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 프라다폰의 추억

머니투데이 성연광 에디터 2021.04.1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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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2007년 출시한 LG 프라다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와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협업해 화제가 됐다. LG전자가 2007년 출시한 LG 프라다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와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협업해 화제가 됐다.


#LG 휴대폰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프라다폰’(PRADA LG-SB310)이다. 2007년 출시된 피처폰이다.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프라다와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마케팅 전략까지 협업해 화제를 모았다. 그래서였을까. 풀터치 컬러스크린 등의 사양도 괜찮았지만 포장재, 가죽케이스까지 디테일한 고급스러움이 소유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LG가 이런 폰도 만들 수 있다니. ‘LG폰=싸구려폰’이란 그간의 선입관이 단박에 깨졌다. 실제 프라다폰은 그해 출시된 휴대폰 중 가장 비싼 가격대(88만원)임에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출시 18개월 만에 전세계에서 100만대 이상 팔렸다. 30만~40만원대 웃돈까지 붙을 정도였다. ‘초콜릿폰’ ‘샤인폰’과 함께 2000년대 중후반 LG폰의 전성기를 맞게 해준 ‘트로이카’로 꼽힌다.

#LG전자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24분기 연속 적자행진 끝에 휴대폰사업을 접기로 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처폰 시절 반짝 성공에 도취해 새로운 시장변화에 대응할 적기를 놓쳤고, 그뒤 여러 차례 재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놓쳤다. 소프트웨어 안정성 등 탄탄한 기본기 대신 생뚱맞은 디자인 혁신에 집착한 제품전략, 소비자 기대와 괴리가 컸던 가격정책 등이 주된 패착으로 거론된다. 노키아·모토로라·블랙베리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일찌감치 손을 털고 나간 것과 대조적으로 결단을 미룬 탓에 손실규모만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기업엔 뼈아픈 실패사례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국내 모바일산업의 흑역사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소비자 입장에선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으니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난 25년 동안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LG폰은 충실한 ‘대안재’였다. 애플 ‘아이폰’이나 삼성전자 ‘갤럭시’보다 저렴한 스마트폰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중국폰은 쓰기 싫었던 소비자들이 주로 찾았다. 사실상 시장독점 사업자인 삼성전자가 마음놓고 스마트폰 출고가를 올리지 못하게 또 일본·중국 해외폰들이 우리 시장에 쉽게 발을 디딜 수 없도록 한 것도 LG폰의 중요한 존재가치였다.

#시장혁신 촉진자로서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휴대폰이 고만고만하던 피처폰 시절 ‘초콜릿폰’ ‘프라다폰’ ‘샤인폰’ 등 감각적인 외관으로 휴대폰 디자인 경쟁을 주도했다. 스마트폰으로 전환한 후에도 혁신을 향한 LG전자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앞뒤 5개 카메라 렌즈를 단 ‘펜타카메라’, 휴대폰 정맥인식 기능, 디스플레이 전체를 스피커로 활용하는 ‘크리스털 사운드’ 등이 LG폰에서 시작됐다. 스마트폰 폼팩터(Form Factor) 실험에 가장 공격적으로 나선 메이커 역시 LG다. 4대3 화면비율을 채택한 ‘옵티머스뷰’와 카메라 그립 등 용도에 따라 변신할 수 있는 모듈형 스마트폰 ‘G5’, 듀얼스크린폰 ‘V50’, 가로본능폰처럼 세컨드 액정을 쓸 수 있는 스위블폰 ‘윙’, 출시를 예고한 ‘LG 롤러블폰’까지. 물론 이들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났고 이를 싸잡아 ‘LG의 헛발질’로 평가절하는 시각도 많다. 그럼에도 LG의 과감하고 무모한 도전들이 폼팩터 경쟁에 꾸준히 불을 지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쉽다. 삼성전자-애플 양강구도로 스마트폰 시장이 재편된 현실에서 LG전자의 빈자리를 대신할 국내 메이커가 더이상 없다. 소비자들은 ‘갤럭시’나 ‘아이폰’ 외엔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경쟁강도가 약해지면서 가격경쟁도 약화할 게 뻔하다. 이래저래 소비자들에겐 손해다. 중국산 스마트폰이 국내 시장에 야금야금 발을 뻗치는 빌미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껏 기대를 모은 제조사들의 폼팩터 경쟁 역시 유야무야 시들해질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LG가 휴대폰 관련 기술과 특허를 해외 기업에 팔지 않고 전장·로봇 등 신사업에 활용한다는 소식이다. 휴대폰 사업에서 보여준 과감한 도전과 실패 경험들이 구광모 LG 회장의 미래 사업에 어떻게 반영돼 시너지를 낼지 주목된다.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았다. 굿바이 LG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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