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반도체와 국제질서의 변화

머니투데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1.02.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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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반도체와 국제질서의 변화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을 거치면서 반도체는 현대문명에서 핵심요소가 됐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최고의 수출품이 된 지 오래며, 특히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대한민국은 산유국과 마찬가지 공급 측면에서 절대적 지위를 점하게 됐다. 미국에서 시작한 반도체산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계로 확산하고 분업화해갔다. 미국이 반도체 설계에 집중했다면 유럽과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와 소재에, 그리고 이와 같은 요소들을 활용해 최종 생산은 대한민국과 대만이 담당하는 체계는 안정적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반도체 국제 분업체계는 2019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적 갈등이 격화하면서 일본은 기습적으로 반도체 생산의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조치를 취했다. 우리나라는 이에 맞서 국산화를 선언하고 관련 투자를 늘려나갔다. 일회성 사건으로 간주될 수 있던 이러한 갈등과 분쟁은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질서 변화의 서막이었다.
 
중국은 산업 고도화의 핵심요소로 반도체를 지목했고 국가 차원의 막대한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성장을 견제하고자 중국 내 반도체 생산과 관련한 기술 및 장비 수출에 대한 제한을 강화했으며 이는 본격 성장의 초입에 있던 중국 반도체산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국가간 경쟁에 기술과 산업이 노골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립돼 가던 대만은 미국과 협력을 강화했다. TSMC로 대표되는 대만 반도체 생태계는 미국 IT(정보기술)기업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탄탄하게 성장해왔고 미국의 중국 견제 흐름이 본격화하면서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2021년 초부터 발생한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사태는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로 하여금 대만에 증산을 요청하면서 대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대만의 부상에 대해 중국은 직간접적인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과 대만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미국과 유럽으로 하여금 아시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위험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500억유로에 이르는 반도체 제조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미국 역시 대한민국과 대만을 앞서는 수준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에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비메모리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균형잡힌 반도체산업 성장을 도모한 우리에게 이러한 변화는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작용한다. 견제와 압박은 커질 것이며,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에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초미세공정으로 대표되는 고도화와 더불어 아날로그 반도체를 포함한 보다 다양한 반도체 생산으로 대응함과 동시에 국제적 흐름에 맞춘 적절한 해외투자 및 기술협력 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경제성에 초점을 맞춰 산업의 해외 이전을 감내하던 상황은 막을 내리고 있다. 비효율을 감내하고라도 안정적 공급 및 자급을 우선하는 변화는 기술을 기업의 영역을 넘어 국제경제와 외교관계를 변화시키는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과거의 익숙함과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변화와 대응을 준비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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