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바람이 오히려 유가를 올린다"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1.06.16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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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사진=AFP


세계적으로 청정에너지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되레 유가가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유 생산을 위한 투자 지출이 위축되면서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에너지 공급업체들 사이에서 원유 채굴에 대한 투자가 급감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해 화석연료 투자를 줄이고 친환경 투자를 확대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석유 공룡들이 원유 생산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유 수요가 계속 강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까지 원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서 원유 수요 증가세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중국의 경우 5월 휘발유 수요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5월에 비해 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공급량 조절을 이어가면서 유가 오름세는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은 14일 배럴당 71달러를 넘어서면서 2년 반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8개월 사이 유가는 2배나 뛰었다. 옵션 시장 일각에서는 내년 말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기록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자 일각에선 원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품 투자회사인 괴링&로젠와츠의 레이 괴링 매니징파트너는 "원유 소비가 생산 역량을 뛰어넘으면서 앞으로 수년 동안 유가가 치솟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현재 상황은 향후 석유 파동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드매킨지는 "석유업계의 탈탄소 움직임이 의도치 않은 가격 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원유 부족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원유 생산 공룡들이 여전히 대량의 원유 공급을 의도적으로 보류하는 상황인 데다, 유가가 급등할 경우엔 투자자들이 에너지 업계에 대한 자본 지출 원칙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점점 꺼리는 월가의 분위기는 에너지 공급업계가 장기적인 생산 프로젝트에 나설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던진다고 WSJ는 지적했다. 에너지 자산관리회사 톨터스의 롭 섬멜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투자자들이 에너지 업계에 말하는 바는 뚜렷하다. 돈을 많이 쓰지 말라는 것이다"라면서 "이사회와 경영진은 주주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기간 이어진 저유가와 친환경 압박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에너지 회사들의 원유 시추를 위한 지출은 사상 최대였던 2014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난 것으로 집계된다. 베이커휴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원유 시추공 수 역시 2018년 말에 비해 60% 줄었다. 크리스찬 말렉 JP모건체이스 애널리스트는 현재 세계적인 원유 공급 투자 계획은 2030년까지 예상되는 수요를 맞추는 데 필요한 수준보다 6000억달러 부족하다고 추산한다. 원유 생산을 늘리기 위한 추가 투자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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