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광기는 12년 전인 2009년 신종플루로 아들 석규 군을 잃었다.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는 12년 만에 처음 아들과 아들을 통해 달라진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기록한 이야기다. /사진=김휘선 기자
절망이라는 세계에 갇혀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던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한 첫 번째 계기가 아들 사망보험금이었다. 부부는 아들이 자신들을 위해 남긴 생활비를 도저히 건드릴 수 없었다.
석규를 잃기 전 이광기의 인생에서 기부나 나눔 같은 가치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때론 명품을 걸치며 연예인 삶을 유지했고, 재산 증식 같은 물욕도 생존의 중요 화두로 여겼다. 석규를 보낸 후 그의 삶은 우연과 기적이라는 키워드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탤런트 이광기와 아들 석규 군. /사진제공=다연출판사
석규가 떠난 뒤 해가 바뀌고 3개월이 지난 2010년 1월 12일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나 3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먼 타국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이광기는 무의식적으로 끌렸다. 그리고 무작정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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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유독 한 아이만 울고 있는 거예요. 세손이라는 이름의 그 아이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석규랑 같은 여덟 살이더라고요. 깜짝 놀라 ‘아저씨가 안아줄게’하고 안았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참 서로 펑펑 울고 있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요. ‘이 아이를 품기 위해 내가 여기에 왔구나’하고요.”
아이티는 그렇게 2년마다 한 번씩 방문하는 제2의 고향이 됐다. 최빈국 아이를 위해 학교도 지었다. 이곳 기부금과 봉사 활동비를 모으기 위해 잃어버린 어릴 때 그림 그리는 취미를 되살렸다.
미술 재능을 살려 작품을 만들고 이 뜻에 동조하는 기성 작가들이 작품을 또 준비해 경매 사이트에 내놓고 이 연대를 통해 모인 기금을 기부하거나 신진 작가 양성 사업에 쓴다.
탤런트 이광기가 아이티에서 만난 아이들. 그는 "세상의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돌보고 섬기겠다"며 2년에 한번꼴로 문화예술을 통해 아이티에 방문, 나눔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다연출판사
필리핀에서 세 명의 남자아이를 받는 분만실 봉사활동을 하던 중 이광기에게 커다란 깨달음 하나가 더 다가왔다.
“우리 부부도 다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필리핀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보니, 그동안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말하던 제가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사실 말로만 그렇게 했지, 실은 ‘내 자식만 자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요. 그 이후 제 기도가 바뀌었어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내 주변 사람을 위한 기도로요. 저 아이들을 세상의 아이로 품을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고 그 아이를 섬기겠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기적은 또 찾아왔다. 아내에게 임신 소식이 들린 것이다. 그리고 석규가 떠난 지 햇수로 3년 만에, 석규가 가장 좋아하는 ‘눈 오는 날’이자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나던 1월 12일에 셋째 준서가 탄생했다.
모든 걸 내려놓을 때 다시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우연의 기적’은 이광기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화두였다. 연극 ‘가시고기’의 배역을 준서를 임신하기 전 필연처럼 맡고 그 출연료 전액을 암 환우에게 기부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빠의 숨겨진 긍정 에너지를 마음껏 불어넣으려는 석규의 보이지 않는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들 석규 군을 잃고 12년만에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를 펴낸 탤런트 이광기. /사진=김휘선 기자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 역시 눈물은 절망의 상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의 눈물을 머금고 자란 꽃은 희망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걸 석규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이제 아들이 있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해요. 석규아, 아빠 잘하고 있지?”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태연한 척했지만, 그의 눈가는 여전히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탤런트 이광기 가족. 12년 전인 2009년 신종플루로 사망한 석규 군(가운데)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족 사진에 맞춰 넣었다. /사진제공=다연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