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침대 쪽잠·수액으로 버텨"…코로나 방역 최전선의 새해

뉴스1 제공 2021.01.0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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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로나 상생이 희망]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을 가다
하루 최대 2000건 검사도…"백신으로 집단발병 감소 기대"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편집자주]신축년 새해가 밝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는 걷히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중한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코로나시대'. 뉴스1광주전남본부는 어려움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시민'들을 통해 희망을 찾아보고자 한다.

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 생물안전 2듭급(BL-2) 실험실에서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 생물안전 2듭급(BL-2) 실험실에서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지난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 광주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연구원에도 어김없이 신축년 새해가 찾아왔다.



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달 15일 화정동에서 이곳 서구 유촌동 신청사로 옮겨 와 29년 만에 새 둥지를 틀었다.

4일 오후 새로운 청사에서 기자를 맞이한 정재근 보건환경연구원장은 "화정동 지하실과는 아주 다르죠?"라며 웃어 보였다.



지난해 3월 광주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화정동 청사보다 규모도 훨씬 컸고 보안을 위한 각종 장비도 늘어나 있었다.

보건환경연구원 신청사는 연면적 약 1만1087㎡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시비 300억원을 들여 2019년 1월 착공에 들어가 완공했다. 직원들은 몇 달간 실험 장비를 차례로 옮기며 지난달에야 완전히 이사를 마무리했다.

정재근 원장은 "당시에 취재 왔을 때만 해도 하루 검사량이 100~200건이 쏟아져 '전쟁터가 따로 없다'고 인터뷰한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200~300건은 우스울 정도다. 가장 많을 때는 2000건 넘게 진행했고 요즘에도 하루 평균 1000건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정재근 원장이 '백신이 나온 올해는 일상을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정재근 원장이 '백신이 나온 올해는 일상을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는 지난해 1월 13건, 2월 1129건, 3월 2621건, 4월 4218건, 5월 4726건, 6월 5942건으로 점차 검사 건수가 증가하더니 2차 유행을 맞은 7월 1만4575건, 8월 1만8167건까지 검사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어 9월 6933건, 10월 5737건에 다소 감소세를 보이다 4차 유행을 맞은 11월 2만9598건, 12월 2만422건으로 폭등했다. 연말에는 한 달 검사 건이 2만 건을 훌쩍 넘겨 하루 평균 1000건 이상을 소화해야 했다. 지난해 진행한 11만4081건의 검사를 보건환경연구원 연구원 13명이 모두 감당한 셈이었다.

그나마 11월부터 민간수탁 기관인 '씨젠'으로 야간 검사 건과 요양병원, 요양보호시설 검사 건을 분담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검사량이 줄든, 줄지 않든 온종일 실험실에서 검체 균질화 작업을 진행하는 연구원들의 일상은 같았다.

당시 감염병연구부장으로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였던 정재근 원장은 지난해 원장으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유전자 추출을 위해 실험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원장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나 하나라도 힘을 보태줘야 직원들이 조금이나마 수고를 더니 지금도 실험에는 참여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비상 근무 계획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 정재근 원장이 1월 코로나19 비상근무 계획표를 가리키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 정재근 원장이 1월 코로나19 비상근무 계획표를 가리키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정 원장이 새롭게 바뀐 청사를 보여주겠다며 옆 건물로 안내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갔던 화정동 청사와 달리 지문 인식으로 열리는 문을 열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철문을 몇 번 지나서야 코로나19 실험실로 진입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검체 분석은 생물안전 2등급 밀폐실험실인 BL-2(Biosafety Laboratory-2)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이 갓 들어온 검체에서 유전자를 추출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년만 해도 코로나19의 위험성과 전파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던 터라 검체 불활성화 작업은 생물안전 3등급 밀폐실험실인 BL-3에서 진행했다.

그런 탓에 연구원들은 고산지대보다 낮은 기압의 BL-3를 검사 때마다 들어가야 했다. 방호복을 겹겹이 껴입고 2중, 3중으로 된 문을 지나서야 음압실험실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 장시간 머무르면 신체에 무리가 될 수 있어서 폐기할 방호복을 벗고, 새로운 방호복을 입기를 반복하며 실험실을 수차례 오가야 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BL-2에서도 불활성화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돼 연구원들의 체력적 부담이 많이 줄게 됐다.

BL-2에서 만난 서진종 감염병연구부장(55)은 정 원장 뒤를 이어 부장직을 맡게 됐다. 감염병연구부장을 맡던 지난해에 서 부장은 3주마다 수액을 맞으며 '링거 투혼'을 이어왔다고 전했다.

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서진종 감염병연구부장이 실험실 앞에 서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서진종 감염병연구부장이 실험실 앞에 서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서 부장은 "전남대병원에서 확진자가 속출했을 때 양성과 음성 경계에 있는 검체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새벽 2시에 실험에 들어가 오전 6시에서야 양성으로 최종 판정이 났다. 그러고 또 다른 실험을 하다 점심을 먹고 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30시간 넘게 깨어있더라. 몸이 붕 뜨는 기분이고 정신도 멍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날은 또 정신없이 잠만 자다 다시 출근하게 되는데 몇 달이 지나니 몸에 무리가 오더라. 3주에 한 번씩 수액을 맞으며 버텼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쉴 수 없었다. 그는 "연구원들 모두 쪽잠을 자며 실험에 매진하는데 내가 하루 빠지면 누군가가 또 밤샘근무를 해야 하는 환경이라 어김없이 실험실에 나와야 했다. 나 말고도 모두가 같은 심정이라 다들 함께 버텨준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BL-2 연구실 옆으로 넘어가니 박정욱 연구사(40)가 검체들의 최종 검사 결과를 그래프로 확인하고 있었다. 빨간 그래프가 높이 치솟은 것은 '양성'을 가리키는데 이날도 양성 환자가 나와 빨간 그래프가 높이 솟아 있었다.

박 연구사는 "이건 확실한 양성이라 그래프가 뚜렷하다. 양성과 음성 경계에 있는 검체가 나올 때면 재검사를 진행해야 해서 몇 시간에 거친 작업을 다시 진행해야 할 때가 있는데 오늘은 운이 좋다"고 말했다.

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박정욱 연구원이 코로나19 검사 그래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촌동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박정욱 연구원이 코로나19 검사 그래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2020.1.4/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실험실에서 만난 연구원들에게 올해는 소망이 무엇이냐는 공통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모두 같았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박정욱 연구원도 "밤샘 근무를 끝내고 간이침대를 펼쳐 실험실 한편에서 잠을 자다 눈을 뜨면 다시 출근을 하곤 했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진정돼 가족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며 작은 소망을 전했다.

정재근 원장은 "백신이 나왔다고 해서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위드 코로나'이다. 다만 요양병원처럼 집단감염과 그에 따른 고령 환자들의 사망률이 낮아지길 기대한다"며 "지역 내 무더기 확진 확률이 줄어 의료진과 연구원들, 그리고 시민들이 지난해보다는 조금은 나은 환경에서 숨 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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