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불러온 車반도체 대기근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3.3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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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불러온 車반도체 대기근


결국 현대차도 멈췄다. 미리 비축한 재고 덕에 전세계를 휩쓴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던 현대차마저 울산1공장 가동을 4월7일부터 14일까지 멈추기로 했다.일단 일주일 동안 조업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생산을 제때 재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올 3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연초부터 징검다리 조업을 되풀이했던 포드, GM, 토요타에 이어 반도체 품귀 사태가 국내 자동차업계까지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다' 한 거죠." 완성차업계를 패닉에 몰아넣은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의 원인을 두고 반도체업계 인사들이 털어놓는 속얘기는 그동안 흔히 알려진 수요예측 실패나 잇단 재해에 따른 반도체 제조라인의 불가피한 가동중단과는 사뭇 온도차가 있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직접적인 원인은 수요예측 실패와 라인 가동중단이지만 반도체 품귀가 장기화하는 데는 업계 내부의 불평등한 역학구조 탓이 적잖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수익성이 낮으면서도 품질과 재고 관리는 힘든 제품으로 통한다. 공정기술면에서 진입장벽이 낮아 고객사인 완성차업계에 절대적인 갑을 관계로 종속되는 데다 한번 사면 5~10년 사용하는 자동차 특성상 AS(애프터서비스)를 위한 반도체 재고를 10년가량 유지해야 해 설비운영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78,600원 ▲2,100 +2.75%)SK하이닉스 (222,000원 ▲7,000 +3.26%)가 차량용 반도체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차량용 반도체보다 고난도의 공정으로 만들어내는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나 PC CPU(중앙처리장치)의 수익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기술력만 갖추면 굳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다.



스마트폰이나 PC는 제품 주기도 자동차보다 짧아 관련 반도체 재고를 쌓아둬야 하는 관리 부담도 적다. 생명과 안전이 중요한 자동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객사에서 요구하는 사항의 성격도 다르다.

불평등이 불러온 車반도체 대기근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반 완성차업체들이 자동차 판매 감소를 이유로 반도체 주문을 줄였을 때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들이 재빠르게 다른 제품 양산으로 갈아탄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한 관계자는 "때마침 스마트폰, 노트북, TV 시장에서 이른바 '보복소비' 수요가 터지면서 관련 반도체 주문이 몰리자 좋은 구실이 됐다"며 "지금 와서 완성차업계에서 주문을 밀어넣어 봐야 입장이 180도 달라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 제조사들이 최근 차량용 반도체 가격을 15~30% 올리기 시작한 것도 단순히 공급부족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제조사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차량용 반도체 말고도 대안이 생긴 데다 먼저 들어온 주문 물량을 처리해야 한다는 구실도 있으니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완성차업계와 차량용 반도체업계의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테슬라가 차량용 반도체를 모듈화해 PC처럼 자체적인 업데이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두 업계의 관계 변화 가능성을 부채질하는 사건으로 꼽힌다. 테슬라의 구상이 현실화하면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가 같은 제품을 10년씩 생산해야 하는 재고 부담이 줄어든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차량을 PC처럼 업그레이드한다는 테슬라의 발상은 자동차 고객뿐 아니라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도 두손을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라며 "앞으로 기술 발전과 시장 변화에 따라 업계간 역학구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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