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는 바깥에서 키우는 거라고, 그리 쉽게 목줄을 묶었었다. 1m 반경 안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을 존재의 삶은 어떤 것일까.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 곁에 있기로 했다. 똑같이 짧은 줄에 묶인 채./사진=최은솔 MBC 작가. 시골개, 1m의 삶 체헐리즘은 3월9일 밤 9시20분 MBC '아무튼 출근!'에서 방송된다.
자리에서 일어나 빙빙 돌아봤다. 두 걸음도 편치 않았다. 옴짝달싹, 1m짜리 자그마한 반원 안에 갇혀버렸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단 걸 곧 깨달았다. 흙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보이는 건 얼어붙은 강과 지평선, 들리는 건 바람 소리 뿐이었다.
강원도 강릉 한 가게 옆, 짧은 줄에 늘 묶여 있는 영동이. 이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사진=독자 제공
계기가 있었다. 여행 갔다가 우연히 바깥에 묶인 개를 봤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순했다. 다음 날, 비가 세차게 왔으나 녀석은 그 자리서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발이 땅에 붙은 듯 떠날 수 없었다. 언제 봐도 같은 모습이던 그 개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하염없이 날 보던 모습이.
그건 어떤 하루일지 상상이 안 갔다. "멍멍아, 오늘 하루가 어땠니?"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개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을 대신해 어떤 삶인지 작게나마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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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서 사는, 시골 개 멍순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멍순이는 이렇게 사람이 그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계속 어루만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늘 혼자 있었을 멍순이 삶을 짐작해야 했으므로./사진=남형도 기자
2시간 40분을 차로 달렸다. 구불구불한 길 끝에 경치 좋은 동네가 나왔다. 짹짹 지저귀는 참새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곳. 파란 하늘은 높고 쨍했고, 솜 점퍼 안으론 세찬 칼바람이 파고들었다.
옷을 두껍게 입지 않은 건, 명보영 수의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털이 촘촘한 개가 느끼는 추위가, 아마 사람이 깔깔이를 입은 것과 비슷할 겁니다." 너무 따뜻했다간 추위를 느끼는 게 다를 것 같아, 적당히 감내키로 했다.
개 보호자의 집을 먼저 찾았다. 문을 똑똑, 두세 번 두드리니 인상 좋은 한 남성이 나왔다. 그는 "추운데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했다"며 날 반겨줬다.
이어 개를 소개해줬다. 이름은 멍순이. 암컷이냐 물었더니 수컷이란다(나의 '성 고정관념'을 반성했다). 어릴 때 지인이 줘서 데려왔다고. 생각보다 많이 커져서 바깥에서 키우고 있다며. 산책은 지난해 가을에 한 뒤 못했다고 했다.
'헥헥', '끄엉헝헝헝'…반김은 끝날 줄 몰랐다
'삑삑' 소리가 나는 몇 천원짜리 장난감을 사다줬더니 이리 환히 웃었다. 매일 1m 반경 안에서 보내는 삶이란, 그리 작은 변화에서도 큰 기쁨을 느끼는 거였을까./사진=남형도 기자
쇠줄(줄을 자꾸 끊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에 묶인 멍순이는 날 보더니 난리가 났다. 큰 몸을 펄쩍 점프해 내 몸을 감싸더니, 그대로 직립보행을 하며 트위스트를 추었다. 쪼그리고 앉아 쓰다듬으니 얼굴을 핥아주고 아주 난리였다. "아구 반가워", "아이 예뻐", "귀여워"를 남발하며 멍순이의 체온을 온몸으로 느꼈다. '널 만나고 싶었어, 행복하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옥시토신이 콸콸 분비된달까.
멍순이와 친해지려 멀리서 가져온 선물을 꺼냈다. 누르면 삑삑 소리가 나는 분홍색 강아지 인형이었다. 녀석은 장난감이 마음에 드는지 입에 덥석 물었다. 신나서 쇠줄 끄는 소리와 '삐익, 삐익' 소리가 뒤섞였다. 멍순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형, 나 완전 개신남!" 녀석 얼굴이 그랬다.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래요. 이해해주세요.' 겨우 거리를 둔 날 빤히 보는 멍순이 표정이 그랬다. 그래서 눈빛으로 나도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다 이해해 멍순아. 많이 심심했을 것 같아.'
반경 1m, 추위 떨칠 방법이 없어서
짧은 줄로 발목을 묶고, 멍순이 옆에서 함께하고 있는 기자. 녀석은 늘 내쪽을 바라보았다. 흰 지붕의 집은 멍순이가 여름에 머물고, 빨간 지붕 집은 겨울에 머문단다./사진=최은솔 MBC 작가. 시골개, 1m의 삶 체헐리즘은 3월9일 밤 9시20분 MBC '아무튼 출근!'에서 방송된다.
정오가 가까운 데도 기온이 영하 6도를 찍었다. 고지대라 바람이 흡사 누가 얼음을 끼얹는 것처럼 얼얼했다. 가만히 있으니 더 추워서 입이 얼어붙는 듯했다. 귓불은 빨개져 얼얼했고, 단화를 신은 발은 감각이 무뎌졌다. 애써 움직이려 했지만 무용지물. 앉았다가 일어나거나,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걸로는 추위가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웅크리게 됐다.
얼어붙은 물을 깨고 새 물을 줬더니 벌컥벌컥 마시던 멍순이.짧은 줄로 발목을 묶고, 멍순이 옆에서 함께하고 있는 기자. 녀석은 늘 내쪽을 바라보았다. 흰 지붕의 집은 멍순이가 여름에 머물고, 빨간 지붕 집은 겨울에 머문단다./사진=최은솔 MBC 작가. 시골개, 1m의 삶 체헐리즘은 3월9일 밤 9시20분 MBC '아무튼 출근!'에서 방송된다.
그대로 '냉동인간'이 되어 200년 뒤에 깰 것 같아 엉거주춤 다시 일어났다. 좁은 공간이나마 움직였다. 애써 걸으며 열을 내볼까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멍순이 물그릇을 봤다.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꽁꽁 얼어 있었다. 얼음을 부수고 가져온 물을 꺼내 채워줬다. 멍순이가 벌컥벌컥 마셨다. 목 말랐던 거였다.
차디찬 흙바닥에서 먹는 '밥맛'
뽀얀 색깔의 국엔 흰 쌀밥이 말아져 있었다. 그게 뭐냐 물으니 할머니는 "북어 머리랑 밥을 국에 말았다"고 했다. 그걸 붓자마자 멍순이는 밥그릇에 코를 박고 냠냠 쩝쩝 맛나게 먹었다. 다 먹고도 아쉬운지 '댕그르르, 댕그르르르', 큰 그릇을 돌돌 굴리며 놀았다.
찬 바람을 많이 맞아선지, 멍순이 먹방을 보고도 입맛이 안 났다. 몸이 으슬으슬, 강한 바람에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보온 도시락을 꺼냈다. 아내가 "오늘은 묶여 있으니 밥도 못 먹겠다"며, 이른 아침 일어나 싸준 거였다.
흙과 돌이 섞인 찬 바닥에 털썩, 엉덩이에 찬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점심 메뉴는 김치 스팸 볶음밥, 그리고 반숙 계란 후라이가 그 위에 얹혀 있었다. 한 숟갈을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는데 추위와 싸우느라 맛있지만은 않았다. 따뜻하던 밥이 잠깐새에 식어 표면이 딱딱해졌다. 멍순이 밥도 그랬을 터였다.
어떻게든 열을 내고 싶어 억지로 다 먹었다. 점퍼를 끝까지 채워도 온몸이 추워 소화가 안 됐다. 대개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밥을 먹었으니. 체할 것 같아 제자리 뛰기를 또 했다. 발을 움직일라치면 당기는 힘에 되돌아왔다. 불편했다. 그러니 즐겁지도, 땀이 나지도 않아 이내 그만하게 됐다.
풍경마저 외워버린, 너무 지루한 오후
강원도 추위를 만만히 봤다가 점점 맛이 가고 있는 기자. 멍순이 보호자인 할머님께서 가져다주신 빨간 점퍼와 바지와 모자 덕분에 그나마 살았다. 점점 초췌해지는 날 위로하는 멍순이. 카메라 위치를 잘 아는듯./사진=최은솔 MBC 작가. 시골개, 1m의 삶 체헐리즘은 3월9일 밤 9시20분 MBC '아무튼 출근!'에서 방송된다.
힘들었던 촉각이 조금 가라앉은 뒤엔 지루함을 견디는 싸움이 시작됐다.
같은 풍경만 계속 바라보니 너무 무료했다. 나뭇가지 모양, 강에 남은 물줄기의 양, 근처의 돌 크기마저 외울 정도가 됐다. 적막한데 꼼짝할 수조차 없으니 심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 30분쯤 지났나 싶어 시계를 보면 고작 5분 지나 있었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웅크린 몸을 좌우로 들썩거렸다. 살아 있음을 알리는 몸짓이랄까. 그러나 그건 그뿐이었다. 몸서리칠 만큼의 지루함이었다.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일부러 멍순이를 보지 않았다. 녀석은 평소 홀로 있었으니까. 스마트폰도 꺼내지 않았다. 멍순이에겐 그런 다채로운 놀 것조차 없으니까. 바람 소리, 새 소리,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무언가를 덮은 비닐이 흔들리는 소리뿐.
오랜 시간 끝에 차도 위로 노부부가 산책하며 지나갔다. 인기척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려 빤히 바라봤다. 그건 꽤 오랜만에 느낀 변화였다. 옆을 보니 멍순이도 빤히 보며 꼬릴 흔들고 있었다. 그 맘을 알 것 같았다.
걷는 게 이렇게 소중했구나
해가 지기 전 멍순이를 산책시켜야겠단 생각을 했다. 녀석이 매일 바라본 세상 너머에, 더 크고 재밌는 냄새를 풍기는 공간이 널려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발목에 묶인 개 줄을 푸는 순간, 하늘로 치솟을 것처럼 홀가분했다. 걸어 다니는 것뿐인데, 로켓 부스터를 달고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자유를 만끽하는 건 그리 소중한 것이란 걸.
멍순이의 목줄에 묶인 쇠줄을 풀어버렸다. 녀석은 낌새를 차렸는지 벌써 신이 나서 난리였다. 힘차게 들썩이는 멍순이를 진정시키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산책 리드줄에 연결해 바닥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 멍순이의 들뜬 표정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러고 싶었어, 정말 너무너무 좋아, 미칠 만큼 행복해, 그렇게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으니. 서너 달 만에 하는 산책이니 오죽했을까.
비로소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우린 둘 다 살아 있구나,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스쳤다. "천천히", "옳지", "이쪽으로", "잘했어"하며 멍순이와 얘기하고 기쁘게 눈을 맞췄다. 천방지축 날뛰던 녀석은 이내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네가 맘껏 다니는 걸 정말 보고 싶었어, 넌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멍순이도 그런 맘을 알아준 것인지.
멍순이는 비로소 졸았다
조금 떨어져 같은 시간을 또 보냈다. 멍순이는 한참이나 나를 빤히 바라봤다. 삼킬듯한 눈망울, 살랑거리는 꼬리의 의미를 알았다. 또 나갈 거라는 기대와 언제 나갈 수 있냐는 물음. 그걸 채워줄 수 없기에, 반대편을 바라보며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보지 않아도 먹먹히 다 들렸다. 조르는 듯 움직이며 내는 쇠사슬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그래도 산책 다녀온 뒤에야 멍순이는 처음으로, 바닥에 누워 꾸벅꾸벅 졸았다. 고작 세 살인데 오죽했을까. 넘치는 기운을 그나마 좀 쓴 것이리라. 그러나 작은 몸짓만 보여도 다시 벌떡 일어나 내게 '끼잉낑' 소릴 내며 찾았다. 헛된 희망이 더 힘들까 싶어 숨죽여 웅크렸다. 그러면 비로소 잠잠해졌다가, 훌쩍거리는 소리만 내어도 다시 내게 달려와 귀를 젖혔다.
오후 5시가 넘으니 해가 서서히 떨어졌다. 아침엔 왼쪽이었고, 낮엔 머리 위였으며, 이젠 오른편에 길게 뻗은 산이 품어줄 듯 가까워졌다. 하루 내내 같은 자리에서, 해가 궤적을 그리는 걸 다 보는 건 처음이었다. 멋진 풍광이 지겹고 지겨워 눈을 감았다. 옆으로 웅크리고 잠시 누웠다. 다시 일어나니 5분이 지나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팔굽혀 펴기를 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고, 복싱 원투 자세를 했다. 그러니 또 5분이 지났다. 그놈의 5분, 미칠 듯 느리게 가는 시간.
추우니 집에 좀 들어가라는데, 고집스레 버텼다
예쁜 노을도 같은 자리에서 매일 봤으니, 아마 새로울 게 없었겠지. 작은 온기가 더 그리웠을 것 같다. 그래서 그날 찾아간 나를 계속 봤을 것 같아. 하루를 보내니 그 모습이 이해가 되어서 마음이 참 아팠다./사진=남형도 기자
얼어붙은 두 손을 뻗어 녀석의 몸을 매만졌다. 흠칫 놀랄 만큼 차가웠다. 일어나 두 팔과 다리로 몸을 감싸 안았다. 남은 온기라도 줄 요량이었건만 이 녀석, 놀자는 줄 알고 또 신이 났다. "야, 멍순아. 집에 들어가 인마, 추워." 속상해져 녀석을 다그쳤다. 간식으로 유인해 집에 집어넣었더니 다시 나왔다. 엉덩이를 밀어 넣었더니 낑낑 버티며 안 들어갔다. 제발 말 좀 들으라고 한동안 씨름을 했다. 결국 내가 졌다.
추위보다 더 힘든 게 외로움이었구나. 그 절절한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외워버릴 듯 익숙해진 풍경조차 보이지 않았다. 낮의 지루함마저 사치였을 길고도 깜깜한 밤. 가끔 오가던 차 불빛도, 사람도 다 멈추고 가로등 불빛 하나만 위로하는 적막한 밤. 울어도 누구 하나 대답 없는 외로운 밤. 그리 긴 어둠을 견디고 일어나면, 또다시 펼쳐지는 똑같은 광경.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틀 안에서, 또 하루를 견뎌야 하는 1m의 삶.
그러니 참으로 오랜만에 누군가가 와서 곁에 머물러 주었을 때, 목이 팽팽해지도록 쇠줄을 당기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오려 했던 거라고. 그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몸짓이 온 마음으로 다 이해가 됐다.
솔직히 말할게, 난 끝날 걸 알아 견딜 수 있었다고
참으로 고요했던 강원도 인제의 한 동네. 그날의 난 돌아와 바삐 보냈고, 멍순이는 오늘도 그곳에서 같은 하루를 보냈으리라. 그게 괜스레 참 미안했었다./사진=최은솔 MBC 작가. 시골개, 1m의 삶 체헐리즘은 3월9일 밤 9시20분 MBC '아무튼 출근!'에서 방송된다.
발목에 묶인 목줄을 풀고 여전히 묶인 멍순이를 바라봤다. 너무나 살 것 같지만 홀가분하진 않은, 반쪽짜리 자유에 숨이 막혔다. 불안한 눈빛으로 날 보는 녀석에게 고백했다. "오늘 정말 힘들었어. 끝날 걸 아는 체험이라 견딜 수 있었어. 언제 마칠지 몰랐다면 아마 못했을 거야. 나 혼자 떠나서 정말 미안해." 그런데도 해맑게 꼬릴 흔드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차갑고 굳어버려 엉망이 된 얼굴을 멍순이는 몇 번이고 핥아줬다. 온통 얼어버린 세상에서 따뜻한 건 그 혓바닥의 온기뿐이었다. 딱딱한 찰흙 반죽처럼 뻣뻣한 몸을 일으켰고, 마침내 하루 내 갇혀 있었던 1m 반경을 벗어났다. 온종일 눌러둔 '일시 정지'가 풀린 느낌이랄까. 제자리서 발을 재빠르게 굴리고, 제대로 기지개를 켰다. 이제야 몸 전체에 피가 도는 것 같았다.
짧은 줄에 묶여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과, 직접 묶여 보는 건 정말 많이 달랐다. 삶의 반경이 제한된다는 것, 그건 신체적인 걸 넘어 심리적 좌절까지 겪게 하는 힘든 경험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짧은 줄에 묶인 개들, 그 '사각지대'에서
전국 곳곳에서 짧은 줄에 묶인 채 '1m의 삶'을 매일 살아내는 개들. 불법도 아닌 사각지대에서 그 지루한 나날을 견디고 있다./사진=독자님들 제공
횟집에 묶여 앉지도 못하는 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차도 변에 묶여 있는 개, 공장서 이불 한 장 없이 묶여 있다가 새끼를 여덟이나 낳은 개, 고물상 앞 짧은 줄에 묶여 남은 밥을 먹으며 사는 개, 제주 컨테이너 앞 귤밭 쪽에 묶여 비바람이 불어 집이 날아가도 쳐다도 안 보다가, 짖으면 주인에게 맞는다는 개까지.
불법도 아니라 뭐라 강제할 수도 없고, 개들은 원래 바깥에서 그리 키우는 거라 여기니 설득은 어렵고, 그러나 마음이 쓰여서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고, 그런데 주인이 있으니 돌보고 산책하는 것마저 눈치 보이는. 추산도 안 되는 그런 수많은 개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들의 삶에선 어떤 문제가 생길까. 명보영 수의사(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는 "흙에서 생활하면 진드기, 벼룩, 심장사상충 등에 더 많이 노출돼 질병에 취약하고, 혹서기엔 열사병, 혹한엔 동상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체구가 작고, 나이가 3~4개월 이하로 적으면 버티기 힘드니 바깥서 키우면 안 된단다.
심리적인 부분도 마찬가지. 명 수의사는 "계속 묶여 있으면 사람과의 사회화, 다른 동물과 접촉이 한계가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다"며 "그러면 지속해서 짖거나 헝겊 등을 물어뜯는 강박 행동, 한 곳을 빙빙 도는 등의 정형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멍순이를 위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산책한다는 단풍이를 위해, 서울 송파구를 찾아 직접 산책에 나선 기자. 이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벽부터 산책나가는 걸 기다린다고 했다. 짧은 줄에 묶인 삶, 단풍이에게 그것만이 희망이었으리라. 그래서 할 수 있는 거라도 하고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를테면 행동반경은 넓힐 수 있다. 명 수의사는 "같은 공간이라도 1m 짧은 줄에 묶이는 것과, 3m, 5m, 10m 길이가 많이 달라서 사회화에 도움될 수 있다"고 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저희가 (짧은 줄을) 긴 줄로 바꾸는 걸 하는데, 초기만 해도 없어서 철물점에서 제작했었다"며 "지금은 긴 와이어 줄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실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개 와이어 줄'을 검색하니, 10m짜리 줄도 1만원 정도 금액이면 살 수 있었다. 묶으면서도 도르래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게 많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산책. 주인이 안 하거나 사정상 어렵다면 주변에서 산책시켜줄 수 있다. 명 수의사는 "제일 신경 쓸 수 있는 건 하루 10분이라도 가능하면 산책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7일, 이형주 대표와 함께 서울 송파구를 찾아 단풍이를 산책시켜봤다. 일주일 만에 산책하는 녀석은 신이 나서 난리가 났다. 이 대표는 "산책하는 날이면 단풍이가 새벽 6시부터 우릴 기다린다"고 했다.
정책적으로 필요한 건 '중성화'다. 단풍이만 해도 벌써 2~3번은 새끼를 낳았다고. 그렇게 나온 새끼들은 돌아다니다 유기견이 되거나, 또다시 짧은 줄에 묶여 생을 보낸다. 그래서 경기도나 제주도 등 일부 지자체에선 '시골 개 중성화 사업'을 시범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설득하는 작업 역시 쉽지 않은 편이란다.
시골 개와 반려견은 다를까. 전자는 마당서 짧은 줄에 묶어 키워도 되고, 후자는 집에서 애지중지 아껴야 할까. 어쩌면 오래도록 그리 여겨졌을 수 있으나, 다 똑같은 개라는 걸. 사람이 좋아 귀를 젖히며 꼬릴 흔들고, 맛난 간식을 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산책하면 세상의 별난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하는. 적어도 하루 내내 지켜본 멍순이는 분명 그랬다. 그런 생각이 많아진다면, 너의 삶을 더 아껴주는 이도 많아질 거라고.
몇 달만에 산책을 한 뒤 지쳐서 고단히 낮잠에 든 멍순이. 더 멀리 뛰어가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하는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그런 마음으로 사진에 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멍순이와 헤어지기 전 보호자에게 이리 부탁했다.
"선생님, 제가 하루 묶여 있어 보니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가만히 있으니 춥고, 할 게 없으니 심심하고, 시간도 너무 안 가고요. 그런데요. 그러다 산책하니 정말 살 것 같더라고요. 멍순이도 난리가 났었어요. 신나서 펄쩍펄쩍 뛰고, 활짝 웃고요. 개들도 웃거든요.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멍순이 산책 가끔이라도 시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주시면 진짜 감사할 것 같아요."
가만히 듣던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허리가 나아지면 꼭 산책을 많이 시켜주겠노라고. 멍순이가 당기는 힘이 좋아서 지금은 못 하는 거라고 말이다.
전화를 끊은 뒤 날 빤히 보는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멍순아, 내가 너 대신 말씀드렸어. 너 오늘 보니까, 누가 오면 마냥 꼬리 흔들고 좋아하더라고. 그럼 다들 잘 모르잖아. 평소 네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말이야. 근데 넌 그걸 다 표현하긴 서툰 것 같아서. 그래서 오지랖 좀 부렸어. 잘했지? 네가 좀 더 행복했으면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