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웃는 낯으로 숨통 잡는 '나의 위험한 아내'

조성경(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10.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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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MBN사진제공=MBN


가히 김정은의 설욕이다.

요즘 '김정은'이라고 하면 북녘의 핵심인사가 단박에 떠오르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가 아닌 배우 김정은이 먼저였다. 지금의 스타작가 김은숙을 있게 한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비롯해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카피를 유행어로 만들었던 신용카드 광고, 영화 ‘가문의 영광’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배우 김정은이 풍미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 북측 김정은이 집권하고 그로 인한 온갖 이슈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되던 때마침 배우 김정은의 활약이 주춤하면서 대중의 뇌리에서 조금은 멀어진 인물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랬던 배우 김정은이 오랜만에 드라마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MBN 월화극 ‘나의 위험한 아내’(극본 황다은, 연출 이형민)의 여주인공 심재경 역으로 나선 것인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최고위원장과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새삼 회자 되는 한편 올 초 안방극장을 강타했던 JTBC ‘부부의 세계’와 비교되면서 더 관심을 높이고 있다.

먼저 첫 회부터 ‘부부의 세계’에 견줄 수준이 못 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단정하기는 어렵다. ‘나의 위험한 아내’가 남편의 외도에 복수한다는 설정으로 ‘부부의 세계’와 비슷하다는 점이 사람들로부터 날선 시선으로 비교를 당하는 이유지만 그 정도의 유사성은 또한 당대의 히트작으로 꼽히는 SBS ‘아내의 유혹’ 등을 비롯해 국내 드라마의 단골 아이템이라는 점을 되짚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위험한 아내’가 수작으로 평가받게 된 ‘부부의 세계’와 공교롭게 같은 해에 방영하게 된 상황이 애석할 따름이다.

게다가 지난 20일 6회까지 방영된 ‘나의 위험한 아내’는 분명히 전혀 다른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심재경이 사라지고 몸값으로 50억 원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남편 김윤철(최원영)이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나의 위험한 아내’는 2회만에 이 모든 것이 윤철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재경의 자작극이었고 그 사실을 윤철이 알게 되며 새로운 국면이 전개돼 궁금증을 높이고 있다.

특히 6회 엔딩에는 공범인 줄 알았던 심재경의 후배 송유민(백수장)이 목숨을 잃어 과연 어디까지가 심재경의 계획이었을지, 행방이 묘연해지는 것으로 보이는 50억 원은 과연 누구의 차지가 될지 등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나의 위험한 아내’가 단순히 불륜극이 아니라 서스펜스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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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의 위험한 아내’를 차별화하는 핵심은 배우 김정은이다. 첫 회까지만 해도 조신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재경이 자신이 정해놓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철저히 연기하는 중이었고 납치 자작극을 펼쳤다는 사실을 윤철에게 들킨 순간부터 최근 방송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면에서 광기에 가까운 해괴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위험한 아내’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히’라며 사랑을 맹세한 점을 거듭 강조하며 결혼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재경이 윤철에게 보이는 행동은 불여우인지 광녀인지 판단불가의 묘한 매력으로 지켜보게 하고 있다.

직접 피를 뽑고 손톱을 뽑아내며 자작극을 펼친 재경이 최근에는 윤철을 더욱 섬뜩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너무 과하고 기괴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남편이 바람났기 때문에 똑같이 외도로 복수하는 게 더 수긍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은 캐릭터로서 심재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배우 김정은이 심재경 역을 맡음으로써 무섭게 보이는 동시에 특유의 코믹함도 묻어나 김정은만의 매력으로 이 드라마 전체 톤을 여타 불륜 치정극과 달리 보이게 하고 있다. 배우 최원영 역시 드라마에 코믹한 요소를 배가하는 인물이고 제작발표회에서도 언급했듯 연출자인 이형민 PD가 “위트를 주고 싶었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확인되는 중이기도 하다. 마치 실제 결혼생활이 때로는 공포스럽기도 하고 보통은 실소가 나오는 극과 극의 현실을 빗대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칠 정도다.

윤철이 재경을 진짜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도 진짜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결혼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결혼했으니 참고 살라는 재경의 말에도 무작정 반박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과격한 사건사고들이 ‘미저리’ 같고 드라마의 판타지나 극성으로 여겨지다가도 기저에 깔린 현실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 절묘한 재미가 있어서 홍콩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김정은이 남편과 잠시 생이별을 하고 3년만에 국내 안방극장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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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배우 김정은의 귀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미안하지만 그가 연기활동을 주춤한 동안 그에 대한 기억이 희석돼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현재의 퍼포먼스는 기대 이상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김정은의 ‘위험한’ 변신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몇 년 동안 북측의 동명이인이 도발하는 일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배우 김정은의 이번 도발은 너무도 뜻밖이었다고나 할까.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 SBS ‘나쁜 남자’ 등으로 짙은 감성을 보여주고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코믹과 서스펜스를 오간 이형민 PD가 또 한 번 실력을 발휘한 것이기도 하다.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했지만 직접 비교해보면 감각적인 앵글 등 원작 드라마보다 훨씬 세련된 연출이라는 분석들이 나온다. 심지어 김정은과는 TV조선 ‘한반도’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 김정은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덕분에 한때 속없이 웃기만 하는 듯 보였던 김정은이 여우처럼 돌변해 돌아온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게 된다. 배우가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반응이 있을 정도로 잘 어울리게 하고 있다. 배우가 본업을 제대로 보여줄 때만큼 배우 자신도, 팬도 마음이 좋을 때가 없을 텐데 김정은이 딱 그러고 있다. 당분간은 배우 김정은이 북녘 누구보다 더 많이 화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조성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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