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ㅣ 단골집을 찾는 이유 ①

머니투데이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7.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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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tvN사진제공=tvN



"소리 없이 강하다." 예전 한 자동차 광고의 문구다. 시즌2가 방송 중인 케이블채널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2)을 표현할 때 딱 들어맞는 문구다.

‘슬의생2’의 팬들이 들으면 성에 차는 않는 평가일 수 있다. 시청률만 봐도 그렇다. 시즌1은 6.3%에서 시작해 14.1%로 마무리됐다. 시즌1의 후광을 업고 시작한 시즌2의 1회 시청률은 10.0%. 첫 걸음부터 두 자릿수였다. 그리고 13.2%까지 치솟았다. 이제 막 중반을 넘어섰는데 이미 시즌1 최고 성적의 턱 밑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반응만 놓고 보면, 시즌1에는 못 미친다는 느낌이 강하다. ‘슬의생2’를 둘러싼 시끌시끌한 반응이 덜하다. 음반 차트만 봐도 그렇다. 시즌1 때는 조정석이 부른 ‘아로하’를 비롯해 전미도, 조이 등이 부른 OST가 차트를 휩쓸었다. 하지만 30일 오전 10시 현재는 가온 차트 기준, 조정석의 ‘좋아 좋아’가 10위로 톱10 내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슬의생2’를 본다. 왜일까?

#왜 화력이 줄었나?

한계효용의법칙이라는 경제 개념이 있다. 이를테면 더운 여름날, 시원하고 먹음직스러운 빙수 첫 입을 먹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숟가락을 넣을 때 느끼는 만족도는 첫 술만 못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먹고 나면 숟가락을 내려 놓는다. 충분히 배가 부르고, 만족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빗대 시즌1의 ‘슬의생’이 핫플레이스였다면, 시즌2의 ‘슬의생’은 단골집이라 할 수 있다. 시청률 6%대로 시작하며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날 때는 새로운 ‘첫 맛’에 반했다면, 이제는 이미 그 맛을 알고 있는 이들이 다시 그 맛을 느끼고 싶어서 꾸준히 찾고 있는 셈이다. 안정된 시청률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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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급력이 줄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즌1에서 긴장감 넘치던 남녀 간 화학작용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시즌1에서는 이익준-채송화, 안정원-장겨울, 김준완-이익순, 양석형-추민하가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촘촘하게 그려졌다. 특히 막바지에 지방 분원으로 내려간 채송화에게 이익준이 넌지시 마음을 고백하고, 의사를 그만두고 신부가 되겠다는 안정원의 마음을 돌린 장겨울, 커플로 이어진 김준완-이익순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설렘 지수를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해소되고 나니 1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방송된 ‘슬의생2’의 소위 ‘텐션’이 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슬의생2’는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의학드라마의 표피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장르물의 범주로 포함시킬 전문직 드라마는 아니다. 의술은 거들 뿐. 결국 그 안에 담긴 인간미와 희로애락이 중심이다. 그리고 ‘사랑’은 희로애락의 정점을 찍는 감정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의학, 법학드라마를 두고 각각 의사, 법조인이 사랑 나누는 드라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상열지사는 언제든 인기를 끌듯, 남녀 관계가 드라마를 극적으로 이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아이리스’는 이병헌-김태희의 사탕 키스, ‘시크릿가든’은 현빈-하지원의 거품 키스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변곡점이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OST의 음원 성적은 왜 기대치를 밑돌까? 시즌1의 ‘아로하’, ‘내 눈물 모아’,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등은 차트 정상을 밟으며 장기간 톱10을 장악했다. 그래서 시즌2 방송을 앞두고 방송가가 아니라 가요계가 잔뜩 긴장했다는 후문이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태풍일 줄 알았는데 미풍이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누구보다 널 사랑해’, ‘비와 당신’, ‘나는 너 좋아’ 등을 리메이크했고 장범준, 트와이스, 이무진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참여했다. 이를 두고 기존 곡들에 비해 "덜 대중적이다"는 반응도 있고, 오히려 "상업성보다는 극의 흐름을 더 고려한 선곡"이라는 평가도 있다. 음원 순위 성적이 하락한 이유를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 선곡의 이유일 수도 있고, 드라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톱50으로 범위를 넓히면 ‘슬의생2’의 OST는 여전히 음원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이어 ‘슬의생’ 시리즈를 선보이는 신원호 PD-이우정 작가 콤비의 유사한 OST 리메이크 패턴을 두고 한계효용의법칙이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깊이는 깊어졌다?

‘슬의생2’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환자 중심 에피소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두 엄마의 애틋한 교감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언제 심장 공여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엄마는 서로에게 기댄다. 일면식도 없지만 아픈 아이를 둔 엄마라는 공통분모만으로도 그들은 가져온 반찬과 과일을 나눠 먹는다. 한 아이가 먼저 심장을 받게 되자, 다른 아이의 엄마는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그리고 얼마 뒤 목놓아 운다. 내 아이가 먼저일 수 없었던 상황 앞에 놓인 어쩔 수 없는 어미의 심정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난 후 다른 한 아이에게도 공여 심장이 주어진다. 이번에는 먼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던 엄마가 더 크게 운다. 제작진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별다른 장치를 넣지 않는다. 굳이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지도 않는다. 실제 병원에 가면 소아병동 한 켠에 앉아 있을 것 같은 두 배우에게서 진정성을 끄집어낸다.

이 외에도 가정폭력이 의심되지만 이를 차마 고백하지 못하는 여성 환자, 결국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부모와 그 부모 앞에서 눈물을 삼키며 사망선고를 해야 하는 의사, 식도 폐쇄 현상을 겪고 있는 아이를 임신 중인 산모 등 이우정 작가가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현장에서 갓 길어 올린 듯한 실감나는 이야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원래 사람의 인생이 그렇다. 평지의 연속이다. 순탄하게 걷다가 비교적 완만한 언덕을 무리없이 넘는다. 인생을 좌지우지할 큰 산이 앞에 놓일 경우가 몇 번이나 될까? 하지만 대다수 드라마는 매번 주인공을 큰 산 앞에 던져놓는다. 그러니 "현실성이 없다"고 타박하면서도 그 자극과 과도한 설정에 중독된 듯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막상 보고 나면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슬의생2’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들이 겪는 이야기들은 우리 곁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왜 주인공 무리들이 밥먹는 장면을 자주 보여줄까? 원래 밥은 하루 세 끼 먹는다. 가장 자주 하는 일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소통하고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마무리는 항상 합주와 노래다. 합주는 인간의 교감을 뜻한다. 그리고 노래는 힐링을 안긴다. 이 제작진은 노래가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다. 강요하지도 않는다. 조용히, 넌지시 함께 보고 듣고 위로를 얻자고 손을 내미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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