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사전에 '피해자'는 없다

머니투데이 구단비 기자 2020.07.1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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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피해 호소 여성" "피해 호소인" "고소인" "피해 고소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를 고발한 전직 비서 A씨를 향해 '피해자'라는 호칭을 꺼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5일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피해 호소인의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지난 13일 강훈식 대변인이 대신 읽은 이 대표의 사과문에서도 A씨는 "피해 호소인"으로 명명됐다. 그 밖에도 김부겸 전 의원, 이낙연 의원도 '고소인' '피해 고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피해자' 명칭 피하기엔 정부와 서울시도 동참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14일 입장문에도 A씨는 '고소인' 또는 '피해 고소인'으로 등장한다. 서울시도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피해 기정사실화는 사자 명예훼손"…'피해자' 프레임 부담스럽나
지난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이 헌화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지난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이 헌화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들이 A씨를 '피해자'가 아닌 다른 명칭으로 지칭하는 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15일 박 시장의 사망 이후 처음으로 입장을 발표하면서 "피해 호소 직원 용어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접수가 되고, 조사 등 절차가 진행이 되는 시점에서 피해자라는 용어를 쓴다"며 이유를 밝혔다.

민주당은 2호 영입 인사였던 원종건씨의 데이트 폭력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피해 사실에 인정할 수 없고 의혹 수준이라는 당의 입장을 내비쳤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은 과거 미투 피해 여성들을 호칭할 때 '피해자'라고 불렀다"며 "안희정 사건, 오거돈 사건 때도 피해자라고 불렀는데 이번 박 시장 사건에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와 피해 호소자의 구분 기준은 무엇이냐"며 "안 지사와 오 시장은 억울하지 않은데 박 시장은 억울할 가능성이 있냐"며 해명을 요구했다.

"'가해 보호 여당'의 작명 솜씨" "피해자 아직 못 믿겠다는 불신"
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 호소인'이라는 사회방언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사과할 생각이 없고 그냥 이 국면을 교묘히 빠져나갈 생각만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재차 "이낙연 의원도 '피해 고소인'이라 부른다. 공식적으로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 전 교수는 전날에도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말은 피해자의 말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뜻을 담고 있다" "피해자가 폭로해도 일단 안 믿어주는 세상이 박 시장이 원하던 세상이냐"고 비판해왔다.

미래통합당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피해 호소 여성' 호칭을 사용하는 민주당을 '가해 보호 여당'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김 교수는 15일 페이스북에 "해괴망측한 단어로 물타기 하는 재주는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며 "진보의 가면으로 진영의 이익을 위해 가장 추악한 인권침해를 은폐하려는 작명"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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