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두언, 못다 이룬 꿈/ 정두언 외 21인 지음/ 소종섭 엮음/ 블루이북스미디어/ 1만7000원.
"그는 소신이 서면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박형준 부산시장 추천사 中)
진영을 떠나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깊고 따뜻하게 각인된 고(故) 정두언 전 의원이 2년 만에 우리를 찾아온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주로 떠올리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따뜻함' '자유로움' '상처'다.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맞섰고 안주와 타협보다는 변화와 새로움을 좇은 자유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세상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책에는 이런 그의 삶이 녹아 있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 나의 젊은 날'은 미공개 회고록이다. 정 전 의원이 2017년쯤 엮은이에게 전달한 A4 용지 100페이지 분량의 초안을 손본 것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과 1980년 행정고시 합격, 국무총리실에서 15년간의 공직생활, 정치권 입문과 16대 총선 낙선,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만남까지 담겼다. 안타깝게도 원고는 2002년 7월2일 정무부시장으로 서울시에 첫 출근하던 때의 기쁨을 마지막으로 끊긴다.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2019년 7월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19.7.17/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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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혁신은 보수적 가치의 외연 확대를 의미한다. 자기 혁신이 없는 이념은 도태된다 (중략) 의무, 절제, 양보, 희생, 봉사, 기여, 책임을 실천하는 보수혁신에 앞장서야 한다. 보수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자기 희생이다." 책 속 고인의 10여년전 외침은 오늘날도 절실하다.
'3부 정두언과 나'에서는 남은 자들의 마음에 여전히 살아 있는 고인을 만날 수 있다. 21명이 썼다. 전현직 정치인들부터 언론인, 공직자, 체육인, 배우 등 다양하다. 학창시절, 공직생활, 정계, 방송계 등 고인과 인연을 맺은 삶의 무대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고인을 향한 애틋함과 그리움은 한결같다.
21명 저자가 꺼내놓은 추억의 조각에서는 그의 '멋'이 읽힌다. 김용태 전 의원은 고인이 늘 하던 말을 이렇게 옮겼다. "정치하는 사람이 옳은 말, 옳은 일을 하면 누구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런저런 눈치 본다고 살아남을 것 같아? 그래봤자 길게 못 가. 길게 간들 그게 무슨 정치냐. 그런 정치할 바에는 다른 일 하고 말지."
정 전 의원이 마지막까지 떠올린 건 '꿈'이었다. 고인이 떠나기 바로 전날 우연히 가족과 함께 고인을 만나 소주 한잔을 나눈 배우 김승우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꼬막비빔밥을 억지로 먹으면서 그가 내 아이에게 한 질문이 생각난다. '네 꿈은 뭐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한탄이 부쩍 늘어나는 요즘이다. 바람처럼 살다간 자유로운 영혼 정두언, 그가 못다 이룬 꿈은 살아 있는 자들의 숙제로 남았다.
◇정두언 전 의원은?
경기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했다. 2000년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을 역임한 뒤 정계에 입문해 16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 선거캠프에 몸담았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며 전략가의 능력을 발휘했다. 이명박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서울 서대문을에서 3선(17, 18, 19대) 의원을 지냈다.
개국공신이었지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등 주류와 다른 길을 걸었고 2012년 저축은행 사태 와중에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20대 총선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음반을 내고 시사프로그램 출연 등 방송 활동도 활발히 했으며 일식집을 경영하기도 했다. 본인의 우울증을 숨기지 않고 알렸다. 2019년 7월 16일 자택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