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가르치려드는 정치인들[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10.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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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달 하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계 인사들이 잇따라 국회를 방문해 ‘기업규제3법’(혹자는 공정경제3법이라 부름)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기업이 제대로 했으면 이런 법이 나왔겠느냐"는 핀잔뿐이었다.

재계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률 제정안이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강한 규제로 우리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다며 입법 전에 재계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찾아갔지만 훈계만 듣고 왔다.



어느 당의 최고위층은 경제인들에게 “불공정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커졌을 때 미국은 부호들이 직접 나서서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많이 걷으라'고 했는데, 한국 기업인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는 또 한 인터뷰에선 "우리가 세계에 없는 걸(기업규제3법) 한다고 말하지만, 세계에 우리 같은 재벌구조를 가진 나라도 없다"며 "재계가 아무런 특이한 사항을 만들지 않았으면 그런 법이 나오지도 않을 것"이라고도 했단다.



그의 이 주장들은 맞는데 틀렸다. 부자들이 소득의 비율에 따라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부자들의 자본이득세율이 일반 근로소득세율의 절반수준이니 더 내자는 건 당연한 얘기다. 미국과 한국 부자의 일반화의 오류다.

미국 부자들은 국제그룹처럼 새마을헌금을 내지 않았다고 군사정권에 의해 1주일 만에 공중분해 되지도 않고, 쌍용그룹 창업자처럼 정권에 밉보여 반도체 사업의 꿈을 접고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지도 않았다.

정치를 4류라고 했다고 전 계열사 세무조사를 받거나, 정권에 불편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오너 경영자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라는 협박전화를 받지도 않아도 된다.


그러니 미국 부자들은 굳이 정치권이 차떼기로 선거자금을 가져오라고 협박하더라도 돈을 낼 필요가 없으니, 정치적 사건에도 연루될 일도 없고 기업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정치권에 대해선 항상 ‘을’의 입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권의 이런 부당한 압력이나 요구가 없어진다면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지 않고 재계 경영자들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기업들을 비판한 그가 독일에서 공부했던 1960년대로부터 6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재벌구조 때문에 이런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 얘기다. 전세계에 없는 오너 경영시스템이 일부 문제도 만들었지만, 고속성장을 이끈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던 경제적 성공이다. 이는 전국민들의 노력과 기업의 역할, 정부의 정책지원 등 3박자에 의한 결실이다.

기업의 성장이 기업 창업자 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는 것은 기업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미처 챙기지 못하고 간과했던 문제들을 이제는 챙기는 단계다.

재계 3~4세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영수업을 하고, 세계 표준에 맞춰 가는 상황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먼 규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오랜 편견의 영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면서 각 개인은 자신의 상황에 근거해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부론'에서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공공의 이익을 높이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훌륭한 장치라고 봤다.

기업규제3법 논란에서 통제되지 않는 시장에서의 과소규제도 문제지만 통제되지 않는 정치권력에 의한 과잉규제도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의 훈계가 아니라 재계와의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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