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현대차그룹 '진짜 총수'로 인정받을까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1.03.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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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공동취재사진) 2021.03.0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공동취재사진) 2021.03.02. [email protected]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진짜 총수’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5월1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동일인(이하 총수) 지정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현대차·효성 등 주요 대기업이 법적인 총수를 바꿔달라고 신청하면서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공정위로선 논란을 피하려면 국회의 주문을 받아들여 총수 변경의 기준을 마련해 적용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차·효성, 요청대로 총수 바뀔까
25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오는 5월 1일 대기업집단과 각 집단 총수를 지정한다. 대기업집단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과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재계 시선은 ‘총수 변경’ 여부에 쏠려있다. 앞서 현대차와 효성은 공정위에 올해 총수 변경을 신청한 바 있다. 현대차는 기존 총수인 정몽구 명예회장 대신 정의선 회장을 총수로 지정할 것을 공정위에 신청했다. 효성은 총수를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정위가 총수를 누구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 계열사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대기업은 총수 변경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공정거래법상 ‘총수 단독으로’ 또는 ‘총수와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이 주식의 30% 이상을 보유한 경우 대기업집단의 계열사가 된다.



예컨대 현대차의 경우 정의선 회장이 총수로 지정될 경우 정 회장의 장인이 지배하고 있는 삼표그룹이 현대차 계열사로 들어오게 된다. 자칫 삼표에서 사익편취,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허위제출 등이 발생한다면 정의선 회장이 총수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총수 정의·지정기준 정해야”
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현대차와 효성은 총수가 변경될지 여부를 알 수 없고, 사실상 예측도 하기 어렵다. 공정거래법에 총수에 대한 정의, 지정기준이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기업집단’의 정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총수의 정의를 ‘사실상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자’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공정거래법상 총수의 명칭은 공정거래법 제정 후 첫 번째 개정이 이뤄진 1986년 12월 도입됐다. 이후 무려 35년 동안 명시된 총수 정의·지정기준조차 없이 관련 제도가 운영됐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나름대로는 정의나 지정기준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총수 지정이 사실상 공정위 ‘재량’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형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는 ‘2020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공정거래법에 동일인의 정의 조항을 별도로 신설해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이란 ‘사실상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자 또는 법인’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며 "“기업집단에게 누가 동일인으로 지정될 것인가에 관해 예측가능성을 줄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 입장에서도 총수의 정의와 지정 기준을 미비 상태로 유지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이유가 없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수 지정은 기업집단, 계열사의 범위를 정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이에 따른 각종 규제 여부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업무인 만큼 법률이나 시행령에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고시나 지침조차 없는 상태”라며 “외부 통제나 사법 심사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을 추진할 때 총수 규정도 다뤘다면 좋았을텐데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며 “정의 등을 마련할 필요는 있지만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이해관계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수 지정기준, 정성적 부분도 고려해야
경쟁법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총수 지정기준을 신설한다면 지분율 등 ‘정량적’인 부분 뿐 아니라 가족관계 등 ‘정성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봉의 교수는 “총수 지정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당초 규제목적을 고려해 본인과 친족의 지분율, 이사 등 등기임원 해당 여부, 친족 승계의 이력과 향후 친족 승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총수가 자연인이 아닌 법인인 경우는 지정을 제외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황 교수는 “예컨대 아들이 실질적으로 대기업집단에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해도 부친의 의향에 따라 의사결정이 바뀔 수 있다면 이것이 실질적 지배력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며 “공정위의 실무적인 차원에선 대기업의 ‘가족경영’이라는 부분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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