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들',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정수진(영화 저널리스트) ize 기자 2021.05.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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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1인가구 시대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

사진제공=㈜더쿱사진제공=㈜더쿱


“대한민국 1인 가구 453만 명. 이제 혼자 사는 삶은 대세가 됐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이런 내레이션으로 포문을 연 것이 2013년.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1인 가구수는 614만 8000가구로, 전체 가구수 2034만 3000가구의 30%를 차지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이 거창한 선언으로 여겨지지 않은 지금, 물리적으로 혼자 사는 것을 넘어 휴대전화와 이어폰을 방패 삼아 감정적 무연고(無緣故)를 택한 주인공을 내세워 혼자 사는 사회를 조명한다.

신용카드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근무하는 진아(공승연)는 혼자가 편하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며 회사에 출근하고, 출근한 뒤에는 헤드폰을 끼고 해일처럼 밀려드는 진상 고객들의 목소리를 상대한다. 회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1인 라면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혼자 담배를 피운다.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집에 돌아온 뒤에도 거의 모든 것이 갖춰진 방에 박혀 무심하게 켠 TV를 보며 밥을 먹는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사람은 없다.

진아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다를 바 없는 비슷한 날의 연속이다. 비슷한 차림새로 출근을 하고, 매뉴얼에 박힌 비슷한 어조로 고객을 상대하며, 매일 비슷한 점심과 저녁 메뉴를 선택한다. 이 단조로운 나날에 어느 날 작은 파문이 인다. 회사에서는 ‘에이스’인 진아에게 신입사원의 일대일 교육을 맡기고,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따금 말을 걸어오던 옆집 남자가 사고로 죽은 지 며칠 만에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필 그 남자가 진아에게 마지막으로 걸었던 말은 “인사 좀 해주지.” 교육 때문에 딱 붙어 있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커피를 사다 주고 점심을 함께 먹자고 청하는 신입사원 수진(정다은)도, 지난 달 세상을 뜬 엄마의 휴대전화로 자꾸 전화를 걸어오는 아버지(박정학)의 존재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자꾸 신경 쓰인다.

사진제공=㈜더쿱사진제공=㈜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은 진아가 왜 감정적 교류를 차단하고 혼자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어릴 적 바람난 아버지가 오랜 시간 가정을 떠났다가 최근 2~3년 새 엄마에게 돌아왔다는 사실, 엄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가 남은 모든 재산을 상속받는 것에 진아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큼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그가 가족 내의 관계에서 상처받았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나 거창한 전사(前事)가 없더라도 진아의 모습은 우리에게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아 살아 남아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어설픈 관계가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입사원 수진과 교류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지침만 무미건조하게 알려주는 진아에게 한소리 하는 팀장(김해나) 또한 사수였던 시절 진아와 별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혼자 평온한 것처럼 보이던 진아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집에 혼자 틀어박혀 살지 않는 이상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옆집 남자의 죽음이 일차 영향이었다면, 죄송하지 않아도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타임머신으로 2002년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블랙리스트 고객의 말에 진심으로 대화를 건네는 수진이나 고독사한 전 세입자의 제사를 차려주겠다며 초대장을 건네는 새로 이사 온 옆집 남자 성훈(서현우)의 존재는 진아의 감정을 건드리고, 그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거의 매 순간 진아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데, 두드러진 사건사고는 없어도 감정의 서사는 또렷이 감지할 수 있다. 무미건조한 눈빛과 표정의 진아가 감정적으로 폭발하고 수진에게 비로소 내밀한 속내를 밝힐 때, 관객들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곱씹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관계에 서툴러져 있는지를. 영화가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 방점을 찍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제공=㈜더쿱사진제공=㈜더쿱

첫 영화 주연을 맡은 공승연의 섬세한 감정선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한국경쟁 부문 배우상을 수상한 것이 그간 쌓은 내공을 증명한다. 독립영화에서 주목받은 정다은의 첫 성인 연기와 첫 장편영화를 연출한 홍성은 감독의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섣불리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방식이 잘됐다 잘못됐다 평가하지 않고, 혼자가 아닌 함께가 정답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영화의 말미, 진아가 수진에게 건네는 인사와 진아가 아버지에게 제안하는 관계의 방식을 보면 이 영화는 오히려 혼자의 의미를 제대로 정립하자는 무언의 권유 같다. 코로나19가 일상화되며 자의로든 타의로든 혼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지금, 무척 시의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혼자인 나는 왜 혼자를 선택했나 질문을 던져볼 기회다. 5월19일 개봉.

정수진(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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