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 석면 때문에 숨진 통신장교…軍은 3년째 제자리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2021.03.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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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 2018년 3월 26일 고(故) 유호철 대위가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폐암으로 서른네살의 젊은 나이었다. 사망 당시 어린 아들과 아내가 있었다.

2008년 통신병과 소위로 임관해 군복무를 했던 유 대위는 2014년 8월 기침과 가슴 두근거림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폐암 4기. 이상했다. 서른살의 젊은 나이였던 그는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았던 데다 폐암 가족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 대위는 ‘석면’에서 원인을 찾았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군 발암 물질이다. 그는 폐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7년간 통신 선로를 설치하고, 낡은 막사나 건물 천장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일주일에 최대 4~5회 석면이 들어간 천장 마감재를 뜯고 전기선, 통신선을 보수하고 설치했다.

작업시간 동안 석면 가루들이 날렸지만 유 대위는 군으로부터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도 받지 못했다. 방진마스크 등 석면에 대한 보호 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다. 병세가 심각해진 유 대위는 2015년 1월 ‘폐암에 의한 심신장애’로 전역했다.



유 대위는 남겨질 아내와 아이를 위해 국방부에 상이연금을 신청했다. 당연히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국방부는 석면 때문에 폐암이 걸린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유 대위는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근무했던 부대 건물의 마감재를 직접 수집했다. 폐조직 일부를 미국으로 보내 감정받기도 했다. 관련 연구자료까지 모은 끝에 그는 2017년 6월 항소심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국가유공자 신청을 보훈처에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유 대위는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법원으로 향했다. 숨지기 전 유 대위는 평소 자주 활동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아 버텨줄지 모르겠다'라는 글을 남겼다. 결국 유 대위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직접 입증해야하는 보훈 책임…“국가유공자 인정받기 힘들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뒤늦게 유 대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2018년 4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 유호철 대위님을 죽음으로 몬 국방부를 문책한다’는 청원이 등록됐다. 청원인은 △엄격한 석면 규제 △국방부 내부수사 투명화 △석면 관련 병사 처우 개선도 함께 요청했다.

유 대위가 전역했을 때 국방부 측이 질병이 공무수행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놓고 군복을 벗자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은 보통 10년 이상의 잠복기를 거치는데 유 대위의 경우 기간이 짧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석면 관리 대책 등을 세웠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유 대위는 복무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관련 자료를 보거나 석면 실태 조사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유가족은 유 대위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보훈처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갔다. 보훈처는 2018년 5월 국가유공자 심사를 재심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유 대위의 복무부대와 동료증언 등 사실 조사를 이어갔다.

이어 유 대위가 숨진지 9개월 만인 2018년 12월 열린 보훈심사회의에서 국가유공자(공상군경)으로 최종 의결했다. 이어 유가족에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6호에 의거해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한다고 유가족 측에 전했다.

유 대위를 변호했던 심제원 변호사는 “유 대위의 경우 미리 꼼꼼하게 증거자료를 확보해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며 “현재 시스템은 당사자가 모든 것을 준비해 보훈처에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기준치 5배에 해당했던 석면 함유량…군부대는 여전히 관리 미흡

국방부 /사진=뉴스1국방부 /사진=뉴스1
실제 유 대위가 일했던 건물의 천장에서는 석면 함류량이 기준치(1%)의 5배가 넘게 나왔다. 국방부는 2019년 전문기관에 의뢰해 군 석면 함유 건축물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군 내에서만 1만1600여동의 석면 함유 건축물이 발견됐다.

지난해 국방부는 2025년까지 군의 석면 함유 건축물을 해체와 제거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들어가는 예산도 2018년 150여억원 수준에서 2021년 900여억원으로 증액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국방부의 군부대 석면 건축물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석면안전보건연대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군부대 석면건축물 관리대장 1836건을 분석한 결과 즉시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곳들도 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영관 한국석면안전보건연대(석면연대) 이사는 “국방부는 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정보공개조차 꺼리고 있다"며 "행정심판을 거쳐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대에 석면안전관리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앙행정기관과 그 소속기관은 해당 법안의 적용을 받지만 국방부는 군부대를 소속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방부, 현충원, 국방전산정보원, 국방홍보원만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이 국방부 측 입장이다.
최완재 석면연대 대표는 “군부대 시설은 국방부 장관 소유임에도 육·해·공·해병대, 직할부대가 사용 중인 석면건축물은 석면안전관리법 사각지대에 있다”며 “장병들의 건강을 위해서 한시라도 빨리 법안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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