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76,700원 ▲400 +0.52%)가 5일도 침묵했다. 미국 백악관이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대책 논의를 위해 안보보좌관 주관 회의에 초청했다는 지난 2일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나온 지 사흘째다.
좋게 말해서 미국과 중국의 구애지 현실적으로는 전세계 원톱 국가를 노리는 두 강대국의 압박이 동시에 삼성전자를 향한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마저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침묵이 길어지는 배경이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그만큼 고민이 깊다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미국-중국의 고위급 회담을 하고 있다. /AFP=뉴스1
삼성전자의 고민은 백악관의 초청이 바이든 정부가 마련한 가벼운 상견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반도체 칩을 손에 들고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로 꼽히는 인텔이 3년만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재진출을 선언한 상황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소집'한 회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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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는 "미국이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삼성전자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는
美현지 증설 압력…"패러다임 변화 땐 새 도전 직면"
좀더 멀리 내다보면 미국이 어느 상황까지 구상하는지 가늠키 어렵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느끼는 불안감도 상당하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산업이 선두로 올라선 데는 그동안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반도체 생산을 포기했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며 "최근 미국과 유럽의 복귀 선언으로 시장 패러다임이 바뀌면 삼성전자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줄서기 강요에도 해법 애매…"우리 정부도 눈치"
팻 겔싱어 인텔CEO(최고경영자). 겔싱어 CEO는 지난달 24일 파운드리 재진출을 3년만에 선언했다. /사진=뉴스1
서동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소재부품원천연구본부장은 "그동안 어느 정도 줄타기를 용인해온 미국이 백악관 회의에서 '이제 줄을 똑바로 서라'고 메시지를 전할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4대 그룹 한 인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반에도 확인했지만 미국이 어느 기업 하나를 콕 찍어서 요구를 하면 거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는 꺼내기 힘든 요구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우리 정부에서도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국내 일자리 문제가 만만찮은 상황에서 대규모 해외투자에 내몰리는 상황을 두고 우리 정부의 눈치도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G2 갈등 이젠 상수…"균형·실리 우선할 수밖에"
삼성전자 사우스캐롤라이나 가전공장. 삼성전자는 2017년6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정부와세탁기 생산라인 투자 MOU(양해각서)를 체결, 신규공장을 건설했다. 당시 미국 현지공장 건설 배경으로는 트위터에 직접 '땡큐 삼성'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노골적으로 '선물 보따리'를 요구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꼽힌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 교수)은 "중장기 대책과 별도로 당분간은 큰 틀에서 균형과 실리를 우선하는 것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며 "삼성전자의 침묵도 이런 전략의 일부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