자 가슴에 먼저 날아들었다. 이는 안타까움, 슬픔, 연민, 동정심, 회의감 등 각종 무거운 감정의 잔재들을 남기며 조현철이라는 배우의 얼굴을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2010년 자신의 영화 연출작 '척추측만'으로 연기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조현철은 이 작품으로 '서울독립영화제 2010' 심사위원 특별 언급 및 '제4회 대단한단편영화제' KT&G 금관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찍으며 종종 빈자리 메우기 식으로 작품에 출연하던 것이 그의 연기 시작이었다. 이후 자신의 영화뿐 아니라 상업 영화에서도 단역을 맡더니, 2015년 '차이나타운' 출연을 기점으로 배우의 색을 더 강하게 띠게 됐다. 그렇게 연기를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하드캐리라 할 만한 'D.P.'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D.P.'에서 석봉은 조용하고 어딘가 지질한 구석이 있어 늘 선임들에게 괴롭힘 대상 1순위다. 이와 동시에 그는 제 코가 석자임에도 영창에 들어간 후임 준호(정해인)가 걱정돼 초코파이를 남몰래 쥐어주던 착한 구석이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괴롭힘이 지속되면서 석봉의 영혼은 시들어갔고, 급기야 함께 보초 서던 선임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며 참아왔던 울분을 폭발시킨다. 이후 폭주기관차가 된 석봉은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준호의 진심에 정신을 차리지만, 손에 묻힌 피를 돌이킬 수 없음에 절망하며 결국 황망한 선택을 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사진제공=넷플릭스


대중의 기억에서 조현철은 드라마 '호텔델루나'에서 찬성(여진구)의 부자친구였던 산체스,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무지의 잔혹성을 지녔던 지적장애인 홍주로 많이 곱씹힌다. 그는 그간의 작품 속에서 늘 주인공 옆에서 달뜨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신스틸러'가 아닌 가급적 주연이 남긴 여백 안에서 배경처럼 움직이며 공백을 메웠다.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생활감 묻어나는 말투는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작품마다 늘 새로운 분위기를 냈다. 그렇게 튀지 않는 호흡으로 캐릭터를 끌고가면서도 영화 '이웃사촌'에서 의식(오달수)의 집에 몰래 잡입해 짧은 찰나로 웃음을 유발해야 했던 장면처럼 시선이 집중될 때에는 아낌없이 재능을 증명했다.

이렇게 호불호없는 연기를 대중들에게 차츰 선보인 다음, 그는 서사의 파고가 큰 'D.P.'의 석봉으로 수면 아래 있던 호()의 능력을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한 없이 다정한 학원 선생님이자 훈훈한 선임에서 갑자기 후임의 뺨에 따귀를 내리꽂는 잔혹함으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고, 더 나아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D.P.'의 최대 수혜자'라는 호평이 쏟아질 만큼 그는 '다시 보고 재발견됐다'는 평가로 한 단계 더 도약했음을 보여준다. 천천히 그리고 볼 때마다 신선하게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증명해온 조현철은 드디어 설 수 있는 판을 크게 넓혔다. 석봉 보고 놀란 가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를 계속 발견하며 놀라게 될 일은 이제부터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