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국회를 위하여

머니투데이 김승기 전 국회사무처 사무차장 2021.03.0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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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의 the 여의도]

국회의원이 국민의 공복으로
▲김승기<br>
전) 국회사무차장 ▲김승기
전) 국회사무차장


제대로 활동해서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의민주주의제도에서 국민과 국회의원의 관계는 정보경제이론에서의 본인-대리인(principal–agent) 관계와 유사하다. 본인이 시간이 없거나 능력이 안 되거나 혹은 여러 사정으로 직접 하기에 비효율이 많다고 판단될 때 대리인을 선정해 그에게 일처리를 맡긴다.

여의도의 또 다른 한 축인 주식시장에서 주주들과 전문경영인의 관계가 전형적인 본인-대리인 관계로 설명된다. 기업의 경영을 위임받은 전문경영인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단순화하면 이는 이윤극대화이다. 그런데 경영자로서의 위신이나 영향력, 보수 등은 기업의 거래규모에 비례하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에 경영자는 이윤극대화보다는 매출극대화를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진짜 주인인 주주들은 어떻게 경영자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하도록 이끌 수 있을까? 본인-대리인 관계의 본질적 문제는 본인보다 대리인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는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에 있고 대리인은 이를 이용해 주인보다 자기의 이익을 더 챙기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를 최대한 방지할 수 있는 유인 구조를 연구한다. 그런데 할 수만 있다면(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경영자의 활동과 실적이 잘 공개돼 정보의 비대칭성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기업과 증권시장에서의 정보공개제도는 계속 확대되고 발전해오고 있다.

국민과 국회의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의 활동을 직접 관찰할 수 있고 실적이 일일이 공개돼 검토할 수 있다면 국민은 자신의 대리인인 국회의원을 제대로 평가하여 다음 선거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므로 국회의원도 항상 국민의 의중을 잘 따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국회의원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본회의를 비롯한 각종 국회 회의이다. 회의체 조직인 국회는 기본적으로 회의를 통하여 의사결정을 하여 법률도 만들고 예산도 확정하며 정부 견제도 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활동과 역량도 주로 회의과정에서 표출된다. 본회의, 위원회 회의 등을 국민에게 직접 보여주는 매체가 국회방송이다.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 회의에 대해서는 공중파 방송이나 종편채널에서도 중계방송을 하지만 국회방송은 웬만한 회의는 모두 중계한다. 모든 위원회 회의는 인터넷으로 볼 수도 있다.



1990년대에 국회 본회의나 위원회 회의에서는 질의하는 국회의원과 답변하는 장관이 일문일답식으로 대화를 하지 않고 일괄질의 일괄답변 형식을 취했다. 오후에 장관이 답변할 무렵에는 이전에 일괄질의한 의원은 회의장에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괄질의 일괄답변을 하다 보니 의원이나 장관이나 내용을 잘 모르고도 보좌진이나 직원들이 써준 대로 읽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심지어 질의서에 의원에게 행동하라고 써놓은(책상을 두 번 친다) 지문을 그대로 읽은 의원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한다. 회의 중계방송이 일상화된 지금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회의 중계방송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아직 소위원회 회의는 중계되지 않는다. 국회 속기사들이 들어가서 회의록이 작성되긴 하지만 관행적으로 기자들도 회의 초반 스케치 외에 회의장에 계속 있지는 못한다. 소위원회에서 결정되는 내용이 거의 그대로 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하는 관행을 감안하면 이는 국회의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큰 결함이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이해관계집단의 직접적인 압력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서 대의적으로 토론하여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은 있다.
국회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예결위 운영에 있어 소위 ‘소소위’의 존재이다. 국회법상 의사결정에 있어 소위원회 이하 단위는 규정되고 있지 않은데 현실적으로 국가 예산안 심사와 확정에 가장 강력한 실체가 ‘소소위’이다. 예결위원장과 교섭단체 간사들로 구성된다. 의사중계는 말할 것도 없고 회의록도 작성되지 않는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수정돼 확정됐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최소화돼야 할 것이다.

일반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회의록에서도 가끔 블랙박스 같은 부분이 있다. 정파 간 대립으로 회의가 파행됐는데 그 다음 회의에서 갑자기 의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파행 기간 동안 지도부 간에 협의가 돼서 그럴 것인데 주인인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차원에서라도 그동안의 경과 등이 참석 의원들의 발언을 통해 회의록에 게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회의원들의 회의야 중계방송으로 직접 관찰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의원외교를 비롯해 의원들의 다른 많은 활동은 국민들이 직접 쫓아다니며 볼 수 없다. 따라서 사후적으로라도 국회의원들의 활동에 관한 모든 정보가 국민에게 적절히 공개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돼 국민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는 모든 공공기관이 마찬가지일 텐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정보공개 청구제도에 의해 보장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와 법원, 당연히 국회도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국회의 예산운영과 관련하여 정보공개가 청구돼 논란이 된 것 중 하나가 특수활동비 사용내역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드는 경비로서 그 성격상 공개될 수 없는 비용이다. 그런데 본래의 목적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와 국회의 거부, 행정소송과 법원 판결 등을 거쳐 2018년 8월 국회는 외교 안보 통상 등 국익을 위한 최소한의 영역을 제외하고 모든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한다. 결국 2018년 62억원이던 특수활동비는 2019년 예산부터 9억8000만원으로 축소됐다. 국회 특수활동비 예산의 적정 규모와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어떻든 정보공개 청구제도의 힘을 보여준 사례로 생각된다.

이후 20대 국회 후반기 지도부는 적극적이고 선제적 정보공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도입한 열린국회정보(정보공개포털) 사이트를 보면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획득이 가능하다. 물론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도 많지만 틀을 마련해두었으니 계속 채워나가면 될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국회 구

성원들도 정보가 속속 공개되는 데 대해 처음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으나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투명한 국회는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 국민들은 투명한 국회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 대리인인 국회의원과 집합체인 국회가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다음 선거에서 한번 더 대리인으로 내세울 것인지를 판단할 것이다. 4년의 대리계약 기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되면 중간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국회의원 소환제를 계약조건에 집어넣거나 처음부터 계약기간을 2~3년으로 짧게 정하자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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