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화해' 손짓에도 韓·日관계 여전히 안갯속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21.03.0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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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31절 노래 제창을 하고 있다. 2021.03.01. scchoo@newsis.com[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31절 노래 제창을 하고 있다. 2021.03.01. [email protected]


“한국은 과거 식민지의 수치스러운 역사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 3·1절 메시지는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화해’에 방점이 찍혔다. 일본엔 대화의 문을 열어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찾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일본을 자극하는 표현은 최대한 자제했다. 일본을 ‘이웃 국가’로 존중하며, 두 나라가 협력에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취임 후 매년 3·1절마다 발표한 메시지와 결이 달랐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8년 3·1절엔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강조하며 강경한 메시지를 냈다. 2019년엔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밝혔고, 지난해엔 "과거를 잊지 않되 우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일본에 관계개선을 촉구하며 했던 연설 중 올해 기념사가 가장 유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권에선 집권5년차인 올해가 문 대통령에겐 재임 시 일본과 관계개선을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해이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갈등문제를 풀려고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날 25분에 걸친 기념사 중 한일관계 개선 내용은 5분 남짓에 불과했고, 연설의 상당부분은 코로나19(COVID-19) 극복 의지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일본을 자극하는 내용은 없었고, 3·1운동 정신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며 “일본과 관계개선이 절실하다는 문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1.03.01. scchoo@newsis.com[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1.03.01. [email protected]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에도 한일관계는 계속 안갯속에 빠질 공산이 크다. 위안부 피해자 및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 이상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올해 1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배상 판결에서 한국 법원이 재차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일간 냉각 기류는 더욱 강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채 과거 문제와 미래 문제를 분리해 생각하자고 일본에 당부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입장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해결책 없인 일본과 관계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문 대통령이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며 양국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한일 간 우려"가 되고 있는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문 대통령이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했다고 발언한 데에 주목하며,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지용 문제와 관련해 “외교를 통해 현안 해결을 목표로 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와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2021.03.01. scchoo@newsis.com[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와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2021.03.01. [email protected]
일각에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하고 있는 한·미·일 협력 체계를 한일 양국 정상이 무시할 수 없는 탓에 화해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본다. 문 대통령이 이날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얘기한 것도 이를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한일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도 더이상 주저하지 말고 협력의 장으로 나와달라고 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일 협력을 강조한 이상 일본도 가만히 있진 못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올해 사실상 임기 마지막해이기 때문에 한일관계 개선이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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