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참외로 억대 농부된 성주 김경목씨 "죽기 살기로 했죠"

뉴스1 제공 2021.06.2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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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 빌려 하우스 임차…유기농·스마트팜으로 승부
4년차부터 억대 부농으로 올라서…"작물만이 나의 주인"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편집자 주]

8년 전 귀농한 김경목씨(54)가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TOP 3 농장'에서 부인 박귀옥씨(51)와 수확한 참외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2021.6.26 © 뉴스18년 전 귀농한 김경목씨(54)가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TOP 3 농장'에서 부인 박귀옥씨(51)와 수확한 참외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2021.6.26 © 뉴스1


(성주=뉴스1) 정우용 기자 =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이곳에는 8년 전 귀농한 김경목씨(54)가 'TOP 3 농장'에서 부인 박귀옥씨(51), 아들 주현군(14)과 함께 억대 농부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참외로 유명한 성주는 억대 농부들이 수천명. '길거리 개도 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을 만큼 부자 농부가 많은 이곳에서 김씨는 귀농 5년차에 3억원에 가까운 조수입을 올렸다.

김씨를 만나 귀농에 성공하기까지의 사연과 노력, 어려웠던 점 등과 후배 귀농인들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 막내의 아토피가 심해 선택한 귀농

대학에서 수산경영학을 전공하고 12년간 농협은행에 다니다가 자영업을 하기 위해 사표를 낸 김경목씨는 경기 고양 일산에서 중·고등학교 보습학원을 경영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두부공장, 식품 유통회사 등 사업에도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2013년 때마침 귀농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당시 6살이던 막내의 아토피가 심해지자 아이의 아토피 치유를 위해 귀농을 선택했다.


단돈 100만원을 가지고 혼자 귀농해 그 돈으로 월세 방을 얻었다. 뒤이어 아내가 당시 고3이었던 큰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막내만 데리고 내려 왔다.

죽기 살기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돈이 없어 부모님에게 2000만원을 빌려 비닐하우스 4동을 임차해 참외농사를 지었지만 첫해 조수입이 3000만원이었다.

농약·박스·모종·접목비 등을 빼고 나니 순수익은 1500여만원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옆집 참외하우스에서 공짜로 일해주고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우면서 따라서 농사를 지었다.

옆집에서 물을 주면 따라 물주고 수정을 시키면 따라 수정시키고 했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옆집과 자신의 하우스의 규모가 다르고 토질과 수압도 다른 데 똑같이 하니까 좋은 작물을 생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절망에 빠졌다.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어린 자식과 같이 고생하는 아내가 있어서 그럴 수도 없어 다시 용기를 냈다.

부모님께 다시 2000만원 받아 인근 하우스 9동을 또 임차했다.

인부를 따로 쓸 여유가 없어서 13동의 하우스에서 아내와 함께 둘이서 악바리처럼 '죽어라'고 농사지었다.

농사는 정말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니까 그래도 수입은 늘었다. 2년차 농사를 짓고 나니 조수입 9200만원에 4200만원의 순이익이 발생했다.

그때 참외 농사 '고수' 한 분이 유기농법을 권유했다. "땅 힘이 살아야 좋은 소출이 생기고 품질이 좋으면 제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생물 배양법부터 배웠다. 질소, 칼륨, 칼슘 등을 미생물 액비로 만들어 밭에다 뿌리고 참외 정식(온상에서 재배한 모종을 정한 밭에다 일정한 규격으로 심는 일) 거리를 1m로 넓게 했다.

관행농법으로 정식거리를 33cm로 하던 주변에서는 '미터 농법'을 하는 그에게 "미쳤다"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막상 수확을 해보니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30%정도 늘고 품질도 뛰어나자 '미쳤다'는 말이 쑥 들어가고 오히려 재배 방법을 물어 오기 시작했다.

마침 이웃에 15동의 하우스가 임차로 나왔다. 욕심이 생겼다.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낸 수익으로는 생활하기에 빠듯했다. 부모님께 다시 찾아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5000만원을 더 빌려 달라"며 사정했다.

부모님에게 빌린 5000만원으로 하우스 15동을 더 임차했다. 28동의 하우스 중 토질과 여러 조건을 비교해 9동은 처분하고 19동의 하우스에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었다.

수확기에는 인부도 3~4명을 들여 수확과 분류, 포장 작업을 했다.

농사를 지은 지 4년차에 드디어 1억원을 버는 '억대 농부'가 됐다. 그 해 조수입은 1억8000만원을 올렸고 순이익은 1억원이 넘었다.

대규모로 농사를 지으니 비용도 절감됐다. "이대로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어 5년차에 7동의 하우스를 새로 짓고 6동의 하우스를 추가로 임차해 32동의 하우스에 농사를 지었다.

그 해 조수입 2억8000만원에 1억7000만원의 순이익을 내 한꺼번에 부모님에게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지난해 16동의 하우스를 더 임차해 지금은 48동의 하우스에서 참외 농사를 짓고 있다. 더 이상의 조수입과 순수입은 공개할 수 없단다.

귀농 4년차에 참외농사로 억대농부가 된 김경목씨가 하우스에서 참외를 수확하고 있다. 2021.6.26/© 뉴스1귀농 4년차에 참외농사로 억대농부가 된 김경목씨가 하우스에서 참외를 수확하고 있다. 2021.6.26/© 뉴스1
◇ 최고의 품질을 생산하는 성주 참외 선택

귀농을 결심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 작물 선택을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조사를 하다가 외가 어른들이 살고 있는 성주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을 생산하는 참외를 재배하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오이, 배추, 호박 등을 재배하려고 생각했는데 성주참외가 가진 장점을 알아보고 참외로 정했다.

참외는 보통 4화방(한 넝쿨에서 4번 수확)까지 수확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수확이 가능하고 출하시기에 대체 과일이 마땅히 없어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외국에 참외를 먹는 나라가 별로 없어 FTA의 영향도 잘 안받는 점도 장점이다.

작목을 정하고 나서 농협 참외 공판장에서 시세를 가장 잘 받는 농민 10여명을 수소문해 무작정 찾아다니면서 "참외 재배 기술을 알려 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관행농법을 하는 사람들은 기술전수를 꺼렸다. 이유가 있었다. 참외를 재배하는 토양이 다르고 물 수압과 비닐하우스 시설 설비 등이 다 달라서 잘못 가르쳐 줬다가 한해 농사를 망치면 원망을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할 때 보고서는 잘못 쓰면 고쳐서 다시 쓰면 되지만 농사는 한번 잘못되면 1년 소득이 날아간다.

◇ 스마트팜으로 대농을 꿈꾸다

2017년도에 군청에서 "생산량이 27.9% 늘고 고용·노동비와 병해충·질병은 각각 16%와 53.7%씩 감소한다"며 "스마트팜(IoT 등을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생육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농장)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한전에서 "농지는 수익성이 없어 인터넷 설치가 곤란하다"고 했다.

한전에 가서 "통신망 라인만 깔아 주면 자비로 무선 단말기를 설치하겠다"고 하니 그때서야 통신 라인을 깔아 줬다.

4000만원을 들여 48동의 하우스에 6대의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각 하우스마다 CCTV를 달았다.

지금은 휴대폰으로 원격 영상을 보면서 모터 펌프 작동과 비닐하우스 개·폐, 비료시비, 관수 시설, 온도 조절, 방범, 조명 등을 할 수 있어 수확시기에만 인부들을 고용해 출하작업을 하고 있다.

2015년 선진 농가를 지정해 귀농인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성주군 귀농인 현장실습지원 멘토·멘티사업에 멘티로 참여해 기술 전수를 받았다.

시키는 대로 해보고 열심히 배워 보고서도 쓰고 해서 교육 잘 받았다고 농촌진흥청장상도 받았다.

통상 5년차까지는 귀농인으로 분류돼 지원을 하는데 멘티 4년차에 멘토가 됐다.

열심히 노력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미터 농법', '유기농법'을 시도해 품질을 향상하고 수확량을 늘려 인정을 받은 것이다.

◇ 조금 손해본다는 심정으로 주민대해야

현지 농민과의 관계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정말 어렵다. 농촌은 공동체 사회의 성격이 강해 개인주의에 물든 도시인들이 귀농하면 반드시 주민들과 부딪친다.

처음에는 농지 임차도 어려웠다. 이제 막 와서 농사지으니 어설퍼 보이고 임대하면 임대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귀농하고 남들보다 제일 먼저 밭에 나갔다. 새벽 3시면 출근해서 잡초 뽑고, 밭 정리하고 작물에 물 주고 하루 종일 일했다. 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현지 농부들이 다 집에 가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첫 해에 그렇게 하니까 마을에서 "김씨가 출근하는 것도 못보고 퇴근하는 것도 못봤다. 신기한 놈이다"고 소문이 났다.

수확을 해서 돈이 생기면 다른 것 다 제치고 하우스 임차료부터 갚았다. 그랬더니 나이가 많아 농사를 못 짓게 된 어르신들이 "내 하우스에 농사지어 봐라" 며 임차를 권했다.

김씨가 농사를 짓고 있는 참외 선별기가 있는 하우스 땅은 이 인근에서 가장 좋은 땅이다. 동네 주민들이 임차해 달라고 해도 아무에게도 안 주다가 막상 김씨가 임차하게 되자 동네 사람들과 잠시 서먹해진 일도 있었다.

현지에 동화하는 방법은 항상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조금 손해 본다는 심정으로 이웃 주민을 대해야 한다. 내가 다니는 이 땅도 남의 땅이고 내 집까지 들어가는 동안도 남의 땅을 밟고 다닌다.

어느 정도 형편이 되면 마을 대동회에 찬조도 하고 어버이날, 명절 때는 친부모 모시듯이 알뜰살뜰 챙겨야 한다. 동네 주민을 만나면 무조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시키면 마지못해 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큰 돈 드는 것 아니다.

김씨는 "이장님께 정말 잘해야 한다. 군청하고 조율도 해주시고 각종 정보를 많이 알려 주신다" 며 "귀농인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김경목·박귀옥씨 부부가 참외를 수확하며 활짝 웃고 있다. 2021.6.26 /© 뉴스1김경목·박귀옥씨 부부가 참외를 수확하며 활짝 웃고 있다. 2021.6.26 /© 뉴스1
◇ 새벽 3시에 시작하는 참외 농사

여름에는 새벽 3시에 참외밭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해가 뜨고 난 뒤 수분이 빠져나가면 과일의 저장성이 떨어져 해가 뜨기 전에 참외를 수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가 뜨기 전이니 헤드랜턴을 켜고 참외를 수확해야 한다. 그 다음에 각 하우스를 다니면서 참외의 상태를 살피면서 초세(草勢)를 본 뒤 해뜨기 전에 필요한 칼륨, 칼슘 등의 액비를 물에 타 공급한다.

해가 뜨고 나면 새벽에 수확한 참외를 세척하고 분류한 뒤 포장 작업을 한다. 당일 수확한 참외는 전량 당일 출하한다.

성주는 참외를 생산하면 무조건 경매를 봐줘서 판매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얼마나 시세를 높게 받을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대규모로 농사를 지으면 공판장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작목을 선택할 때 집중화된 곳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지자체에서 전략적으로 미는 품목은 각종 지원도 많고 판매도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성주군 참외수출단지에 일부 납품하고 서울 가락시장, 성주 참외 공동사업단에 납품하고 있다.

귀농 후 부부사이가 너무 좋아졌고 막내 아토피도 다 치료됐단다.

귀농 초기에는 24시간 부부가 붙어 있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모든 게 다 공유가 돼 오히려 더 편해졌단다.

부부는 작목반 모임도 같이 가고 여행도 항상 같이 다닌다. 혼자서는 놀 수 없기 때문이다.

◇ 귀농은 '정신적 여유'…땅부터 사서는 안돼

김씨는 귀농을 '정신적 여유'로 정의한다. 그는 "귀농하면 일단 사람들한테 안 시달린다. 농약상은 물론, 농협에도 내가 늘 '갑'" 이라며 "참외에만 '을'이다. 작목만이 나의 주인인 셈"이라고 말했다.

성주처럼 참외가 집적화가 된 곳에서는 참외에만 정성을 다하면 나머지는 다 자연이 돌려준다는 것이다.

후배 귀농인에게는 "농사나 지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면 절대 성공 못한다"며 "귀농해서 성공하기는 식당 창업해 성공하는 것 보다 힘들다.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장 다닐 때와 달리 매달 수입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우선 경제적 문제가 해결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 년이 지나야 수입이 생기는데 그 사이에 가족 간에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며 "일 년 농사가 실패하면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땅을 사서 농사를 짓지 마라. 땅부터 사 놓으면 그 땅이 작물과 안 맞으면 옮기지도 못하고 큰 곤란에 처한다" 며 "농업기술센터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고 기술을 습득한 다음에 시설을 임차해 농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코로나에 걸리면 한해 농사 망쳐…하우스 방문객 사절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로 많이 힘들었단다. 코로나에 걸리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노지 농사를 지으면 자리를 좀 비워도 되지만 시설하우스에서는 매일 온도도 맞춰줘야 하고 환기, 액비 관리 등 하루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1명이 감염되면 가족들에게 옮겨질테고 가족들이 다 격리 수용되면 1년 농사는 한방에 날아간다. 실제로 그런 예도 있었다.

코로나로 외국 인력 수급 자체가 안돼 인건비가 2배로 뛰었고 가족들이 최대한 동원돼야 하는데 코로나에 감염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하우스 방문객도 차단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코로나 때문에 수입농산물 수급이 잘 안되고 다른 과일도 작황이 안좋아 참외 시세가 20% 오르는 바람에 수입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

◇ 농과원 등록 토지만 지원하는 제도 개선돼야

김씨는 "농지원부 기준으로 지원하던 정부의 각종 지원사업이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 등록된 토지에만 지원하도록 돼 있어 임차한 귀농인은 농사를 짓고도 지원을 못 받는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주 입장에서는 농관원에 임대 토지로 등록하는 순간 '자경 농지'로 인정받지 못해 토지를 거래할 때 양도세를 면제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귀농인이 임차한 토지를 농관원에 등록한다고 하면 임차를 아예 안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귀농인은 토지를 임차해 농사를 지어도 농관원에 토지 등록을 못하기 때문에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현실적으로 귀농인이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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