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여는 美, 동맹국 경제도 웃게 할까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21.06.30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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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성장률도 끌어올릴 전망…신흥국에는 역풍 위험도

사진=AFP사진=AFP


막대한 경기부양책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수요 증가가 전세계 경제 성장도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 확대가 금융시장을 통해 다른 국가에 역풍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갑 여는 美, 전 세계 경제 회복 가속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약 6조 달러에 달하는 부양책을 기반으로 전 세계 재화를 소비하며 세계 경제 회복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8년 금융위기 후 전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했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끄는 국가였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이 엔진 역할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미국은 소비가 3분의 2를 차지하는 경제인데 당시엔 미국의 많은 가계가 빚을 갚느라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 국면에서의 상황은 달라졌다. 물론 중국 경제는 현재도 강력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8.5%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신용 억제를 통해 안정에 방점을 두며 하반기에는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소비와 수입이 늘어나며 전 세계 수출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무디스 추산에 따르면 미국의 가계는 현재 2조6000억달러 규모의 '초과 저축'을 갖고 있고, 이 돈의 상당 부분을 수입 재화 구매에 쓸 것으로 전망된다. HSBC는 미국이 2026년까지 매년 1700억 달러씩을 더 수입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역대 최대인 8760억달러로 전망했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조정한 미국의 소비지출은 올해 10% 증가가 예상되는데, 실현된다면 이는 1946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미국이 전세계 재화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의 2배가 넘는다. 2017년 딜로이트의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최종 소비지출의 27%는 미국의 소비가 담당했으며, 중국의 비중은 11%였다.

OECD는 미국 정부가 최근 승인한 부양책만으로도 향후 1년간 중국, 일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5%포인트(p) 높아지고 캐나다, 멕시코의 GDP 성장률이 1%p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달 OECD는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80년대 이후 가장 높은 6.9%로 지난달 상향 조정했다. 또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5.8%로 높여 잡았다. 달성된다면 이는 1973년 후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영란은행 전 통화정책위원 아담 포센은 WSJ에 "미국 재정정책은 이전의 평화로운 시기에 볼 수 없었던 매우 큰 규모"라며 "유럽, 중국, 일본이 미국의 재정 부양책에 어느 정도 무임승차하게 될 것"이라 했다.

WSJ는 미국의 내수 호황이 동맹국들과의 경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도 짚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지난 10년간 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제 및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어왔다고 평가한다. 이런 상황이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거란 진단이다.

연준 청사 /사진=블룸버그연준 청사 /사진=블룸버그
미국 호황의 이면…신흥국에 부는 역풍 커질 수도
반면 미국의 영향력 확대가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역풍도 있다. 특히 미국이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통해 미치는 파급 효과가 중국보다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자본시장이 상대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이 작은 반면 미국 달러는 전 세계 채권 및 외환보유고의 핵심 자산이다. 그만큼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나 달러 움직임은 다른 국가에 연쇄적 영향을 끼친다.

이 점은 미국발(發) 경제회복이 다른 국가들에 부작용으로 다가올 가능성을 시사한다. 많은 국가들이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꼽히는 리스크다. 중국 주도 호황이 원자재 가격에만 불을 붙였다면 미국발 호황은 소비재 전체 물가를 전 방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팬데믹 기간 노트북, 휴대폰 같은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금속 가격은 물론 운송 비용 등이 급등했다.

물가상승은 신흥국에 골칫거리다. 브라질·러시아 등은 수년 내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을 겪고 있다. 자국 통화 절하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두 국가 모두 올해에만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아직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금리를 올리면 자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택한 선택지다.

미국이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돌려 달러 강세와 채권 금리가 오르는 상황도 다른 국가들의 경제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중순 연강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023년 말 이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자 미 달러는 다른 주요 통화대비 강세다.

특히 부채가 많은 신흥국들은 금리, 즉 차입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이 부담이다.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현재까지 미국으로의 자금유입을 억제해왔지만, 연준이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돌리면 많은 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신흥국들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연준이 계속해서 초저금리를 유지한다면 이는 전 세계 자산가격 버블을 심화시킬 수 있다. WSJ는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특히 부동산 등 자산의 잠재적 버블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긴축에 대한 신호를 발신해왔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아이웨어 업체 사필로 그룹의 앙겔로 트로치아 최고경영자는 "우리는 중앙은행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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