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목소리가 사라져간다[류근관의 통계산책]

머니투데이 류근관 통계청 청장 2021.05.1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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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목소리가 사라져간다[류근관의 통계산책]


웹툰 드라마 '나빌레라'는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할아버지와 스물셋 꿈 앞에서 방황하는 발레리노 청년의 이야기다. "요즘 애들한테 해줄 말이 없다. 미안하기 때문", "열심히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이 세상이 그렇지 않다", "응원은 못 해줄망정 밟지는 말아야지" 등 일흔 되신 할아버지의 육성이 묵직하게 들려온다.

이퀄라이저는 음성 신호의 전체적인 주파수 특성을 보정해 적정한 음역을 유지시켜주는 장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세대 간 유권자의 목소리를 보정할 이퀄라이저와 같은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팽창하는 고령층과 쪼그라드는 청년층 간 투표권 배분의 불균형은 인구구조의 불균형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2019년 12월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연령이 만19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함에 있어 청년의 목소리를 더 들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대 간 목소리 차이는 너무 크다. 기성세대에 비해 청년세대의 발언권은 아주 약하다.

전체 유권자 중 29세 이하 청년층 비중은 1960년 35%에서 최근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2050년에는 9%대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60세 이상 고령층은 1960년 10%에서 최근 3배로 증가했고, 2050년에는 53%까지 확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게 된다. 초고속 고령화와 함께 정작 우리 미래의 주역인 청년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빠르게 소외되가고 있다.



고령화는 과거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저출산은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앞으로의 숙제다. 대표권 없이는 납세도 없다는 항변처럼 발언권 없는 청년층은 후세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기성세대에 저항하고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제안이라도 해보자.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고 미성년 자녀의 투표권 행사는 친권자에게 맡기면 어떨까. 이 경우 2050년 기준 투표권 배분은 29세 이하가 9%에서 19%로 높아지고, 고령층이 53%에서 47%로 낮아진다. 미흡하나마 세대 간 투표권 배분의 불균형이 다소나마 개선된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여 미래지향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에 투표하려 들 것이다.

다른 대안을 생각해보자. 세대별로 여생에 비례해 투표권을 배분하면 어떨까. 2019년 기준 청년층(18~29세), 장년층(30~59세), 고령층(60세 이상)의 중간 연령인 25세, 45세, 70세의 기대여명은 59년, 40년, 17년이다. 대략 3대 2대 1의 비율이다. 고령층에 속한 유권자에게 1인 1표를 부여한다면, 기대여명이 긴 장년층과 청년층에 속한 유권자에게는 각각 1인 2표와 1인 3표를 부여해보자. 이렇게 하면 2050년 기준 청년층 유권자 비중은 9%에서 18%로 높아지고, 고령층은 53%에서 34%로 낮아져 세대 간 투표권 배분의 불균형이 좀 더 개선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고 노인 한 명이 사망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한다. 아이와 노인의 균형이 필요하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기울어지는 운동장을 바로 잡지 않으면 공은 한쪽으로만 쏠리게 된다. '민주주의 꽃' 선거에서 세대 간 목소리는 조화를 이뤄야 한다. 우리 미래를 짊어질 우리 젊은이의 목소리가 더 이상은 작아지지 않도록 기성세대가 지혜를 모아 응답할 때다. 욕먹을 줄 뻔히 알면서 오죽하면 이런 황당한 제안이라도 하게 됐을까.


청년의 목소리가 사라져간다[류근관의 통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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