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재산공개 아니라 등록"이라는 정부…"신뢰성 없다"는 교사들

머니투데이 한민선 기자 2021.04.19 19:30
글자크기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등록만 하고 외부로 공개 안 된다고요? 솔직히 신뢰성 있게 들리진 않네요."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A교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전체 공무원 재산 등록 의무화'에 대해 이같은 반응을 드러냈다.

재산 등록을 두고 교원들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인사혁신처는 "재산등록제는 재산을 외부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원들은 '사실상 공개'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잠재적 범죄자 매도…무슨 일만 있으면 공무원 닦달"
/사진제공=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사진제공=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19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전국 유·초·중·고·대학교원 6626명을 대상으로 지난 13일~15일 '교원·공무원 재산등록 관련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의 교원·공무원(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포함)의 재산등록 의무화에 대해 응답 교원의 95.2%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복수응답 2개)로는 '전체 교원과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65.4%),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을 교원·공무원에 전가'(60.9%), '헌법정신에 반하는 과잉규제·과잉입법'(26.1%) 등을 꼽았다.

설문에 참여한 교사들은 "탈탈 털어도 빚밖에 없는 일반 평민이다. 등록할 재산이 없는데 재산 등록해야 하나", "재산을 관리하는 데 필요 이상의 행정력이 낭비된다", "무슨 일만 있으면 공무원을 닦달해서 해결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한숨이 난다" 등 불만을 표출했다.

A교사는 "(공직자 부동산 투기 대책)이라는 시행 목적이 납득이 되지도 않는다"라며 "내용을 충분히 공지하거나 의견을 묻지않고 시행하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원천차단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모든 공직자가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4급 이상 공무원(일부 공직자는 7급 이상)에 대해서만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교사들까지 재산등록을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재산 외부로 공개 안 돼" vs "사실상 공개"
특히 인사혁신처가 재산 공개가 아니라 등록이라고 강조한 점도 교원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인사혁신처 측은 "현행법상 재산등록제에 따르면 소속 기관 등에 재산을 등록하고, 등록된 재산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며 "누설한 자에게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형벌이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재산등록사항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응답자의 88.3%는 "등록과정에서 학교 및 교육당국 등록관리자,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이 알게 된다"며 이번 재산 등록이 '사실상 공개'처럼 생각된다는 입장이다. 교총이 진행하는 청원 운동에도 '재산 공개 철회'라는 문구가 담겼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B교사는 "누구나 볼 수 있게 해둔 것만이 공개가 아니다"라며 "등록하는 과정에서 학교장 등 학교 내 누군가가 볼 수 있기 때문에 공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법이 있다고 누설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문이 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학부모이자 교사 배우자를 두고 있는 직장인 C씨도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C씨는 "내부 정보로 이득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왜 내 재산까지 등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재산을 등록해야 할 이유가 납득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178개국 교원단체가 소속된 세계교육연맹(Education International)도 우려를 표했다. 데이비드 에드워즈 EI 사무총장은 교총에 보낸 서한에서 "모든 공무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의무 재산등록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계획 발표에 큰 우려를 표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공립학교 교사를 포함한 일반 공무원에게 (재산 등록이) 적용되는 경우는 들은 바 없다"고 꼬집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