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송시열은 조선 후기 개혁사상가였다"

뉴스1 제공 2020.10.3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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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정책서 개혁 추진한 인물 평가

우암 송시열.© 뉴스1우암 송시열.© 뉴스1


(괴산=뉴스1) 김정수 기자 = 조선 후기 이조판서와 좌의정 등을 지낸 우암 송시열 선생은 개혁사상가였다는 학술 연구결과가 나왔다.

31일 한국정치외교사학회와 충북학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괴산군에서 열린 '우암 송시열의 정치 사회론과 중국관계 인식' 주제 공동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사회사상과 중국 인식의 사상사적 의미를 짚는 자리에서 김문준 건양대 교수는 '송시열의 성리학과 사회사상' 주제 발표를 했다.

김 교수는 "송시열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보수사상가지만 정치·경제·사회 정책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전반적인 개혁을 추진한 개혁사상가였다"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 정통 도학사상에 의거해 정명(正名)·왕도(王道)·민본(民本)사상을 현실사회에 실현하고자 했고 악습과 폐단을 개혁하고 국가와 민생 안정을 도모했다"라고 설명했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했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다. 1996년 1월 5일 충북도 기념물 107호로 지정됐다.© 뉴스1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했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다. 1996년 1월 5일 충북도 기념물 107호로 지정됐다.© 뉴스1
학술회의에서는 송시열의 사상사의 위상(윤대식 한국외대 교수), 송시열의 주자학적 정치체제론(안외순 한서대 교수), 송시열의 북벌론과 한중관계 담론(이원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우암 송시열은 조선의 성리학자이자 주자학의 대가다. 청천면 화양구곡 암서재(巖棲齋)에서 제자들과 학문적 토론을 하는 등 이곳에 많은 자취를 남겼다.


우리나라 유학자 가운데 도통을 이은 성인을 의미하는 자(子)란 칭호를 받은 유일한 인물로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괴산군 청천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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