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버스를 타고 평양 고려호텔을 출발해 대동강의 '충성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평양-개성고속도로와 연결된다. 남쪽으로 평양시 낙랑구역을 통과해 동쪽으로 빠져나오면 평양-원산고속도로로 이어진다. 1978년에 완공된 북한의 첫 고속도로다. 낙랑구역에서 시작해 상원·연산·곡산·신평·법동을 거쳐 원산시에 이르는 180km 콘크리트 포장도로다.
첫 경유지인 상원에서 빠져나오면 읍내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검은모루동굴 유적이 있다. 1966년 석회석을 채광하다 우연히 29종의 동물화석과 구석기인의 뗀석기(打製石器)가 발견된 곳이다. 당시로서는 한반도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남쪽의 연천군 전곡리 등 구석기유적지들처럼 역사박물관을 조성하고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 동굴 앞에 덩그렇게 해설비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평양에서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유일한 중간휴게소인 '신평관광휴게소'가 나온다. 이 일대를 작은 금강산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해서 '신평금강명승지'라고 부른다. 2013년 북한이 '신평관광개발구'로 지정한 지역이다. 진주계곡, 금강계곡, 장수봉계곡, 옥류동계곡, 구룡계곡, 만물상계곡, 도화동계곡, 총석정계곡으로 불리는 8개의 계곡이 조밀하게 분포돼 '계곡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북한은 평양-원산고속도로와 인접한 신평관광개발구를 유람과 탐승, 휴양, 체육, 오락 등 관광산업지역으로 개발할 계획이며 1억 4000만 달러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관광개발구로 지정된 후 기존의 휴게소 건물 주변에 몇 개의 건물이 들어섰지만 아직까지 본격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신평읍에서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양덕온천(행정구역상으로는 평안남도 양덕군)이 나온다. 양덕온천은 조선시대부터 이용됐고 일제강점기 때 확장 개발됐으며, 2019년 북한이 '양덕온천문화유양지'로 개발해 준공한 곳이다. 양덕온천문화휴양지는 북한이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관심 갖고 추진해온 사업 중 하나로 실내·야외온천장, 스키장, 승마공원, 여관을 비롯해 치료 및 요양구역과 체육문화기지, 편의봉사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관광객 유치는 시작도 못하고 중단된 상태다.
신평휴게소에서 차를 한 잔 하고 동쪽으로 길을 재촉하면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의 접촉점에 자리한 마식령(768m)에 도착한다. 말도 이 고개를 넘기가 힘들어 쉬고 갔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고, 예로부터 황해·평안남도 등의 관서지방과 관북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중요한 고개였다. 북한은 2013년 이곳에 원산-금강산지구 개발의 일환으로 스키장을 건설하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마식령을 넘어 동해안쪽으로 내려가면 원산 중심부가 도착한다. 도로사정이 나빠 평양에서 원산까지 5시간 가까이 걸린다. 원산청년발전소와 원산군민발전소가 연이어 완공된 후 전기 사정이 좋아지고, 원산역사를 비롯해 중심부에 고층건물이 들어섰다. 2015년에는 북한의 두 번째 국제공항으로 갈마국제공항이 문을 열었다. 현재는 송도원유원지부터 갈마반도에 이르는 갈마해안지구 건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특히 갈마반도의 명사십리 해안가에는 호텔과 리조트 건물 50여 동이 건설돼 막바지 작업만 남긴 상태다.
북한은 갈마해안지구와 마식령스키장을 연계해 사계절 휴양지로 개발하고, 여기에 원산 인근의 역사유적지를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48호에 따르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는 원산지구, 마식령스키장지구, 울림폭포지구, 석왕사지구, 통천지구, 금강산지구 등이 포함돼 있다. 그중 역사유적지로 새로 단장한 곳이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원찰인 석왕사(釋王寺)다.
'설봉산석왕사기(雪峯山釋王寺記)'에 따르면 고려 말인 1384년 이 절 근처의 토굴에서 지내던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절을 크게 짓게 됐다고 한다. 고려말기에 세운 응진전과 호지문, 조선시대에 세운 대웅전과 팔상전을 비롯하여 53채의 건물들이 있었지만 6·25전쟁 때 폭격으로 불이문, 조계문, 설성동루, 호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됐다.
석왕사 주변은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울창하다. 출입문인 불이문(不二門)은 특이하게 석왕사 입구의 돌로 된 홍예교 위에 세워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1751년(조선 영조 27)에 세운 것으로 1995년도에 복구됐다.
이 누각을 지나면 대웅전터와 호지문(국보유적 제176호)이 나온다. 대웅전 앞에 있는 호지문(護持門)은 1392년(조선 태조 1)에 창건되고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52년에 복구한 누각이다. 전쟁 때 파괴된 후 터만 남아 있던 대웅전은 2019년 12월에 응진전, 심검당 등의 건물과 함께 복구됐고, 전각 안에는 10개의 불상이 안치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워 시멘트로 복구됐다. 북한이 석왕사를 휴양지로 개발하고, 널리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원산가는 길을 열리면 이곳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석왕사 인근의 안변에는 신라의 제34대 효성왕 연간에 처음 건립된 가학루(駕鶴樓, 국보유적 제103호)가 남아 있다. 조선 성종 때 개축돼 안변 객사(客舍, 여관)의 부속 건물로 연회장으로 사용됐고, 6·25전쟁 때 파괴된 뒤 복구됐다.
북한의 원산지구 개발계획에 따르면 석왕사 외에 명적사(明寂寺)와 양천사(梁泉寺)도 관광지역에 포함돼 있다.
명적사(국보유적 제105호)는 원산시내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진 반룡산 중턱에 있다. 원산에서 평양으로 가는 구도로를 따라 가야하고, 절 입구까지 도로가 나 있지 않아 30분 이상을 걸어야 돼 아직까지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600년(신라 진평왕 22)에 창건된 고찰이지만 현재는 조선시대 때 중건된 대웅전과 심검당 건물만 남아 있고, 일부 석조물로 부도들이 있다. 대웅전 안에 불상도 탱화도 남아 있지 않다.
양천사(국보유적 제113호)는 원산시내에서 북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함경남도 고원군 동흥산 기슭에 있다. 753년(신라 경덕왕 11)에 창건됐고, 조선시대 때 중건된 후 여러 차례 보수된 고찰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석왕사의 말사였고, 지금은 대웅전과 만세루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양천사는 대웅전 천장에 그려진 별지화(別紙畵)가 유명하다. 현재 28장의 별지화가 남아 있는데, 단순한 그림이라기보다 하나의 훌륭한 회화작품을 방불케 한다. 오른쪽 공포 사이 벽에는 당시의 세태풍속을 담은 여섯 장면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좌우 옆면의 빗천장에는 무악도(舞樂圖)가 선명하다.
대웅전 앞 만세루에는 1693년에 주조된 큰 종이 걸려 있다. 원래 함흥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가 2000년대에 양천사로 옮겨왔다.
북한은 원산의 갈마해안지구에 신도시 버금갈 정도의 대규모 관광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올해 코로나19사태와 연이은 자연재해로 예정된 준공식이 미뤄지고 있다. 현재 강원도에서는 원산과 강릉을 잇는 '원산~금강~설악 국제관광자유지대'를 구상하고 있다. 기존의 금강산관광을 북으로는 국제관광자유도시로 개발 중인 원산, 남으로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도시인 강릉으로 확장해 종합레저휴양 중심의 복합관광벨트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핵심 개념이다. 이러한 구상이 단순히 '계획'이 아니라 '현실'로 가시화 돼 원산과 금강산일대의 역사유적을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