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 필요한 첫마디…"그동안 힘들었지"

머니투데이 구단비 기자 2020.07.1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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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성희롱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럴 사람 아니다'라고 답변해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 13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 A씨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A씨를 비롯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용기 내 피해 사실을 고발했을 때 조직 내부에서 은폐하려고 시도하거나,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큰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도 "피해자들이 문제제기했을 때 내부에서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지지하지 않으면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기관에 전화해 상담하는 경우, 주변에 상의할 수 없어 마지막 수단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가 처음 피해 사실을 토로할 때 주변에서 지지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피해 신고 이후 절차를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럴 사람 아니던데…" 대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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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본인의 피해 사실을 털어놨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말에 긍정하며,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는지 경청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보통 피해자들에겐 '(가해자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네가 오해한 거 아니냐'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됐다' '상대방의 가정을 파괴하려는 것이냐'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피해자에게 절실한 것은 힘든 상황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다. 또한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 "원하는 방식이 있다면 같이 해결해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일을 겪었다니 힘들었겠다" "네 말을 믿는다" 등 지지의 말이 피해 사실을 신고할 수 있는 용기가 돼줄 수 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주변인들에겐)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와의 경험이 불쾌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피해자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며 "위계질서가 있는 회사 특성상 같은 행동이라도 위치에 따라 다르게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네 잘못 아냐"…조직 내 또다른 피해자 방지 위해선 '집단 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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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가 '직장 내 성희롱'을 호소했을 때, 이들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조직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직장 내 또 다른 피해자 방지를 위해서도 집단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관 관계자는 "가해자가 그 사람에게만 성희롱한다는 건 극소수의 사례"라며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도 "우리 조직이 성희롱에 대해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조직원들과 공유하는 게 좋다"며 "조직 문화를 어떻게 개선할지 모색해야지 쉬쉬하거나 미봉책으로 덮으려 시도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조직의 특성이나 규모에 따라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에 조심스러울 수 있다. 이럴 경우 공식적 기구 내에서 조사하고 논의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해자 두 번 울리는 '소문''2차 가해'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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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이 있다. 바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다. 안 전 지사의 전 비서 김씨도 결심공판에서 "'마누라 비서'라는 처음 듣는 별명까지 붙여 불륜으로 몰아갔다"는 2차 가해 경험을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문으로 인해 피해자가 받을 또 다른 고통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확한 조사가 진행되는 중에는 불필요한 이야기는 조사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대부분 가해자들은 피해자보다 상사이거나 유명한 사람, 힘이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얘기가 무엇일지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정보를 접하게 되면 이를 퍼트리기보단 내 선에서 그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지지와 응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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