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 독설하던 김구라 라디오 DJ로 발탁한 그 PD…왜 그랬을까

머니투데이 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 2021.07.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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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변이 귀를 쫑끗 세우고 왔습니다-7]]라디오 프로그램 '볼륨을 높여요' '가요광장' 등 제작한 윤선원PD

편집자주 인터넷과 각종 전자기기의 발전으로 팟캐스트나 1인 방송의 시대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날로그의 느낌이 강한 '라디오'를 여전히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등산을 하면서 듣습니다.라디오 세대라면 1994년 연기자 이봄이 진행한 '볼륨을 높여요', 2004년 방송인 김구라가 맡았던 '가요광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남변이 이들 방송을 제작하며 수많은 청취자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윤선원 KBS PD(프로듀서)를 지난 21일 만나고 왔습니다.

남민준 명예기자(남변): 시대가 많이 달라 졌다. 한참 활동하던 1990년대나 2000년대와 현재의 라디오는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나.

윤선원PD(윤선원): 내가 한참 활동하던 90년대부터 개인적으로 변화의 조짐을 느꼈다. (내가 공감하는 변화의 조짐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는 (굳이 표현하자면) '전문적인 DJ'가 사라져 가던 시절이었다. 김광한씨, 김기덕씨, 이종환씨, 배철수씨 같은 분들은 개인들의 역량만으로도 프로 하나를 너끈히 끌고 갈 수 있는 분들이었지만 청취율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미 듣고 있는 청취자들을 재미있게 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청취자를 유인할 수 진행자가 필요했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 정도. 당시는 팬덤문화가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고.
개인적 역량이 있는 DJ들 보다 유명인이 DJ를 많이 하다 보니 전문 DJ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작가의 역할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남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총대 맸다'는 표현을 알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김구라(2004년, 가요광장)와 메이비(2006년, 볼륨을 높여요)를 어떻게 인기 라디오 프로의 DJ로 발탁하게 됏나. 특히 김구라씨는 인터넷 방송에서의 독설로 반대가 많았을 것 같은데.

윤선원: 앞서 말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는 역량 있는 DJ가 원맨쇼를 할 때 가장 재미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라디오 DJ를 '직업'으로 할 만한 사람들을 계속 찾았다. 그렇게 찾은 사람이 김구라, 메이비, 변기수였다. 이본은 내가 AD였을 때 이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구라.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김구라.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남변: '직업으로 DJ를 할 만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떤 것인가.

윤선원: 함축적 표현과 독특함이다. 김구라도, 메이비도, 변기수도 그게 있었다. 한정된 시간을 사용하는 방송의 특성상 함축적 표현으로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게 가능했던 사람들이었다.
뭔가를 직업으로 한다는 말은 그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전문 DJ가 활동하던 시절과 달리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직업적 능력이나 개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아쉽다.
남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를 듣고 싶다.

윤선원: 첫 눈이 오던 날이었는데 그 날도 DJ를 찾으려고 이것 저것 들어 보다가 우연히 김구라의 인터넷 방송을 들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라디오에서 '첫 눈 오는 날 데이트'나 '교통정체, 안전운전'을 얘기하던 것과 달리 김구라씨는 '눈 온다, 저 눈이 다 돈이면 좋겠다'는 오프닝 멘트를 하더라. 그 표현 속에 그의 성향, 그가 처한 경제사정이 모두 함축되어 있었다. 독특하고 함축적이었다.
메이비는 작사가로 유명했지만(이효리씨의 '10Minutes'을 작사했습니다) 스스로 가수이기도 했다. 1집 앨범을 내고 홍보차 담당PD인 날 찾아 왔는데 날 본 첫 마디가 웃으며 '배가 나오셨네요'였다. 앨범 홍보를 하러 온 사람의 첫 인사로는 굉장히 특이했지만 그 속에 안부인사, 친근함, 홍보 등의 표현이 모두 담긴 느낌이었다.
변기수는 함축적인 '면박' 속에 독특함이 있었다. 분명 '면박'의 형식인데 기분 나쁜 면박이라기 보다는 여러 의미가 담긴 기분 나쁘지 않은 의사표현이었다.


남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DJ는 단순히 원고를 잘 읽는 사람이 아니라 청취자와 공감하고 청취자의 반응을 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보았다. 인터뷰의 앞 부분에서 라디오를 metaverse(메타버스, 아주 간략히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의미합니다)라고 표현했는데 설명을 좀 부탁한다.

윤선원: 원고를 안 틀리고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성우나 아나운서 분야에서 더 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전부터 라디오 DJ는 음성을 통해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청취자의 머리 속에) 청취자가 상상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굳이 그걸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metaverse다.
서세원의 경우, 한창 라디오를 진행할 때 '빨간 바지를 입고 가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걸 청취자들이 재미있어 했다. 혼자 '빨간 바지가 도대체 왜 재미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빨간 바지'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청취자는 머리 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공간에서 빨간 바지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남변: TV와 라디오는 어떤 차이가 있어 라디오 PD가 되었나. PD가 된 계기가 있었나.

윤선원: 음악을 좋아해서 대학 시절 서클 활동도 했었다. 심지어 보컬이었다(그는 Y 대학의 '소나기'라는 서클 출신입니다). 음악을 좋아 하긴 하는데 음악을 직업으로 할 정도로 잘 하지는 못 해 음악을 많이 접하는 라디오 PD가 되었다.
TV는 자료화면이든, 그래픽이든 그림이라는 게 없으면 방송을 못 하지만 제대로 만든 라디오 프로는 그 자체가 청취자 스스로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하나의 세계를 제공하면서 현실적 제약을 사라지게 한다. 화면 자체가 한계로 작용할 수 있는 TV와는 다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아주 재미나게 읽은 소설을 영화나 TV로 보았을 때의 실망감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가 우주라 하면 우주'다(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유명한 대사입니다).

남변: 요즘도 음악을 하고 있는가.

윤선원: 취미로 드럼, 피아노, 기타를 연주 해 본다. 할 때 마다 느끼는 건데 음악은 천재의 영역이다(웃음). 내 생각에 음악을 직업으로 하려면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위로 5년, 아래로 5년의 범위 내에는 '나보다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돼야 한다.그래도 힘들다(웃음).

남변: 이전과 달리 상대적으로 라디오의 자리가 많이 좁아 졌다. 라디오가 부흥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윤선원: '라디오'는 기술의 단계에 따라 사용된 수단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굳이 전통적인 의미의 '라디오'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나 싶다. 라디오의 역할, 그러니까 '대중이 즐길 거리'를 제공하면 된다. 대중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상상 속의) 공간이나 환경 같은 것.

남변: 라디오 PD를 오래 했으니 많은 연예인들과 교류가 있었겠다. 최근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 있나.

윤선원: 함께 방송해서 잘 된 사람들 보다는 좀 잘 안 됐던 친구가 생각이 많이 난다. 변기수는 분명 전문 진행자로서의 능력이 있었는데 함께 할 당시에는 능력 만큼 잘 되지 않은 것 같아 좀 미안했는데 요즘 그가 하는 골프 방송이 잘 되어 미안함이 덜 하다. 개그맨 박휘순도 참 재능이 있는 사람인데 그 재능이 반 정도만 터진 것 같다, 자신보다 많이 어린 아리따운 신부를 얻지 않았나(웃음).

남변: 요즘 재봉틀로 옷을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윤선원: 장애인 오디오 컨텐츠를 만드는 업무와 KBS 제3라디오의 프로를 맡고 있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라디오 PD로서 창작욕구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하다(웃음). 창작욕 때문이다.
한 동안 인공지능에 빠져 주가의 흐름을 예측하는 AI를 만들었고 요즘엔 옷을 만든다. 전형적인 중년의 아저씨다 보니 바지를 사도 수선을 해야 하는데 수선을 해도 이쁘지 않다(웃음). 더군다나 대량생산하는 기성복은 무난할 수 밖에 없지 않나. 내가 입고 싶은 소재로 내 하체에 맞는 나의 바지를 만들려고 한다(웃음).

남변: 마지막 질문이다, 꿈이 있나.

윤선원: 멋진 요트를 타고 바다를 항해해 보고 싶다(웃음). 난 공영방송에서 일 하는 사람이다. '공영'이라는 의미 속에 정치적 가치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비용이나 이윤의 문제로 할 수 없는 부분을 담당할 수 있어야 '공영'방송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좀 더 넓고 심도 있게 '공영'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참여하고 싶다.
윤선원 PD(왼쪽)과 남민준 명예기자. 2021년 7월2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사무실에서. /사진=남민준  윤선원 PD(왼쪽)과 남민준 명예기자. 2021년 7월2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사무실에서. /사진=남민준
[인터뷰 후기]

요즘 그가 재봉틀에 매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인지 그를 만날 때 그의 바지가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그가 만들어 입은 바지의 과감한 무늬와 색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다소 독특했던 그의 등장과 인터뷰 내내 유쾌하고 거침 없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개성 넘치는 동네 형'과 얘기한 느낌이 들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가 라디오 PD로서 라디오에 관해 얘기할 때, 라디오 DJ에 관해 얘기할 때, 라디오를 metaverse로 표현할 때, 필자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으면서 쌓아 온 전문가의 깊은 통찰과 철학을 보았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며 생각할수록 '라디오를 매개로 한 청취자의 metaverse'라는 그의 표현은 그가 라디오 PD라는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참으로 적확하고 낭만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 필자가 본 코너를 통해 독자께 전하려 했던 것은 조화롭게 병존하는 인터뷰이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엿보이는 그의 삶과 생각이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쌓은 직업인으로서의 비범한 모습과 다른 한편 거대한 세상을 채우고 있는 보통인의 평범한 모습이요.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 하는 누구든지 조화롭게 병존하는 상반된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그의 얘기를, 우리의 얘기를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인터넷서 독설하던 김구라 라디오 DJ로 발탁한 그 PD…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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