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나쁜 황제'일까, '좋은 황제'일까 [차이나는 중국]

머니투데이 김재현 전문위원 2021.03.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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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이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


지난달 25일 시진핑(68) 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탈빈곤 총결산 표창대회’에서 중국에서 빈곤인구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올해로서 창당 100주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영광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2021년까지 모든 인민이 풍족한 삶을 누리는 샤오캉(小康)사회를 실현시키겠다고 한 중국 공산당의 목표가 일부 실현된 셈이다.

지난 5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중국은 '14차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중국이 이미 발표했던 문건 제목은 ‘14차 5개년 계획과 2035년 장기 경제 비전에 대한 건의’다. 5년만 해도 긴 시간인데, 15년을 바라보는 건 중국 정부일까 시진핑일까.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개최된 19기 5중 전회에서 2035년 중국 GDP가 2019년 규모에 비해 2배로 커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시 주석은 중국의 1인자 자리에 언제까지 남아 있고 싶어하는 걸까. 중국이 미국을 초월해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순간(2028년)도 직접 보고 싶은 걸까.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5년 더 집권할 게 확실
중국은 3월 양회를 시작으로 굵직한 정치 행사가 줄줄이 있다. 오는 7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있고 정점은 내년 10월 열릴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다.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5년 더 집권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시 주석은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후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연임됐고 임기는 2022년까지다.

만약 20차 당대회에서 권력을 이양할 계획이었으면 지난해 10월 개최된 19기 5중전회에서 포스트 시진핑으로 불리는 천민얼(61) 충칭시 서기나 후춘화(58) 부총리를 상무위원회에 진입시켰어야 했다.

현재 천민얼과 후춘화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25명 중 한 명이지만, 7명으로 구성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는 들지 못했다. 내년 개최될 20차 당대회를 1년 앞둔 올해 후계자를 갑작스럽게 상무위원회에 진입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진핑 집권 연장에 걸림돌도 없다. 이미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을 2기·10년만 맡도록 하는 2연임 초과금지조항을 헌법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원톱 스트라이커' 시진핑
시진핑 주석은 전임 주석인 후진타오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 축구 포지션으로 표현하자면 시진핑 주석은 원톱 스트라이커다.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인 후진타오 주석은 전문경영인처럼 안정을 중시하며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홍얼다이’(혁명 원로 2세대)인 시진핑 주석은 오너경영인처럼 거침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2인자인 리커창 총리는 시진핑 주석의 그늘에 묻혀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지금까지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플랜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시진핑 사상’을 당장에 삽입하면서 1인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지만, 당 주석제 부활에는 실패했다.

상무위원회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 주석제가 부활되지 않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 주석제가 도입되면 집단지도체제가 붕괴되고 시진핑 주석은 명실상부한 절대 권력자가 된다. 시진핑 주석이 권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집단지도체제가 와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세력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내비친다. 왜일까? 중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 /사진=AFP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 /사진=AFP
중국의 새로운 황제들
뉴욕타임스 기자를 지낸 해리슨 E. 솔즈베리는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저서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황제에 비유했다. 심지어 중국의 긴 역사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가졌던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르지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보다 인격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휘둘렀던 황제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마오쩌둥은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으로 1949년 천안문에서 신중국을 창건했고 그의 옆에는 덩샤오핑이 있었다. 마오쩌둥 없이는 오늘날의 신중국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 창건과 운영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정확히 신중국 설립까지가 마오쩌둥의 공적이었다.

신중국 설립 후 마오쩌둥은 과오만 저지른 ‘나쁜 황제’(Bad Emperor)였다. 세계적 석학이자 ‘역사의 종언’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중국이 겪은 문제를 ‘나쁜 황제 문제’(Bad Emperor Problem)로 표현했다.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적은,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 정부는 좋은 지도자가 이끈다면 훌륭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연정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주요 의사결정을 신속히 내릴 수 있고 포퓰리스트로부터의 압력에서도 자유롭다.

나쁜 황제의 출현을 막기 위한 덩샤오핑의 시스템
시진핑은 '나쁜 황제'일까, '좋은 황제'일까 [차이나는 중국]
하지만 나쁜 황제(Bad Emperor)를 만난다면? 무제한의 권력이 선하고 현명한 지도자 손에 주어진다면 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좋은 황제가 계속 계승하리라는 것을 담보할 수 없는 게 문제다. 후쿠야마 교수는 최근의 나쁜 황제로 마오쩌둥을 꼽는다.

1976년 사망하기 전까지 마오쩌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중국인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마오쩌둥 사후 마오에 대한 비난이 격화되자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공이 칠이라면 과오는 삼”이라는 ‘공칠과삼(功七過三)론’을 내세우며 갈등을 봉합했다.

마오쩌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신중국 설립이라는 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같은 나쁜 황제가 다시 출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덩샤오핑이 고안한 시스템이 바로 집단지도체제다. 7~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합의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국가주석과 총리의 임기는 10년으로 제한했다. 또한 68세가 넘으면 상무위원이 될 수 없었다. 모두 또 다른 마오쩌둥의 출현을 막기 위한 제도다. 지금도 합의시스템은 유지되고 있지만, 국가주석의 임기 10년 제한은 없어졌다.

시진핑 주석이 언제까지 집권할지, 또 다른 나쁜 황제 문제의 예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음 후계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무렵, 좀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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