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유죄 뒤집힌 논란의 '레깅스 몰카 사건' 내막

머니투데이 임찬영 기자 2021.01.0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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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같이 타고 있던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 등을 영상으로 촬영해 재판에 넘겨진 남성이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5월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단말기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피해여성 B씨의 뒷모습을 휴대전화로 몰래 영상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레깅스를 입고 있던 B씨의 엉덩이와 허벅지 등 하반신 위주로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1심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레깅스는 비슷한 연령대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B씨 역시 이런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했다"면서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원심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가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의복이 몸에 밀착해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신체 부분이라도 어느 장소에서,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됐느냐에 따라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며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거나 B씨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이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B씨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해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촬영 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며 "모습이 촬영되는 경우 고정성과 연속성, 확대 등 변형가능성, 전파가능성 등에 의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고 나아가 인격권을 더욱 중대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라는 B씨의 진술은 성적 모멸감, 함부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당했다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와 수치심의 표현으로서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라며 "촬영 대상, 촬영 결과물, 촬영 방식 등 B씨가 촬영 당한 맥락과 반응에 비춰 보면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은 2심 판결 당시 재판부가 판결문에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관련 사진을 첨부하며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법원에서는 해당 판결문에 대한 열람제한 조치 요구가 빗발쳤고 대검찰청도 지난해 불법촬영 사진을 공소장 및 불기소장에 첨부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의 보호법익으로서의 '성적 자유'를 구체화해 소극적으로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고 최초 판시했다"며 "성적 수치심이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피해감정을 포섭하는 의미라고 판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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