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빈자리 크다” 주택정책 ‘예스맨’ 된 서울시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0.08.0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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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공급확대 테스크포스(TF) 회의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사진제공=뉴스1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공급확대 테스크포스(TF) 회의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사진제공=뉴스1


박원순 전 시장 사망 사태로 구심점을 잃은 서울시가 권한대행 체제의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당정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어준 모습이다. 내부에선 “시장의 빈자리가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공재건축 소신 밝혔다가 3시간 만에 번복…총리, 해당 인사 공개질책
시장 부재에 따른 서울시의 위상 추락은 이번 8·4 공급대책 발표 직후 고스란히 나타났다. ‘공공재건축’ 관련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LH, SH 등 공공기관이 참여한 재건축 단지에 최고 50층 높이 아파트를 지어 3년 안에 5만 가구 이상을 추가 공급할 수 있다는 공공재건축 구상을 발표했다.



발표에 참여했던 서울시는 그러나 이날 이례적으로 별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현 정부 들어 대규모 주택 공급대책은 경제부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하고 서울시장이 배석해서 힘을 실어줬다. 시의 공식 입장은 해당 기자회견에서 시장이 언급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런데 이날 오전 정부 발표에 서정협 권한대행이 참석했음에도 오후에 주택공급, 도시계획 분야 실무 총괄자들이 추가 설명회를 한 것이다.

서울시 인사들은 이 자리에서 자체 개발한 ‘지분적립형 주택’를 중점 설명했다. 정부가 강조한 공공재건축에 대해선 “공공재개발과 달리 분양가상한제 제외도 없고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느냐는 실무적 의문이 있다”며 “정부 정책대로 가겠지만 별로 찬성하지 않는 방식”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부 발표를 근거로 “공공재건축 단지는 대부분 50층 층고 상향 혜택을 받게 될 것”이란 보도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해명에 나섰다. 국토계획법에 근거해 사실상 법적구속력이 있는 서울 ‘도시계획 2030플랜’에 따르면 아파트만 지으면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해도 35층을 넘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이 4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방안' 발표에 따른 세부 공급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이 4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방안' 발표에 따른 세부 공급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그러나 이런 서울시의 입장은 불과 3시간 만에 번복됐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4일 오후 언론에 전달한 '공공재건축 관련 서울시 입장'을 통해 "공공재건축 사업은 정부와 서울시의 협의를 거쳐 결정된 사업"이라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으로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부와 서울시가 공공재건축에 엇박자를 내면서 주택공급대책의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보도가 잇따르자 봉합에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당·정·청 관계자들이 서울시 측에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서울시 국장의 발언과 태도는 국민에게 혼란만 일으켜 아주 적절하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함구령 떨어진 서울시…내년 4월 선거 전까진 소극 행보 불가피
이후 서울시 실무자들 사이에선 공공재건축에 대해선 사실상 ‘함구령’이 떨어졌다. 김 본부장 명의의 사과문을 공개한 후 “공공재건축은 정부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했고, 정책 성공을 위해 최대한 협조한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2018년 3기 신도시 추진 과정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그린벨트 해제를 요청했지만, 박 전 시장이 보존 원칙을 고수하고 별도의 도심 공급 대안을 제시해서 정책에 반영시킨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시장 공백으로 도시계획 원칙이 흔들리고 지방정부로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시장에선 서울시가 정책 수립에 참여해놓고 대국민 발표 후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과 함께 지나친 당정의 일방통행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복문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장은 “정부는 큰 지침을 내리고 재건축 사업은 지자체 주관으로 하면 되는데 정부가 왜 모든 과정을 통제하려 하느냐”며 “정체된 시내 재건축·재개발만 정상화해도 10만 가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서울시 의견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공공재건축이 성과를 내려면 공공재개발처럼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거나 기부채납 비율을 낮추는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부가 '8.4 주택공급대책'을 통해 서울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조건부로 완화하기로 결정하면서 강남권 정비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송파구의 한 부동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사진제공=뉴스1부가 '8.4 주택공급대책'을 통해 서울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조건부로 완화하기로 결정하면서 강남권 정비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송파구의 한 부동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조합들 내년 4월 선거 이후까지 관망세…정부 "선도 사업지 발굴" 총력전
내년 4월 보궐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이런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한대행 체제에선 임의로 기존 도시계획을 바꿔 주도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당장 서울시가 정부 정책에 협조해서 사업을 추진해도 새로운 시장 당선자의 정책 구상에 따라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재건축 조합들도 이런 불확실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런 이유로 정부가 기대한 공공재건축을 통한 5만 가구 이상의 물량 확보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정부는 무리한 목표라는 아니라고 본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속히 선도 사업지를 발굴해서 공공재건축을 재건축 사업의 새로운 유형으로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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