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미로 '테넷', N차 관람만이 답!

권구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8.27 10:57
글자크기

놀란이 만든 놀라운 세계! 눈귀두뇌가 바쁘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놀란이 또 놀란했다. 놀란이 이번에 건드린 분야는 열역학과 양자역학이다. 두 학문을 엮어 에너지의 흐름을 시간과 공간으로 치환했고, 엔트로피 법칙을 확장시켜 ‘인버전’이라는 개념과 버무렸다. 어찌하여 영화 한편 보는데 심도 깊은 물리학 이론까지 알아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인셉션’ 때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인터스텔라’ 때는 천체물리학 책을 펼쳐봤던 관객이라면 이번에도 ‘외쳐! 갓 놀란!’이라며 그 매력에 푹 빠져들게 생겼다.

초반 시퀀스를 뜯어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이 평범한(?) 작품도 얼마나 잘 만드는 감독인가를 느낄 수 있다. 오페라 극장에서 펼쳐지는 오프닝 테러신 닐(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뭄바이의 프리야(딤플 카파디아)를 만나러 가서 펼치는 번지점프 침투신, 오슬로 공항에서 보잉 747을 세트에 직접 때려 박으며 찍어낸 프리포트 습격신 등은 왜 감독이 이번 영화를 “‘인셉션’의 아이디어에 첩보물을 더한 것”이라고 자평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놀란은 ‘테넷’에 특별한 설정을 더했다. 바로 ‘인버전’이다. 인버전이란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미래 기술이다. 사물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사람 역시 특수한 문을 통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면 모든 물리 법칙 또한 역행한다. 모든 일에 인과율이 있다면, 결과가 먼저 펼쳐지고 그 원인이 후에 일어나는 세상이다. 중반부터 펼쳐지는 인버젼 월드는 동공의 즐거움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허나 주인공이 인버전의 문을 통과하면서부터 관객의 뇌 활동이 바빠진다. 정방향과 역방향을 오가는 비주얼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과거로의 역행과 현재로의 순행이 교차하는 타임라인에서 이탈하고 만다. 앞서 깔아뒀던 복선들과 지금을 연결 짓다 보면 노트를 펼쳐놓고 본격적으로 ‘메모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한 번 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관람평이 괜한 말이 아니다. 놀란의 작품이 늘 그래왔다지만, 이번 ‘테넷’은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영화 포스터의 카피가 눈에 밟히지만, 바삐 돌아가는 뇌 회전을 멈출 방법이 없다.

이해 부족의 멘붕에 빠지는덴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설명의 부재가 크다. 신기한 설정이 난무했던 ‘인셉션’에는 설계 초보자 ‘아리아드네(엘런 페이지)가 있었다. 하여 코브(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눈높이 교육이 펼쳐졌고, 덕분에 관객도 무리 없이 ‘인셉션’의 세계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넷’은 다르다. 모든 인물의 전사는 알 턱이 없고, 우리의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께서는 연구원의 짧은 설명만으로도 인버젼의 속성을 꿰뚫고 미션을 수행한다. 편집 역시 친절한 편이 아니어서 이해할 시간은커녕 느끼기에도 바쁜 관객은 그저 놀란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은 150분이라는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화 시작 전으로 인버전하는 경험을 한다. 영화의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역행하며 놀란의 손바닥 위에서 헤엄친다. 누군가는 정보의 바다를 서핑할 거고, 누군가는 전공 서적을 뒤적일 터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의 명대사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를 외치며 영화를 다시 확인하러 극장문을 두드릴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소구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하여 결국 ‘테넷’도 N차 관람이 답이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주제 의식만 놓고 보면 그간 놀란의 영화의 심오한 메시지에 비해 한없이 가볍다. 그저 ‘3차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내용이고, 캐릭터 간의 인과 관계도 크게 신경 쓸 바 없다. 다만 ‘테넷’은 복잡한 영화다. 정교한 플롯은 놀란의 장기, 영화와 다시 마주하며 퍼즐을 맞추다 보면 놀란이 이 이야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썼을지 느낄 수 있다.

뇌 회전이 바쁜 나머지 스쳐 지나갔던 디테일도 N차가 돼서야 눈에 들어온다. 세계 7개국의 로케이션부터 CG와 특수효과를 최소한으로 진행하며 한 땀 한 땀 촬영해 낸 놀란의 집요함엔 절로 박수가 나온다. 순행과 역행이 혼재하는 액션과 카체이싱은 눈에 호사를 안긴다. 그가 IMAX를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부분은 늘 감사할 따름이다. ‘듄’의 스케줄로 인해 한스 짐머가 빠지면서 직접 추천했다는 루드비히 고란손의 오리지널 사운드 역시 훌륭하다.


대사의 차진 맛도 곱씹는 재미가 있다. 순행과 역행의 조화가 어우러진 작품인 만큼 제목부터 앞으로 읽어도 ‘TENET’ 거꾸로 읽어도 ‘TENET’ 아니던가. 대사 역시 수미상관을 적용한 지점들이 꽤 있으니 원어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테넷’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트와일라잇’으로 스타덤에 오른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인 영화에 “We live in a twilight world”라는 대사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놀란의 디테일을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다.

유일한 약점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타 작품에 비해 뉴비(초심자)들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다. 마니아들이야 인버전하듯 N차 관람의 회전문을 돌리겠으나, 얼마나 많은 뉴비들이 이 복잡한 영화를 다시 찾을 것인가엔 물음표가 남는다.

권구현(칼럼니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