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 도중 마대자루 위에 올라가 밟고 있는 기자. 이렇게 7~8번을 반복해서 눌러준 뒤에야 자루 하나가 마무리 된다. 이 또한 아끼기 위한 경비원들 노력이다. 발이 잘못 빠지면 위험하다./사진=경비원 정씨
밤 10시, 경비원 김용기씨(가명)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누우면 뻗을 것처럼 피곤했으나 낮에 봤던 '경비원 휴게실'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비어 있는 초소가 없다면 꼼짝없이 거기서 자야 했다. 휴게실에 갔을 때 김씨가 했던 말이 뇌리에 콱 박혀 있었다. "여기서 자면 쥐가 배 위로 막 타고 다녀, 진짜야." 퀴퀴하고 칙칙한 공간, 석면이 드러난 천장을 보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다행히 남은 경비 초소 하나가 있었다. 들어가 좁다란 의자에 몸을 뉘었다. 몸을 잘못 돌리다간 굴러떨어질 만한, 딱 그 정도 공간이었다. 지독한 피로가 몰려왔으나 쉬이 잠들지 못했다. 경비 초소 창문엔 주민들 그림자며 말소리가 휙휙 파고들었고, 오가는 배달 오토바이 굉음은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잡생각에 뒤척이다 보니 1시간이 훌쩍. 고요하고 컴컴한 어둠조차 사치인 겨울밤이었다.
참 오래 걸렸다. 고(故) 최희석 경비원님이 주민 갑질로 숨진 게 지난 4월. 그 삶을 체험해 짐작하고 싶었으나 섭외가 무척 어려웠다. 다들 고사했다.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고 했다. 경비원 아버지가 갑질을 당한다며 제보한 딸도, 결국 부친을 설득하지 못했다. 생계가 걸린 노년 일자리란 게 그토록 무거운 거였다.
고 최희석 경비원님의 초소에 붙은 추모 메모들. 그는 왜 그리 떠나야 했을까. 지금 달라진 건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해야 했다./사진=뉴스1
경비원들에겐 참 고되다는 재활용 분리수거 날, 김씨가 일하는 아파트를 찾아갔다. 굳이 주말에 간 이유가 있었다. 관리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눈치가 덜 보인다 하기에. 그와 동료들 안위가 최우선 순위여서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경비원 근무는 하루 근무 후 하루 휴식, 그래서 24시간을 똑같이 보내보기로 했다.
숨겨진 아픔이 많아 운다고
경비원 김씨의 집안. 그는 머리가 시려울 거라며 내게 검은 털모자를 줬다. 내 머리엔 좀 아담하지만 따뜻했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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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침대 머리맡엔 타일 무늬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무언가를 가리려 한 흔적 같았다. 물어보니 거기에 사연이 있었다.
김씨는 "경비 일을 하다 보면 너무 화나는 일이 많다"고 운을 띄웠다. 한 번은 그걸 못 참아서 침대 맡을 머리로 들이받았더니 벽에 구멍이 났다. 음악을 크게 틀고 맘으로 울던 날이었다. 그런 날이 많단다. 청소하다 추워서 울고, 더워서 울고, 쓰레기가 쏟아져 나와 운다고 했다. 숨겨진 아픔이 말도 못 하게 사장돼 있다고 했다.
새벽 5시 30분, 무거운 맘으로 그와 함께 아파트 단지로 갔다. 경비원 옷은 입지 않았다. 주민들이 날 보고 "젊은 경비원 누구냐"고 물으면 곤란할 수 있다고 해서, 그냥 주민인 척하기로. 바깥 공기가 차가워 입김이 훅 쏟아졌다. 걷다 보니 큰 단지여서 물으니 2000세대가 넘는다고 했다.
그게 다, 경비원이 하는 일
새벽녘 이미 출근을 마친 경비원들. 그나마 제일 한가한 시간, 업무의 힘듦에 대한 이야길 나누며 서로 위로한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침 나가는 주민 한 명이 다가와 자동차 키를 맡기고 갔다. 이중 주차된 차들이 많으니, 혹시 차 뺄 일 있으면 해달라고. 불법 주차 단속도 경비 몫. 그런데 단속 스티커를 붙였다가 주민이 노발대발하면 다시 떼는 것도 경비가 한단다. 경비원 백만원씨(가명)는 "스티커를 떼다가 차가 약간 긁혔는데, 경비원이 일 잘릴까 봐 자기 돈 100만원을 줬어요. 관리사무실은 주민 눈치만 보지요"라고 하소연했다.
경비원 슛돌이씨(가명)는 택배 이야길 했다. "새벽에 잠자고 있는데 주민이 초소 문을 발로 뻥 차요. 택배 내놓으라고. 어떤 사람은 전화해도 찾아가지도 않아요. 한 달이 넘도록요." 점심시간에 밥 먹고 있을 때 전화 올 때도 있다. 지금 택배 달라고. 그래서 바깥에 나가 밥 먹기도 불편해, 대다수가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단다.
낙엽은 통상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쓴단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다고, 그 또한 경비원 업무다./사진=남형도 기자
27시간씩 이어지는 재활용 분리수거
쓰레기는 버리고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남겨진 이들의 힘듦을 짐작하는 시간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통상 분리수거일 아침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이어 아침 7시부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오후 2시까지 주민들이 계속 버린다. 최대 27시간씩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쏟아지는 쓰레기를 계속 살펴야 한다. 듣기만 해도 벌써 지치는 듯했다.
아침 8시쯤,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는 주차장 공터는 아직 조용했다. 주말이라 자고 있을 시간이란다. 경비원 이대단씨(가명)와 최묵묵씨(가명)는 전날 밤에 이미 분리수거를 하기 위한 큰 마대 자루와 비닐들을 다 펴뒀다.
이유가 있었다. 최씨는 "아침부터 분리수거를 하려면 주차장에 세워둔 주민들 차를 빼야 하는데, 주민한테 일찍 전화하면 '아침부터 전화질이냐'며 욕을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본인들 쓰레기를 치우느라 차를 빼달라는 이야기도, 눈치를 보며 한단 거였다. 그러나 아는가. 경비업법 상에, 이들 본연 업무에, 분리수거는 원래 없었단 것을.
'가짜 CCTV'까지 설치한 이유
오죽하면 가짜 CCTV까지 설치했을까. 불도 들어온다./사진=남형도 기자
마대 자루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가관이었다. 플라스틱을 버리라는 곳엔 캔이 들어 있고, 공병(소주병 등)을 모으는 곳엔 깨진 도기 그릇이 널브러졌다. 알루미늄 캔을 버리는 곳엔 플라스틱 배달 용기가 들어 있었다. 라벨을 뜯은 페트병만 모아 놓는 곳에 온갖 플라스틱 용기들이 뒤섞여 있었다.
경비원 이씨와 최씨는 이를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늘 있는 일이라 익숙하다고 했다. 그 뒤론 계속해서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쓰레기를 제대로 버렸나 살피고, 그걸 다시 집어 원래대로 바로잡는 거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없었다. 하나를 정리하는 중에 새로운 주민이 나와 분리수거를 이상하게 해놓고 갔다.
캔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집어넣는 이유는 대체 뭡니까./사진=뿔난 남기자
밥 먹는 시간 고작 20분, 다녀와 보니…
경비원의 조촐한 저녁밥상. 후딱 먹고 나가야 한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 쓰레기를 막 버리고 있으므로./사진=남형도 기자
점심, 저녁을 충분히 먹을 틈도 없다. 휴게 시간이 각각 2시간씩 주어지지만, 분리수거 날 밥 먹는 시간은 고작 20분에 불과했다. 경비원들은 밥과 김치 등 간소하게 싼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운 뒤, 부리나케 먹고 나왔다.
그리고 분리수거장에 다시 나와 확인했을 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 잠깐 사이에 주민들이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갔다. 롤러 블레이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공병엔 잡병이 뒤섞여 있었으며, 누군가 던지고 간 거대한 초록 텐트에 화가 치밀었다. 경비원 정긍정씨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아주. 어떻게 사람 없을 때만 이렇게 막 버리고 가는지. 허허허"하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막 버리고 갔다. 초록 텐트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사라진 비양심 주민./사진=남형도 기자
무개념 주민과 고마운 주민
주민이 건넨 음료와 귤. 맘이 따수워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양말 공장을 하는 한 주민은 겨울만 되면 경비 초소에 양말을 한가득 두고 간다고. 부부인데 그들은 경비원에게 늘 아침에 먼저 "좋은 하루 되십시오"하며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경비원 이씨는 "정말, 진짜 그럴 땐 너무 좋지요. 그 맛에 삽니다"라고 웃었다. 별다른 게 사는 힘이 아녔다. 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 그런 거였다.
분리수거를 하는 날만 해도 고맙다며 무언가 놓고 가는 주민들 맘이 따뜻했다. 누군가는 귤을 놓고 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밤이 춥다며 음료 여러 병을 놓고 갔다. 어떤 주민은 꽃게를 건네며 "라면에 넣어 드시면 맛있다"고 했다. 고생이 많다며 새우튀김과 만두, 소주 한 병을 건네고 가는 할머니도 있었다. 고마운 이들이었다.
반면 무개념 주민도 많다. 분리수거를 예로 들면 이렇다. 비닐 쓰레기에 똥 묻은 기저귀를 넣어놓고 사라진다. 이를 모르는 경비원들은 쓰레기양을 어떻게든 줄이겠다고, 이 비닐 쓰레기들을 누른다. 그 과정에서 똥이 묻는 일도 있단다.
양념 좀 닦고 버립시다./사진=남형도 기자
찬바람 들이치는 경비 초소, "너무 춥지요"
경비 초소의 자그마한 잠자리. 주민들이 난로도 못 켜놓게 해서 그나마 안 보이는 쪽에 설치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 고단한 일일진대, 쉬는 공간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이게 경비원 휴게실의 화장실이다. 저 네모난 물 고인 곳에 소변을 본단다. 변기 하나 제대로 없어서./사진=남형도 기자
경비 초소도 마찬가지로 열악했다. 오래된 철제 창틀이라 추운 겨울엔 찬바람이 들이친다고 했다. 비닐 뽁뽁이를 붙여도 별 소용이 없다. 경비원 이씨는 "영하 날씨엔 추워서 모자와 귀마개, 마스크까지 쓰고 잔다"고 했다. 관리실에서 제공한 건 에어컨 하나고, 나머지 냉장고며 의자며 가구며 난로는 다 동네 주민들이 폐기물로 내놓은 걸 주워다 쓴단다.
3개월에 한 번씩 계약…"제가 폐품처럼 느껴져요"
한눈 팔면 이렇게 버리고 간다./사진=체념한 남형도 기자
겨우 쉴 틈이 생겼다. 셋이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경비원 정씨가 귤 하나를 건넸다. 또 다른 경비원은 쭈그리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후하고 불었다. 기다란 입김과 섞인 뿌연 연기가 가로등 불빛 아래로 흩날려 사라졌다. 생(生)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랄까.
허리를 몇 번이나 숙였을지. 빛 같은 따뜻한 한 마디에 힘을 내는 이들./사진=남형도 기자
경비원 정씨가 꿈꾸는 노년은 좀 더 고상했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단다. 글을 쓰거나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력서만 스무 군데 넘게 떨어진 뒤 비로소 깨달았다. 이야길 하다 정씨는 내게 이렇게 얘기했다.
"기자님, 세상에서 제일 큰 죄가 무슨 죄인지 알아요? 나이 먹은 죄에요. 그거 딱 하나에요. 60살 넘으면 이력서 안 받아요. 유일하게 받는 데가 경비원 뿐이여.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해요. 기자님 딱 30년 뒤 모습이라니까."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나중엔 내가 폐품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하도 깨지니까. 세상이 나를 몰라주네 했어요. 그런데 나를 몰라도 내 나이는 알더라고. 끝난 거지요."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
경비원 이대단씨(가명)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메시지./사진=남형도 기자
경비원 이씨를 따라 초소에 들어왔다. 이제야 한숨이 나갔다. 그의 인생 얘기도 좀 들었다. 잘 나가던 대기업 사원이었다. 주식 투자를 잘못해 가세가 기울었다. 치아가 다 빠질 만큼 힘들었다. 2000년대 초반에 퇴직하고, 이씨 홀로 아들과 딸을 키우게 됐다. 룸싸롱, 사우나를 다니며 잡병을 수거해 팔며 돈을 벌었다. 술을 아무리 먹고 싶어도 자녀들이 있을 땐 참았다.
잠들 준비를 하던 이씨가 스마트폰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아들과 딸의 연락이었다. 저장된 이름은 '이쁜 딸', '잘난 아들'이었다.
이쁜 딸: "아빠 분리수거 다했남ㅋ"
이씨: "인제 막 끝났당."
이쁜 딸: "ㅋㅋㅋ고생해썽."
이씨: "잉 빨리 자야징ㅋㅋㅋ"
잘난 아들: "수고했성."
참 잘 키우셨단 말에 그는 귀한 아들과 딸 얘기를 조금 더 이어갔다. "내 자랑 같지만"이란 말을 덧붙이며, 싱글벙글 웃으면서. 조촐한 믹스 커피 한 잔과 음료 한 병에 고단했던 깊은 하루가 달게 익어갔다. 그는 경비원이기 이전에 훌륭한 아버지이고, 귀한 사람이었다.
동네 경비원님이 다시 보였다
동네 경비원님이 새삼 다시 보였다. 그냥 되는 것 따윈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노고가 다 담겨 있었을 뿐./사진=남형도 기자
"상상도 안 된다"고 다음 세대가 말할 수 있게 해준 대단한 장본인들, 그러니 그들은 '나이든 죄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일으킨 주인공이라고. 그러니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뜨끈한 라면 국물을 마시며 고요히 생각했다.
그날 이후 동네 경비원님이 다시 보였다. 소복이 내린 눈을 쓰는 그에게 다가가 "고생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하며 말 한마디를 건넸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분리수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이걸 이렇게까지 치워야 하나 한없이 작아졌을 때 일으켜 준 말들이 그런 거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수고 많으세요." "감사합니다." 그런 짤막하고 다정한 말들이, 무너지는 몸과 맘을 작게나마 일으켰던 것 같다.
그리고 분리수거를 하는데 시간을 충분히 썼다. 페트병 라벨을 뗐고, 색깔이 있는 스티로폼을 걸렀으며, 배달 용기는 깨끗하게 씻고, 박스 테이프를 떼어 납작하게 만들어 내었다. 10분 정도면 충분했다. 분주히 분리수거를 하는 동네 경비원님을 위해 초소 책상에 따뜻한 음료와 믹스 커피를 가져다 놓았다. 부지런한 그의 시간 덕분에 그동안 편히 지냈었으므로.
영하 날씨로 내려가면 분리수거하다 손이 깨진다고, 경비원 정씨가 그랬다.
어떤 장갑을 껴도 손이 너무 시리다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손모아장갑을 끼면 손이 안 시리대요."
"아, 그래요? 왜요?"
"살끼리 맞대니까 더 따뜻하대요."
'그러니 앞으론 함께할게요.' 생략된 맘속 응원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