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전무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그때는 그러한 문화를 모두 당연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앉기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 "
2011년에는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선임되며 윤서진 전 리딩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2010년) 이후 두 번째로 여성 리서치센터장을 지냈다. 현재는 트러스톤자산운용에서 리서치본부장과 부CIO(최고투자책임자)를 맡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달 26일 트러스톤자산운용 성수 본사에서 이원선 전무를 만나 금융투자업계의 유리천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전무와의 일문일답.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전무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당시는 같은 사무실에 임산부가 있어도 개의치 않고 담배를 피울 만큼 조직 문화가 남성 중심적이었다. 제가 전화를 받으면 몇 달에 한 번은 '남직원 바꿔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분이 있더라. 그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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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여성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경력 면접을 볼 때 '자녀가 몇 명이냐, 돌봐주는 사람은 누구냐, 둘째 계획은 있냐' 등을 꼭 물어봤다고 하더라. 질문을 듣는 것 자체가 위축되고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말이 많았다.
또 다른 불편했던 점 중 하나는 회식 자리에서 부서 중 가장 높으신 분, 예컨대 상무님 옆자리는 항상 비어 있었다. 그 옆자리는 구성원 중 가장 어린 여자 직원을 앉혔다. 다들 당연히 '00아, 여기 앉아야지'라고 말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나.
▶2000년 이후부터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특히 젊은 분들은 싫으면 싫다고 표현을 해준다. 지금은 앉으라고 하면 '앉기 싫어요'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해외 등과 비교해보면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여성 임원 비율은 유독 적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 10대 증권사의 여성 임원 비율은 5.14%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로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아무래도 제일 큰 이유는 육아와 그로 인한 경력단절이다. 저는 자녀가 없는데 만약 자녀가 있었다면 저도 그만뒀을 수도 있다.
일과 육아, 두 가지를 양립하기 힘들 만큼 일이 매우 많다. 주식 시장이 업무시간이 지났다고 일이 끝나지 않는다. 밤이 돼서 미국 증시 상황도 나오면 또 계속 고민을 해야 하지 않나.
조직문화도 있다. 예전부터 군대식 문화가 보편화돼 있다. 특히 증권업계, 그중에서도 기업 규모가 클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주말 워크숍이나 등산 등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만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과도 거리가 멀었다.
-리서치 내 여성 애널리스트들의 분야가 제약·유통 분야로 쏠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 업종별 1등 애널리스트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건설이나 반도체 분야만 보더라도 여성 애널리스트가 1등이고 유통 담당은 오히려 남성 애널리스트가 1등이다.
쏠림 현상이 있다면 뽑을 때 선입견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보통 여성들이 브랜드를 잘 아니까 의류·화장품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초기 단계 이야기다.
깊게 들어가게 되면 인사이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어떤 애널리스트건 잘하는 애널리스트가 되려면 업과 시장에 대한 공감능력이 높아야 한다. 이러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하지, 성별의 특성에 맞는 업종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전무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많은 사람들이 순기능을 기대했겠지만 저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일에 대한 오랜 경험을 통해 경험적 사고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 자리에 간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본인도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은 조직이 잘 안 움직이게 될 거고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다. '저 사람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일도 못 하는데 왜 저기 갔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늘면서 기업들의 유리천장 개선을 위한 목소리도 인다. 유리천장이 보다 얇아지려면 사회나 기업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
▶ESG 평가요소 가운데 S의 평가지표가 여성의 사외이사 비율보다 회사 내 보육 시설 및 육아 관련 지원 등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기업에서는 아무래도 비용에 대한 고민을 할 거다. 그러나 좀 더 긴 안목으로 볼 필요가 있다. 경력 단절로 인해 인력 교체가 많으면 업무 연속성이 떨어져서 시너지를 내기 힘들다. 보육 시설을 만들면 당장은 돈이 들겠지만 이 사람이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에 근무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냐.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전무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현재 한국의 12개월 선행 PER(주가이익비율)이 13.3~13.5배인데 이는 과거(12~14배) 대비 높은 숫자는 아니다.
이익 예상치의 신뢰 근거로는 지난해 4분기 실적과 수출 지표를 꼽는다. 보통 기업들이 4분기에 비경상적인 일회성 비용을 떨구기 때문에 4분기 실적은 예상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는 예상치보다 많이 하향되지 않은 수치가 실적으로 나왔다.
한 달에 세 번 나오는 수출 지표를 봐도 두 자릿수 이상 증가세다. 품목이나 수출 대상 국가도 다양하다. 국내 기업은 수출 익스포져(노출도)가 높은 만큼 수출 데이터가 좋아진다는 말은 실적이 예상만큼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인다.
유망업종은 지금은 소재·산업재 등 경기민감주나 IT(정보기술)가 좋다고 본다. 중장기적으로 경기민감주 밸류에이션이 높아졌을 때는 저력이 있는 성장주들이 이어받을 것이다.
-만약 딸이 있다면 증권업계 근무를 추천하는지. 금융투자업계에 입문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애널리스트를 추천하고 싶다. 주식시장은 공부하다 보면 산업 및 트렌드의 변화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 또 내 생각이 틀렸는지 아닌지를 매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내 생각에 대한 결과를 즉시 알 수 있는 점은 다른 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젊은 세대가 한 번쯤은 경험하면 좋은 업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