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 선미 화사, 여성 솔로가수들의 지금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0.07.09 11:48
글자크기

무더위를 식혀줄 세 서머퀸들이 펼친 축제

청하, 사진제공=MNH엔터테인먼트 청하, 사진제공=MNH엔터테인먼트


올 여름은 여성 솔로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케이팝 팬들에게는 축복과도 같다. 6월 말에서 7월 초, 고작 일주일 남짓한 사이 선미, 화사, 청하 세 사람이 동시에 컴백을 알렸다. 높은 대중 인지도로 보나 독보적인 개성으로 보나 누가 뭐래도 현재 케이팝신을 대표하는 솔로 가수이자 퍼포머인 세 사람이 각자 보유한 최강의 무기와 신곡의 감상 포인트를 모아 본다.

청하 – 글리터 여신에서 서머 퀸으로



'프로듀스101'에서 ‘전 JYP출신 연습생’으로 소개되었을 때, 아니 I.O.I 활동을 마무리하고 솔로로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까지만 해도 청하가 지금과 같은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거라 쉽게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무대에 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뛰어난 무대 장악력과 탄탄한 춤 실력으로 I.O.I의 메인 댄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였지만 그룹이라는 둥지 없이 솔로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이돌은 그룹 단위여야 한다는, 특히 여성 솔로의 경우 팬덤 확보가 어려워 더더욱 성공이 쉽지 않다는 고정 관념은 전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그로 인해 탄생한 그룹의 그림자가 사라진 순간 그를 무엇보다 부담스럽게 만들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로부터 3년. 청하는 그 모든 우려의 시선이 우습다는 듯 오로지 자신의 두 다리만으로 당당히 땅을 딛고 섰다. 데뷔 곡 ‘Why Don't You Know’에서 그에게 여러 의미의 커리어 하이를 선사한 ‘벌써 12시’까지, 청하는 퍼포먼스와 트로피컬, 글리터 여왕으로 군림하며 국내외 케이팝 팬들을 사로잡았다. 더불어 넉살, 마미손, 그리즐리, 폴킴, 88rising의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등 국내외를 막론한 곳곳에서 쏟아진 러브콜을 카멜레온처럼 거뜬히 소화해내는 모습은 불신자들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차례로 증명해 나가는 우직한 걸음걸음에 다름 아니었다. 새 앨범의 선 공개 곡으로 발표된 ‘Stay Tonight’와 ‘PLAY’는 그런 변화의 변곡점에 놓인 청하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하나하나 꺼내놓아 선보이는 빛나는 전시장이다. 그 모습이 많은 이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여름의 빛깔을 닮았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다. 새로운 서머 퀸의 탄생이 바로 눈 앞이다.



사진제공=메이크어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메이크어스엔터테인먼트
선미 – 연륜과 낭만과 엉뚱함의 조화


선미는 흔히 섹시의 아이콘으로 분류되지만, 그건 어쩌면 아이돌 그룹 출신 여성 솔로 아티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습적인 프레임일지도 모른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24시간이 모자라’, ‘보름달’을 부르던 시절에는 확실히 그 틀에 갇혀 있는 모습이었다. 타이트한 의상 위에 박시한 흰 셔츠를 걸치고 24시간이 모자르다고, 뱀파이어로 분해 무대 중앙에 놓인 소파를 중심으로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보름달이 뜨는 밤 날 보러 오라고 주문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선미는 확실히 시대가 반복해 온 ‘섹시’ 이미지의 재생산 그 자체였다.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지만 과거가 남긴 흔적은 분명했기에 소속사로부터 독립한 뒤 발표한 ‘가시나’가 더욱 놀라웠다. 선미는 더 이상 눈앞의 상대를 유혹하는데 쓰이는 강력한 무기로서의 역할을 거부했다. JYP 시절의 공기 반 소리 반에서 벗어나 째지듯 쏘는 창법을 시도한 곡의 도입부에서 막춤을 추고 옷 더미 위와 바닥을 구르고 화면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의도한) 새끼 손가락을 올리는 모습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엉뚱한 미야예(@miyayeah), 선미 그 자체를 대중 앞에 처음으로 드러낸 첫 시도였다. 이후 ‘주인공’, ‘사이렌(Siren)’, ‘날라리(LALALAY)’를 통해 특유의 똘끼를 녹여낸 집중도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인 그가 ‘보라빛 밤 (pporappippam)’으로 꺼내든 건 보라빛 노을이 드리워진 낭만적인 레트로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신비한 보라빛이 선미와 프로듀서 FRANTS가 만들어내는, 이제는 ‘선미팝’이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시그니처 사운드를 타고 시공간을 가득 채운다.

사진제공=RBW사진제공=RBW
화사 - 그 누구보다 솔직한 화사


화사는 늘 수많은 가치판단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판단은 때론 긍정이기도, 때론 부정이기도 했다. 몸 담고 있는 그룹 마마무가 데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끌어오고 있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둘러싼 각종 담론에서 화사를 이야기하며 결코 빠지지 않는 ‘한국인으로서는 불가능한 몸매’ 같은 그의 몸에 대한 갖은 설왕설래, 섹시한 이미지와 달리 곱창을 즐겨 먹고 회색 톤의 헐렁한 핏을 좋아하는 평상복 취향까지. 모든 건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화사 그 자체였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은 드물었다. 대중 앞에 선 이의 숙명이라고 쉽게 말하기엔 길고 집요한 6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화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언제나 주저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세례명인 마리아를 제목에 그대로 차용한 ‘마리아 (Maria)’는 그렇게 늘 솔직해 온 화사가 그 언제보다 과감한 날 것의 모습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한풀이의 장이다. ‘욕을 하도 먹어 체했어’로 시작되는 노래는 시종일관 무거운 기조로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 마음을 더럽히지 말라고, 가던 길 가라고, 널 괴롭히지 말라고. 시선과 편견으로 인한 살해 현장처럼 꾸며진 첫 장면으로 시작하는 뮤직비디오는 마마무 멤버들이 직접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 되는데, 여기에 ‘뭐 하러 아등바등 대 이미 아름다운데’라는 노랫말까지 더하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어진다. 그래도 굳이 한 마디를 더하자면 화사는 참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화사가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한 마지막 곡 ‘LMM’은 그의 보컬이 가진 뛰어난 기교와 감성의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트랙이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