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할 때 "살려줘" 한 마디면…어르신 지키는 AI '수호천사'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21.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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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AI(인공지능)는 인간의 따뜻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AI는 최근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부작용 등 각종 논란에 휩싸여있다. AI뿐만 아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로봇, 생명과학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올해 U클린 캠페인은 '사람 중심의 지능정보기술'(Tech For People)을 주제로 새로운 기술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윤리적 문제와 해법을 제시한다.

"아리아~살려줘" 독거노인 구한 AI…혈압·혈당관리도 '척척'

[u클린 2021] ③사람 중심 AI: 노인 돌봄

한 어르신이 AI 스피커를 활용해 인지 훈련을 하고 있다.(광주시 제공) (C) News1한 어르신이 AI 스피커를 활용해 인지 훈련을 하고 있다.(광주시 제공) (C) News1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정보통신기술(ICT)이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지난달 광주에서 인지기능 저하 증세를 앓고 있는 70대 독거노인 김모씨가 락스(표백세제)를 마시고 쓰러진 채 집에서 발견됐다. AI와 IoT 기반의 비대면 건강관리 프로그램으로 김씨를 보살펴 온 지역 복지기관은 평소와 달리 김씨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자 담당 요양보호사에게 즉시 연락을 취했고, 쓰러져 있던 김씨를 119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발견 당시 김씨는 락스의 유독성분 탓에 위와 식도의 일부가 녹아 내려 상당히 위독한 상태였다고 한다. AI 기반 IoT 시스템의 즉각적인 모니터링과 관계기관의 발빠른 대응, 조치가 소중한 생명을 구한 셈이다.

사람 중심 AI…디지털소외·건강취약 '노인 돌봄' 화두로
AI 기술 경쟁에 뛰어든 전세계 주요국은 물론 국내외 빅테크 기업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사람 중심 AI'다. AI의 기술적 진화와 적용·이용 과정에서 AI가 수반하는 윤리적 문제를 극복하고 '사람'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는 게 인간 중심 AI의 기본 가치다. 사람 중심 AI의 가치를 일상에서 구현하는 대표적인 서비스 중 하나가 ICT 기술을 활용한 '노인 돌봄(시니어 케어)'이다.



노년층은 대표적인 디지털 소외계층이자 건강관리취약 계층으로 꼽힌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혁명에 대응하는 정부와 기업들이 AI 기반 디지털 건강관리서비스 인프라 구축에 앞다퉈 나서는 배경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AI·IoT기반 어르신 건강관리 시범사업'이 담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고령화와 AI의 기술적 진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비대면 일상 가속화 등이 맞물리면서 ICT 기반의 비대면 노인돌봄 시스템이 사람 중심 AI와 디지털 포용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AI·IoT 기반 어르신 건강관리는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해 6월부터 각 지자체와 보건소와 함께 추진해 온 시범사업이다. 서울 광주 경기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등 전국 24개 보건소(전담인력 109명)에서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건강위험요인 여부에 따라 블루투스 기반의 건강 측정기기인 스마트밴드, 자동혈압계, 혈당측정기, 체중계, AI 스피커 등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시니어 전용 앱인 '오늘건강'과 연동해 건강관리 미션(임무)을 진행하고 컨설팅을 제공하는 비대면 건강관리서비스다.

평소엔 말벗, 위급땐 "아리아~살려줘" AI스피커 주치의
경남 사천시에서 어르신들이 사전 건강 점검을 받고 있다/사진=한국건강증진개발원경남 사천시에서 어르신들이 사전 건강 점검을 받고 있다/사진=한국건강증진개발원

AI 스피커는 정보 검색은 물론 라디오와 음악, 날씨, 알람, 긴급 도움 호출 등의 기능을 갖춘 최첨단 기기다. 감성대화로 말벗이 돼 주는 역할을 하고 인지기능 강화, 기억력 테스트 등 치매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두뇌 톡톡, 기억검사 등의 프로그램은 물론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운동 콘텐츠도 제공한다.

위급상황 땐 생명을 구하는 큰 역할을 한다. 예컨대 독거노인이 위급한 상황에서 "아리아, 살려줘"라고 외치면 AI 스피커가 보건소나 지자체 담당자, 보호자 등에게 인적사항 등을 발송해 긴급 대처를 가능하게 한다. 지난해 8월 경남 의령군에선 고열과 가슴통증을 느낀 80대 어르신이 평소 교육받은 대로 AI 스피커에 대고 "살려줘"라고 외치자 119 구급대가 도착해 건강을 회복한 사례도 있었다.

김동진 건강증진개발원 디지털헬스케어센터 AI·IoT 건강관리팀장은 "어르신들의 편의성을 고려해 개발한 전용 앱(오늘건강)에 신체활동량과 혈압·혈당 등 건강기록이 실시간으로 전송돼 보건소 전담인력이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밴드 차고 날마다 걸으니 "혈압도 혈당도 낮아졌어요"
현장의 호응도와 만족도는 매우 높다. 복지부와 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건강관리 시범사업 서비스에 등록한 인원은 1만1691명, 운동과 영양 관련 개별 미션을 제공받은 사례는 5만1875건에 달한다. 김 팀장은 "보건소를 찾은 어르신들께 스마트폰과 스마트밴드를 연결하고 사용방법을 설명하면 '시계가 내 걸음 수도 알려주느냐'며 신기해 하신다"며 "차로 보건소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는 '운동해야 한다'며 댁까지 걸어가시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건강관리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혈압 수치가 잴 때마다 매번 달라 평소 내 혈압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몰랐는데, 시범사업에 참여한 후 매일 혈압을 측정하는 습관을 들여 평균 혈압수치를 알게 됐다"며 "스마트밴드를 차고 매일 걷고 운동하니 혈압도 내려갔다"고 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한 70대 어르신도 "매일 혈당을 측정하면서 음식을 조절하고 열심히 걸으니 혈당 수치가 실제 떨어지고 있다"며 "당뇨 관련 약을 최근에 줄였고 의사 선생님의 칭찬도 들었다"고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올해에도 디지털 건강관리서비스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전국 보건소는 지난해 24개에서 올해 80개로 대폭 늘어난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의 효율적인 운영과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AI와 IoT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건강관리 상담 콘텐츠를 개발하고 사업 성과를 검증할 수 있는 성과 관리 체계도 개발할 계획"이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코로나를 조기에 극복하고 디지털 포용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시범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시 보건소에서 어르신이 사전 건강 점검을 받고 있다/사진=한국건강증진개발원전남 여수시 보건소에서 어르신이 사전 건강 점검을 받고 있다/사진=한국건강증진개발원



코로나로 판 커진 AI·로봇 케어…"돌봄윤리 논의도 함께"

[u클린 2021] ④비대면 노인돌봄 확대

SK텔레콤 7대 AI 추구 가치/사진-SKTSK텔레콤 7대 AI 추구 가치/사진-SKT
'AI 컴퍼니'(인공지능 기업) 전환에 나선 국내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이 들머리에 세운 가치는 단연 '사람 중심 AI'다. AI 챗봇 '이루다'의 혐오·차별 논란이 촉발한 AI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윤리원칙을 마련해 속속 발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사람 중심의 AI'를 핵심 이념으로 하는 7대 AI 추구 가치를 발표하고 사규에 적용했다. 사회적 가치와 무해성, 기술 안정성, 공정성, 투명성, 사생활 보호, 지속 혁신 등을SK텔레콤이 추구해야 할 7대 가치로 제시했다.

김윤 SK텔레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I 추구 가치 정립은 AI 회사 변화의 첫걸음"이라며 "AI에는 불완전성이 함께하는 만큼 사람 중심의 AI 서비스가 고객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KT도 최근 'AI 원팀'의 일원인 카이스트와 'AI·SW(소프트웨어) 기술연구소' 공동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원천 기술 분야에서 휴머니스틱 AI(인간 중심 AI) 등 15개 미래지향적 연구과제를 선정했다.

네이버도 지난 3월 서울대학교와 함께 마련한 '인공지능(AI) 윤리 준칙'으로 △사람을 위한 AI 개발 △다양성의 존중 △합리적인 설명과 편리성의 조화 △안전을 고려한 서비스 설계 △프라이버시 보호와 정보 보안 등 5가지 가치를 제시했다. AI가 혁명적 수준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술이지만 불완전한 만큼 개발과 이용 과정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월13일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뢰할 수 있는 AI 실현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AI 윤리기준'의 실천방안을 사람 중심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사람 중심 AI가 부쩍 강조되고 노년층에 특히 피해를 준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언택트 시니어 케어'(비대면 노인 돌봄)다. SK텔레콤은 AI 서비스를 활용한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와 내 주변의 코로나 안전도를 확인하는 '세이프캐스터(SafeCaster)' 등 사람을 위한 사회적 가치 제고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KT와 카이스트는 'AI 원팀'에서 '딥러닝 음성합성' 기술 등 노년층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 돌봄기술을 공동 개발한 전례가 있다. 네이버 역시 사람 중심 AI 가치 실현의 맥락에서 지난 4월부터 부산의 홀몸노인 고독사 예방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해외 ICT 기업과 스타트업들도 AI와 IoT,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고령층의 일상생활과 활동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 후 위험 발생 이전에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방적 케어 서비스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서비스 로봇 시장 확대로 돌봄·반려로봇이 노년층의 일상에 도움을 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

AI 등 ICT 기반의 비대면 노인 돌봄 확대 과정에선 기술의 선한 영향력 못지 않게 윤리적 부작용의 가능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I와 로봇 돌봄이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감을 줄이고 인간의 상호 작용을 줄여 돌봄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층의 의학적 개인정보가 오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정근 경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지난 3월호 국제사회보장리뷰에서 "코로나19로 비대면 노인돌봄 서비스 확대는 필수불가결하다"면서도 "돌봄 과정에서 윤리적 부분과 AI와 로봇의 돌봄 기능을 어디까지 위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동시에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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