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한국은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1.06.15 04:44
글자크기

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 교수김남국 교수


우리나라는 1960년대 약소국에서 시작해 중진국을 지나 중견국가를 지향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G20(주요 20개국)의 일원, 그리고 G7(주요 7개국)회의에 참가하면서 명실상부한 선진국가가 됐다. 선진국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의 분야에서 앞선 발전을 성취한 국가를 가리킨다. 우리가 이미 선진국에 도달했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목표가 가능할까.

최근 등장하는 선도국가 개념은 규범적 관점에서 좋은 정책이나 제도를 솔선수범함으로써 다른 국가들이 참고할 수 있 는 모범을 제공하는 나라를 뜻한다. 코로나19(COVID-19)가 세계시민들에게 가져온 영향 중 하나는 유럽과 미국 같은 선진국들에 대한 환상의 붕괴다. 이들이 팬데믹(대유행) 대처 과정에서 보여준 무질서와 무원칙은 선진국의 실상에 대해 회의를 갖게 했다.



선도국가는 근대화론이 상정하는 단선적 발전 과정에서 시간상 앞선 단계를 의미하는 선진국과 구분된다. 시대정신을 선취해 다른 국가들이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부국강병을 지상 목표로 설정한 강대국과도 다르다. 또한 거버넌스의 모범을 통한 영향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국력을 세계에 투사하는 패권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선도국가는 기존에 존재하던 선진국, 강대국, 패권국을 넘어서 스스로 다른 나라에 모범이 되는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선한 방향으로 국제질서를 이끈다는 새로운 개념이다. 단순히 앞선 성공의 길을 따라가면 되던 추격의 시대가 끝나고 진정한 추월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주장은 이와 같은 역사적 전환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다.



볼테르는 세계사를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진보로 해석했고 서구역사에서 선도국가의 사례로 그리스, 로마, 이탈리아, 프랑스를 제시했다. 헤겔은 정신의 자유 확장 및 상승 과정으로 역사를 이해했고 프랑스혁명에 대한 공감과 함께 프로이센을 선도국가로 제시했다. 19세기와 20세기 1, 2차 산업혁명 시기에 선도국가는 단연 영국과 미국이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한국은 민주주의 미래, 산업구조의 전환, 문화적 가치의 창출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선도국가로서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의 민주주의 경험과 가치를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와 포퓰리즘의 확산을 저지하고 한국적 모범의 영향력 확산을 통해 국제규범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만큼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의무를 이행하고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과정에서 탄소중립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국제압력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새로운 문화적 가치 창출이라는 차원에서 다양한 K모델은 이미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정치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가 지향할 미래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불평등, 이념 갈등, 세대교체, 지역 균열의 특수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중요하지만 이런 현실문제 해결과 함께 글로벌 전략과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거시적 시각의 필요성도 잊지 않아야 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