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전성기가 오늘일까 봐 두렵습니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3.17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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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해 10월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본사를 찾아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부회장(가운데)과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최고기술책임자·맨오른쪽)가 이 부회장과 함께 장비를 살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해 10월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본사를 찾아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부회장(가운데)과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최고기술책임자·맨오른쪽)가 이 부회장과 함께 장비를 살폈다.


"삼성의 전성기가 지금일까 봐 두렵습니다."

며칠 전 만난 삼성전자 한 임원의 고백이다. 불쑥 튀어나온 묘한 뉘앙스의 언급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무슨 뜻이냐는 듯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없는 힘까지 쥐어짜내야 할 상황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1등을 지키는 것은 1등으로 올라서는 것보다 몇 배 더 힘들다. 그가 꺼낸 것은 단순히 1등이 느끼는 압박감만은 아니었다. '삼성맨'으로 30년 가까이 지내면서 삼성의 성장사를 생생하게 목격한 이가 느낀 최근의 상황에 대한 토로에 가까웠다. 누구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흘렀다.



사법적 판단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이 당면한 현실이다. 삼성이 차지하는 밥그릇의 크기 덕에 우리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할 현재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기업인의 과오에 대해 눈을 감자는 얘기가 아니다. 배 곯던 시절처럼 '밥'이 '법'보다 우선하는 세상이 아님을 기업인들도 잘 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은 어쩌면 변화에 가장 둔감한 사법조직이 과거와 달라진 경제논리를 수용한 결론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 스스로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인 상황에서 삼성이 고민하는 지점이 이 부회장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님도 분명하다.



삼성은 지난 4~5년 동안 이미 깔아놓은 선로 위를 달리는 것말곤 이렇다할 혁신의 모범을 내놓지 못했다. 이 순간 이 부회장이 가장 걱정하는 지점도 바로 이 대목이지 않을까. 이 부회장은 3년 전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이병철의 손자나 이건희의 아들이 아닌, 선대 못지 않은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3~4년 전 이런 말이 돌았다. "'정의선의 시대'가 오면 달라질 것이다." 2007~2008년 고환율이 디딤돌이 됐던 급성장기가 지나고 사업이 정체되던 시기다.

임직원들이 말했던대로 '정의선 시대'를 맞은 현대차그룹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변화의 시기를 내달리고 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온라인을 뒤덮었던 '흉기차'라는 오명을 찾기 어렵다. 리더십. 구심점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사례다.


삼성의 속이 쓰린 지점도 여기다. 이 부회장의 부재, 전문 경영인 시스템의 한계.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해법이 보인다.

한세대 가까이 세계 1위를 지켜온 삼성 반도체 D램의 초격차 기술력을 업계 3위 미국의 마이크론이 거의 따라잡았다는 보도가 얼마 전 나왔다.

삼성의 성공가도만 목격했던 우리 세대의 미래를 발목 잡는 최대 위협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설마'일지 모른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소니, 노키아가 그런 잠시의 안일함에 스러졌다. 우리 사회가 삼성을 대하는 시선에 은연중 그런 안일함이 스며있지 않길 바란다.

현실이 현실인 것은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언젠가 삼성의 구심점이 복원되면 삼성이, 또 우리가 전성기를 넘어 또다른 황금기의 열매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삼성의 전성기가 오늘일까 두렵다는 고백이 보약이 됐다는 후일담을 할 수 있기를. 그 후일담의 자리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닌, 좀더 적극적인 준비로 일군 결실이 되길 희망해본다.

"삼성의 전성기가 오늘일까 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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