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뉴스, 가짜뉴스…40년후 진실[광화문]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20.12.0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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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황희규 기자 =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30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에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20.11.30/뉴스1(광주=뉴스1) 황희규 기자 =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30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에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20.11.30/뉴스1


1980년 5월 광주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향해 헬기에서 기관총 사격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드디어 법원이 인정했다.

“5월21일 헬기사격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에 대한 1심 법원에서 재판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자행됐다며 전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읽은 주문 중 일부다.



총탄을 맞았다는 이들과 유가족들이 있었고 주변 건물 곳곳에 탄흔이 있고 관련 기록으로 추정해볼만한 군 자료가 있는데도 진실을 밝히는데는 꼭 40년이 걸린 것이다.

이번 재판은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의미가 있다. 1980년 5·18 직후부터 1988년 광주 청문회, 1995년 특검까지 헬기사격은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다.



사실 헬기사격의 실체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이 있었다. 1988년 11 ~ 12월 당시 회의가 열리는 날마다 생중계가 이뤄지며 시청률 40~50%대를 기록하던 광주청문회가 바로 그때였다. 12.12부터 5월 광주까지 당시로선 승리자 같았던 쿠데타 주역들을 몰아붙이는 몇몇 의원들의 송곳 질의와 피해자들의 절규도 있었지만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끔찍한 사진들이었다. 당시 대학가와 민주화운동단체에서 숨죽이며 돌려보던 영상까지는 아니지만 학살 현장 사진이 시각적 충격과 더불어 고스란히 TV를 통해 안방까지 전해져온 것이다. 헬기 사격에 대해서도 수시로 언급됐고 전두환 명예훼손 유죄의 근거가 된 고 조비오 신부의 발언(헬기 사격 목격담과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는 언급) 등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청문회가 막바지로 치달아갈 무렵 반전 아닌 반전이 있었다. 학살된 양민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기념사진을 찍는 잔인한 군인들의 모습이라며 이해찬 의원이 회의 석상에서 꺼내든 사진이 문제였다. 해당 사진은 광주가 아닌 1969년 흑산도에서 무장공비를 사살하고 찍은 사진이라며 해당 군인들이 국회로 항의 방문을 왔고 광주특위 차원에서 ‘군 사기를 실추시킨 점을 사과한다’는 유감 표명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른바 80년대판 가짜뉴스였던 것.

가짜뉴스 때문만은 아니지만 상황 반전으로 움츠러들었던 정치군인들은 조금이나마 어깨를 폈고 전두환씨는 1년이 지난 1989년 12월31일에 국회에서 맹물 사과를 했다.


꼭 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가짜뉴스는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논란을 일으킨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불거진 중국과 호주의 충돌에서 현실같은 가짜 사진이 등장한 것.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한 호주 특수부대원이 활짝 웃으며 양을 데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을 베는 사진을 올렸다. 호주군의 양민 학대는 사실(2009~2013년 아프간에 파병된 호주군들이 포로와 민간인 등 39명을 불법 살해(호주 정부 ‘브레러턴 보고서’))이었지만 사진은 중국 만화가가 합성한 것이었다.

호주 정부는 격분했고 총리까지 나서서 터무니없다며 사진 삭제를 요구한 것. 스스로 해당 내용을 공개하고 반성했음에도 중국 외교부가 합성 사진까지 게재한 것은 어떤 근거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전쟁을 겪는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무기로 즐겨 사용하던 가짜뉴스를 불편한 관계인 호주를 깎아내리는데 쓴 것이다.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 주도 군사협력체(‘쿼드’)에 적극 참여한 호주는 방송을 통해 “곤충과 쥐, 머리카락을 먹는 중국인”이라고 전의를 다지고 있다.
다시 한국. 재판을 위해 집을 나서던 전두환씨는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이들에게 ‘말조심해 이놈들아’라고 쏘아붙인 뒤 정작 유죄가 나온 재판정에서는 재판 시작 10분 만에 꾸벅꾸벅 졸다가 선고 후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땡전뉴스(밤 9시 ‘땡’ 시보 뒤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 ’로 시작하던 동정보도가 첫 머리를 장식하던 80년대 TV 뉴스)와 선택적 기억 속의 가짜뉴스만을 떠올리는 전두환씨. 믿고싶은 뉴스만 보고 들으며 오늘도 어김없이 핸드폰을 꺼내드는 우리는 그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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