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산 개농장서 구한 개(왼쪽)와 반려견 똘이(오른쪽). 가축과 반려동물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왜 여전히 축산법상 개는 가축일까./사진=남형도 기자
둘은 똑같았다. 빤히 바라보는 눈빛, 뒤로 젖힌 귀, 세차게 흔드는 꼬리, 점프해 앞발로 매달리는 것까지. 생김새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반갑고 당신이 좋다'는 것.
인천 계양산 개농장의 뜬장에 있던 작은 강아지(아래)는 시민들에게 구해져 미국의 새 보호자(위)를 만났다. /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lotte250dogs)
반려동물이란 인식에도…법은 48년째 그대로
계양산 개농장 뜬장에 갇혀 있었던 개들. 여전히 192마리가 남아 있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그러나 그동안 반려인구가 급증하며 개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495만 가구서 598만 마리의 개를 키운다(농림축산식품부 지난해 통계).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엔 "반려동물을 키우느냐"는 질문이 처음 들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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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개식용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와 닐슨코리아가 같이 한 조사(10월22일 발표) 결과 응답자 1000명 중 83.8%는 '개고기를 소비한 적이 없고 향후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동물자유연대와 카라가 응답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개고기를 안 먹는다'는 응답이 86.9%에 달했다. 개고기를 먹었단 사람 중 74.4%도 '주변 권유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각지대서 벌어지는 '도살'
인도에서 식용 목적으로 운송되는 개들 모습. 이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퍼지자 인도 나갈랜드 주에서는 개의 지육 수입, 판매, 거래를 금지했다./사진=동물해방물결
그런데 도살장을 허가하고 관리할 법은 또 없다. 관련법이 축산물 위생관리법인데, 해당 법에선 또 개가 가축이 아니어서다. 그러니 허가 받지 않은 도살장에서 개를 도살해도 처벌도 못한다.
이를 막을 건 동물보호법 하나 뿐인데, 규정마저 애매모호하다. 동물학대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라던지,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것'이란 표현을 써뒀다.
그러니 사법부에선 오랜 기간 동안 개식용이 전통이란 식의 이유를 붙여 처벌하지 않았다. 동물자유연대는 올해 낸 '개 전기도살 백서'에서 "반려동물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사회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법의 언어는 여전히 '개고기는 전통'이란 문장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엔 개를 묶고 380볼트(V)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입에 대 죽인 개농장주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처벌은 벌금 100만원(선고 유예 2년)에 그쳤으나, 이후 지자체들 사이에선 전기 도살 행위를 단속하는 게 늘었다.
청와대가 했던 2년 전 '약속'
2018년, 축산법 정비 검토를 약속했던 최재천 당시 청와대 농업비서관./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제20대 국회에선 △축산법상 가축서 개를 제외하는 법안(이상돈 전 의원 대표 발의) △개 도살 금지 법안(표창원 전 의원 대표 발의) 등이 발의됐었다. 법의 괴리를 없애고, 반려인과 개농장주 사이 사회적 갈등을 줄이잔 취지였다. 그러나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청와대도 2018년, 청원 답변에서 관련법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최재천 청와대 농업비서관은 "정부가 식용견 사육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 받는 측면도 있다"며 "가축에서 개를 제외하도록 관련 규정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련해 달라진 건 없었다. 관련 종사자 생계 대책을 감안해 신중할 수 있으나, 관련법을 바꾸겠단 정부의 사회적 논의 자체가 없었다.
"소, 돼지는 안 불쌍하냐"는 반론에 대해
/사진=뉴스1
멜라니 조이 작가는 저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소와 개가 근본적으로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우리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라는 존재와 대면하는 건 쇠고기를 먹거나 쇠가죽 옷을 걸칠 때이고, 개들과는 놀고 선물을 사주며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란 것이다. 예컨대, 골든 리트리버 고기라 했을 때 마음 속에선 던져진 공을 쫓아 마당을 이리저리 뛰거나, 조깅하는 보호자를 따라 달리는 모습이 감정이입 된다고 했다. 반면 쇠고기를 마주했을 땐 평균적으로 살아 있는 소를 상상하지 않고, 음식으로 생각한다는 것.
소에 대해서도 "살아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며 차마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해당 동물이 살아 있는 모습과 닮았을 땐 먹기를 불편해한단 덴마크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덩어리보단 잘게 간 고기를 선호한단 것이다.
김한민 작가도 저서 <아무튼, 비건>에서 "우연히 충청남도로 놀러갔다가 소의 눈동자를 봤다. 눈망울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는데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며 소고기를 끊게 된 계기를 이야기 했다.
육식주의서 '공감'으로
1995년 뉴잉글랜드 도축장서 젖소 에밀리가 탈출했다. 1.5m 높이 울타리 위로 700kg 가까운 몸을 날렸다. 녀석은 40일 밤낮을 추위 속에서 버텼다. 도망친 에밀리를 시골 마을 사람들이 숨겨주고, 먹을 풀을 내다줬다. 한 부부는 에밀리의 어려움을 알고 녀석을 사겠다고 했다. 도축장 주인은 이 얘기에 감동해 단돈 1달러에 팔았다.
멜라니 조이 작가는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에밀리 얘기를 듣고 고기 먹기를 그쳤다고 했다"며 "그들 내부의 육식주의 방어기제들이 무너지고 동물에 대한 공감으로 대체된 것"이라고 했다.
에밀리는 남은 생을 보내다 열 살 때 자궁암으로 죽었다. 장례식 추도사는 이랬다.
"너의 크고 빛나는 갈색 눈동자는 어떤 말보다도 많은 걸 전했다. 모두를 감싸 안는 공감의 절박한 필요성을 너는 말없이 증언했다. 에밀리, 우리는 네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지 않으련다. 모든 존재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지니게 될 때까지."
지난해 천안 개도살장에서 발견된 설악이(왼쪽) 모습, 입양 후 모습(오른쪽)./사진=동물해방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