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은 지난 4월 반도체 긴급 대책 회의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맹'을 못박았다. 회의에 참석했던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잇따라 화답했다.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고, TSMC는 당초 120억달러(약 13조4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을 포함해 추가로 최대 5개의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 정부의 지원 등에 업은 인텔과 마이크론의 약진도 삼성에게는 부담이다. 파운드리 시장이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의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미세공정 기술에서 3나노 경쟁을 벌이는 삼성과 TSMC에 비해 인텔은 7나노 생산에도 애를 먹고 있지만 대규모 자본력과 정부의 파격 지원을 겸한 인텔이 조만간 격차를 좁힐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도체 질서 흔들 힘 있는 미국, 불안요소 여전한 삼성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안감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반도체 시장 질서를 흔들만한 힘을 갖췄다는 데서 비롯된다. 업계에서 특히 우려하는 부문은 반도체 투자에서 70~80% 비중을 차지하는 장비 분야에서 미국이 갖고 있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다.
미국의 장비 시장 지배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로는 일본이 거론되지만, 미국은 일본과 반도체 동맹을 맺으며 장비 시장 독점 구조를 만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백악관에서 가진 첫 정상회담에서 중국 견제에 힘을 합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반도체 공급망 공동 투자를 약속했다.
반도체장비의 국산화율이 20%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같은 변화는 국내 기업에 불안요소일 수밖에 없다. 2019년 7월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는 화학 분야의 기초 역량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어느정도 극복이 가능했으나,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장비 분야의 독립은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업계에서 나온다.
이광만 제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미국이 당장에 반도체 장비를 무기로 내세워 삼성을 견제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면서도 "작은 공급망 문제일지라도 적잖은 손실이 야기될 수 있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자립화는 이뤄내야 할 과제"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