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과 국정농단 재판·구속 등으로 인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리더십 공백,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일본불매운동, 코로나19까지 연이은 외부악재들이 롯데의 위기를 부른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업문화에 따른 혁신의 부재에 있다는 안팎의 지적이 나온다.
롯데그룹 상장계열사의 지난해 매출(4분기 매출은 컨센서스)은 전년 대비 8.1% 감소했다. 삼성그룹, LG그룹이 각각 1%, 3% 증가했고 현대차, SK그룹이 각각 2.3%, 12.2% 줄었다. 비슷비슷한 실적에도 주식시장에서 롯데와 다른 그룹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린 것은 그만큼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 차이 때문이다.
반면 롯데그룹은 2015년 경영권 분쟁 이후 리더십 공백과 외부 악재, 폐쇄적인 조직 문화 등이 겹치며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 롯데그룹의 총 매출은 매년 하락 추세다. 2018년 84조원이었던 그룹 총매출은 2019년 74조500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매출도 감소세를 이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룹의 근간인 유통, 식품 부문은 이전처럼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시장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유통 패러다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향후 5년간 200여개 점포를 정리하는 등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통합 온라인몰인 롯데온을 출범하는 등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아직은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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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장동력으로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화학 부문도 기대에 못 미치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6년 삼성 화학 계열사를 3조원에 인수하며 글로벌 화학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꿨지만 지난해 추진했던 7조원 규모의 히타지케미칼 인수를 실패하는 등 투자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롯데는 유통업계 최강자였지만, 그동안 시장을 이끌어 가는 변화의 선두에 서기보다 신규 사업에 후발주자로 들어가 막강한 유통망과 물량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는 보수적인 경영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문화와 경영전략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대응에는 뒤쳐질 수 밖에 없고 점차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신동빈 회장은 최근 2년간 체질개선을 위한 조직 쇄신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VCM(Value Creation Meeting 옛 사장단회의)에서 "과거 성공 체험, 성공 경험에 집착하지 말고 1위가 되기 위한 투자를 과감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도 권위적인 문화가 일부 존재한다"며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사드, 일본 불매, 코로나19 등 연이은 외부 요인으로 주력사들을 둘러 싸고 있는 사업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며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일본식 경영 스타일이 이어지는 외부 위기와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