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100% 보상해라…일부선 "자본시장 근간 흔드는 나쁜 선례"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2020.07.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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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강당에서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 개최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금감원은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했다./사진=뉴시스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강당에서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 개최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금감원은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했다./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중심인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에 대해 투자 원금 100%를 물어주라고 권고했다. 은행들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일각에선 소비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판매사에게 책임을 지운 것은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나쁜 선례라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해당 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지난달 30일 분조위를 열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하고 1일 이 사실을 공개했다. 투자계약을 맺은 시점에 이미 기존 투자원금의 최대 98% 손실이 났는데도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는 게 이런 결론을 내린 배경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공식적으로 원금 100% 보상은 이사회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두 은행 내부에서는 배임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 은행은 지난해 말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원금의 최대 80%를 보상하라는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였다.

사실 DLF 사태 초기만 해도 은행들은 고객들도 투자 책임이 있다며 피해보상 요구에 원칙적 입장을 폈다. 이들이 버틸 수 있던 근거는 자본시장법 55조다. 금융회사는 투자상품을 팔 때 사전에 수익을 약정하거나 사후 보상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단 금융사가 판매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고 인정하거나 투자자와 사적화해를 했을 때, 또는 법원 판결, 분조위 결정이 있을 때는 예외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선보상이 문제가 없다며 ‘비조치의견서’를 써주면서까지 은행들에 보상을 요구했다. 특히 분조위는 DLF의 경우 최대 80%,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100% 보상하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상품을 설계한 운용사의 과실은 묻지 않았다. 이번 라임 무역금융펀드만 해도 판매사들이 사기에 연루됐다는 증거가 없다면서도 투자자들이 ‘착오’를 일으켰다며 투자금을 모두 물어주라고 결정했다.

문제는 은행의 사기행위가 입증되지 않은 사안까지 이렇게 보상을 반복될 때마다 은행 경영진은 배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분조위 결정이 강제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금감원을 의지에 반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배임 위험이 상존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 “사안에 따라 은행들이 무리하게 판매한 정황이 있을 수 있지만 손실의 상당액을 물어줘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은행 경영진이 당국과의 관계를 생각해 문제 해결에 우선 무게를 두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금감원의 권고를 거스르지 못하는 데는 당국의 눈치도 있지만 은행 영업에 관한 현실적 문제도 있다. 사모펀드 투자자 대부분은 은행의 VIP들이다. 펀드 손실 확정과 분쟁조정, 법적공방 등을 거치면 최소한 3년 넘게 소요된다. 그 사이 큰 손들이 은행을 떠난다. 자산관리(WM) 사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이미 잇단 사모펀드 손실로 큰 손들의 이탈도 진행중이다. 3월 말 기준 국내 사모펀드 판매규모는 23조5805억원. DLF 사태가 드러나기 시작한 지난해 7월 29조51억원과 비교해 19% 가까이 돈이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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