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비과세였던 1주택자, 뛰는 집값에 상속세 수천만원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구경민 기자, 김소연 기자, 김영상 기자 2020.1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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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막는 상속세] '상속세로 벌주는 나라'(上)-②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대주주 상속세율(60%)이 가장 높은 나라 대한민국. 직계 비속의 기업승계시 더 많은 할증 세금을 물려 벌주는 나라. 공평과세와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전국민의 3%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자세이면서도 전체 세수에서의 비중은 2%가 채 안되는 상속세. 100년 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상속세의 문제점을 짚고 합리적 대안을 찾아봤다.

살던 집 팔아 상속세? 남 일 아니다…1주택자도 세금 비상
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제공=뉴스1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제공=뉴스1


대기업 총수 자녀들의 문제로만 인식되던 상속세 문제가 집값 상승 바람을 타고 1주택 상속 자녀들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15일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주택,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을 물려받아 상속세를 낸 사람은 연간 4000~6000명 수준이다. 한 해 사망자가 약 30만 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상속자 중에서도 2% 이내만 부담하는 일종의 부유세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3~4년간 서울 아파트를 비롯해 전국 집값이 급등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강남권에서는 한 채에 20억~30억 원대 아파트가 즐비하고, 강북권에서도 입지가 좋은 신축 아파트는 정부가 초고가주택으로 설정한 시세 15억 원을 훌쩍 넘는다.

상속세 공제(기본 5억+배우자 5억)를 적용해도 과세 대상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평생 모은 재산으로 서울에 주택 한 채를 마련한 중산층마저 상속세 부담을 안게 된다는 얘기다.



◇3년 전엔 비과세였는데…집값 급등에 1주택자도 상속세 수천만원 내야

실제로 서울 한 중산층 가구를 가정해 배우자 사망에 따른 상속세 납부액을 추정한 결과, 집값 상승 영향으로 3년 전 비과세 대상이었던 1가구 1주택자도 배우자 사망 시 적지 않은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머니투데이가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에 의뢰해 서울 시내 주요 아파트 소유자 사망 시 상속세 납부액을 추정한 결과, 3년 전 비과세였던 전용 84㎡ 이하 중소형 아파트들이 새롭게 과세 대상에 포함됐고 납세액도 수천만 원~수억 원대에 달했다.


자산, 가구원 수 등 상속세 납부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수가 있는 점을 고려해 가상의 납세자를 설정했다. 별도 소득 없이 공적연금으로 생활하며, 자녀가 2명인 중산층을 가정했다. 금융자산 규모는 강남권 1억원, 비강남권 5000만원으로 책정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에 살았다면 3년 전엔 배우자 사망 시 상속세를 내지 않았다. 당시 시세가 8억5000만원으로 공제 한도를 넘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 아파트의 최근 시세(14억5000만원)를 반영하면 상속세 5571만원이 부과된다. 배우자가 없거나 동시 사망한 경우 자녀들에 부과되는 상속세는 약 2억2698만원에 달한다.

같은 단지 전용 84㎡의 경우 배우자가 있을 때는 3년 전엔 상속세 비과세 대상이었지만 최근 시세를 반영하면 약 7788만원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배우자가 없을 때는 세부담이 3억원을 넘어선다.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 아파트 전용 59㎡도 3년 전엔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됐지만 최근 시세를 반영하면 배우자 생존 시 6125만원, 배우자가 없을 때는 2억4444만원 상속세가 부과된다.

3년 전 비과세였던 1주택자, 뛰는 집값에 상속세 수천만원
◇강남권 고가주택은 상속세 납부액 대폭 상승…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가격

이전부터 상속세를 내야 했던 강남권 고가주택은 세부담이 대폭 확대된다.

강남구 대치동 한보미도맨션 전용 84㎡는 배우자가 있을 때 상속세 부담액이 7593만원에서 2억3778만원으로 3배 이상 증가한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 최대 6억8676만원의 상속세가 예상된다.

대치동 선경 아파트 전용 124㎡의 경우 배우자가 있을 때는 3억9298만원, 배우자가 없을 때는 9억5836만원의 상속세액이 산출됐다. 이 주택에 거주 중인 자녀들은 부모가 동반 사망할 경우 웬만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성년이 된 후 10년 이상 장기 동거주택 상속공제 6억원을 하더라도 부담은 만만치 않다.

◇상속세 내려고 집 팔아야 하나…전문가 "1주택 배우자 상속세 감면·유예 필요" 

주택 상속세는 공시가격이 아닌 시세가 과세표준이며 물납이 허용되지 않고 전액 현금으로 부과된다. 또 집을 팔 때는 상속세와 별도로 매수액과 매도액의 차이를 과표로 하는 양도소득세도 추가로 내야 한다. 1주택자는 집을 팔아서 세금을 내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우병탁 팀장은 "법이 바뀌지 않으면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보완책을 주문한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상속세 부과 대상이 중산층으로 확대되는 것은 법 취지에 어긋나고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며 "특히 1주택자는 배우자 사망에 따른 상속세 때문에 강제로 주택을 팔거나 이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시세 상승을 고려해 주택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거나, 1주택자 사망 시 배우자는 추후 자녀 세대에 물려줄 때까지 과세를 유예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엄식 기자

상속세 마련 못해 '눈물의 매각' 나선 기업들
3년 전 비과세였던 1주택자, 뛰는 집값에 상속세 수천만원
#1973년 설립된 유니더스는 콘돔시장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던 중견업체다. 세계 조달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연간 11억 개가 넘는 콘돔을 생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창업주 김덕성 회장 별세 후 사모펀드에 결국 경영권이 넘어갔다. 2세인 김성훈 사장이 세금 분할 납부를 신청하며 회사 경영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약 50억원의 상속세를 부담하기 어려워 결국 2017년 11월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농우바이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자기업이다. 1995년 50만달러 수출을 시작으로 중국·미국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2013년 창업주 고희선 명예회장 타계 후 1200여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유족들이 회사를 포기했다. 결국 2014년 농우바이오는 농협경제지주에 매각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상속세율이 과도하게 높아 기업승계 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기업을 키우려는 의지를 저하시키고 경영상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15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19년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7곳(66.8%)이 중소기업의 영속성 및 지속경영을 위해 '가업승계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기업인은 5.2%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사에 응한 대다수 기업들은 가업승계 과정에서 상속·증여세 등 '막대한 조세 부담'(77.5%)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실제로 가업승계의 길목에서 상속세 부담 등을 이유로 매각을 택하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점유율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777)'은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면서 유족들은 약 150억원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밀폐용기 국내 1위 업체 락앤락 창업주 김준일 회장은 생전에 상속세 부담 등을 고려해 2017년 6200억원을 받고 회사를 홍콩계 사모투자펀드(PEF)에 팔았다.

이밖에 광통신 소자제조 업체 우리로광통신, 온라인 화장품 판매사 에이블씨앤씨, 가구업체 까사미아, 신발갑피 원단 제조업체 유영산업 등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매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중견·중소기업계에선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 성장을 위축시키고 기업가의 의욕을 꺾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매출액 3000억원 미만으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에 대해 가업승계 감면을 하고 있으나, 이외의 감면 조건이 까다로워 실제 활용 빈도가 낮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50%)은 OECD국가 평균(26%)의 2배에 달한다"면서 "최대주주 할증 세율 60%를 감안하면 일본의 55%보다 높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징벌적 과세' 차원의 과도한 상속세로 대주주의 지분 감소에 따른 경영권 우려 등 경영 장애요인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세계적으로 상속세가 축소되는 움직임에 맞지 않고 기업가 정신 고취, 기업의 영속성 차원에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민 기자

"차라리 기업 대신 현금을 물려주겠다"
"저도 내년이면 나이가 70이에요. 회사가 더 성장하려면 젊은 세대가 경영을 맡아야 하는데 상속세 부담이 커서 고민입니다."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는 양변기 부품으로만 47년 외길 인생을 걸었다. 22세에 단돈 5만원으로 회사를 창업해 코스닥 상장사로 키워냈다. 그의 인생을 바쳐 키운 자식같은 회사지만, 최근 들어서는 심각하게 매각을 고민하고 있다. 증여세가 만만치 않아서다.

송 대표는 "경영이 2대로만 내려가도 (세금을 내느라) 지분이 별로 안 남는다"며 "차라리 (매각해) 다 써버리는 게 나을 정도다"고 토로했다.

2세 경영은 최근 수년간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에 가장 큰 고민거리다. 회사 창업부터 성장까지 이끌어온 CEO들이 중년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이슈다.

3년 전 비과세였던 1주택자, 뛰는 집값에 상속세 수천만원
실제 코스닥협회가 지난 6월 코스닥 상장사 1409개사의 CEO 1707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나이가 56.3세로 집계됐다. 50대 CEO는 785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60대가 447명(26.1%), 70대 이상도 116명(6.7%)이었다. 은퇴를 앞둔 CEO가 전체의 80%에 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속·증여세 부담에 대부분 가업승계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발간한 '2019년 중견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 1400곳 중 82.9%는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최고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여기에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대상에 포함되면 최고세율은 60%로 치솟는다. 세금이 지나치다는 비난을 의식해 정부는 올해부터 중소·중견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공제를 받으려면 업종, 자산, 고용을 7년간 유지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3년 전 비과세였던 1주택자, 뛰는 집값에 상속세 수천만원
이는 세계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고려하는 흐름과도 동떨어진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창업주가 사업을 시작해 성장궤도까지 올려놓는 특성상 창업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경영자가 바뀔 경우 기업DNA가 달라져 명운이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자랑하는 일본도 가업 승계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해석해 예외조항을 두는 것과 대조된다.

2008년 '중소기업 경영승계 원활화'법을 제정해 각종 감면 혜택을 만든데 이어, 2018년부터는 10년 한시 '특례사업승계제도'를 만들어 증여·상속세를 전액 유예 또는 면제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일본에 명문 장수기업이 많고, 중소기업에도 청년들의 취업이 줄을 잇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에서는 상속 대신, 기업을 팔아서 현금 물려준다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의 M&A팀들은 물론,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도 CEO가 고령화된 기업들을 주된 영업 대상으로 삼는다. 그나마 국내 토종 PEF라면 사정이 낫지만 해외 PEF에 넘어가면 기술력, 노하우까지 해외유출될 수 있다.

지난 2018년 7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한국은 기업 오너가 상속을 하는 것보다 사모펀드에 회사를 내놓는 것이 더 이득인 나라"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PEF 시장 급성장 배경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은 상속세율이 작용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970~1980년대 설립한 회사 창업주들이 은퇴할 나이가 되면서 최근 5~6년간 가업승계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PEF의 주요 딜 소싱처가 되고 있다"며 "PEF에게 기업이 넘어가면 일단 현금이 생기는 데다 경영권은 바뀌어도 2세들이 전문경영인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어 선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소연·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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