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60만명인데 미군이 왜 필요해?"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7.2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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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금 한국엔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한국군이 60만명에 달하는데 왜 미군이 필요한가. (중략) 한국 정부는 왜 그 비용을 (충분히) 부담하지 않는가. 돈까지 대주면서 우리 젊은이들을 고생시키는 게 말이 되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저서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Time to get tough) 서두에 쓴 내용이다. 2011년과 2015년 두차례 펴낸 이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개념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백악관 입성 후에도 그의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부 장관 등 이른바 '어른들의 축'이 갖은 노력을 해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의 개념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이는 결국 주한미군 철수 검토 지시로 이어졌다.



독일에 이어 한국에서도 미군을 빼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문에 미 국방부는 전세계 미군 재배치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서도 "각 지역의 미군 재배치 문제는 검토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착각과 달리 주한미군은 일방적으로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전통적 안보전략인 '전진방어' 개념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배치된 것이다.



1898년 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시작된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필리핀과 괌을 접수한 미국은 얼떨결에 태평양이란 앞마당을 갖게 됐다. 이후 세계대전을 거치며 기존 대영제국의 군사기지를 넘겨받고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에서도 승리한 미국은 명실상부한 태평양의 주인으로 군림한다.

현재 주일미군은 서태평양을 양보하라는 중국에 맞서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지키는 인도·태평양사령부의 핵심 보급전력이다. 여기까진 트럼프 대통령도 동의한다.

문제는 주한미군이다. 이들을 일본 오키나와 또는 괌으로 옮기거나 본토로 데려와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다. 폭격기가 이륙한 뒤 평양이나 베이징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는 논리 정도론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군 검토를 지시한 건 지난 4∼5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틀어진 이후다. 요구한 50억달러(약 6조원)을 못 받을 바엔 주한미군을 빼겠다는 얘기다.

현행 미 국방수권법이 주한미군 감축을 제한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주한미군을 줄이는 게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역내 동맹국들의 안보를 상당히 해치지 않으며 △한국·일본과 적절한 논의를 거쳤다는 점 등을 국방장관이 의회에 설명하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70년 동맹에 대한 경멸조차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과의 만찬 당시 "한국인은 끔찍한 사람들"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돈(방위비 분담금)을 주지 않는다. 미국이 왜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하는 걸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서글픈 건 그의 이런 속내를 아느지 모르는지 이후에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을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며 감싸고 돌았다는 사실이다.

또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특보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11월 미 대선을 통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면 (남북관계에) 부정적"이라고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북한 비핵화 진전을 기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 일부 여권의 인식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리한 지지율을 딛고 재선에 성공했다고 치자. 충동적이고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화염과 분노' 시절 부르짖던 군사적 옵션을 배제한 채 북한을 상대로 끝까지 대화 기조를 유지한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나.

재선까지 이루고 더 이상 눈치 볼 게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삐 풀린 말처럼 오랜 소신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밀어붙인다면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이렇게 '핵우산'이 사라져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과연 말할 수 있나. 동맹과 장사도 구분 못하는 초강대국 지도자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는 시간은 4년이면 충분하다.

"한국군이 60만명인데 미군이 왜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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