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원은 “솔직히 국회가 파행돼서 안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때가 있다”며 “평소 ‘일하는 국회’를 강조해왔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씁쓸하다”고 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엉터리 법안이 많기 때문이다. 무작정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를 열고 통과시키면 그게 오히려 국민에게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국회가 열리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국민의 이목을 끄는 사건·사고가 발생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면 어김없이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낸다. 의원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물어보면 모를때가 많다. 그 사건의 피해자나 핵심 내용을 붙여 ‘OOO법’으로 출입기자들에게 친절하게 홍보한다. 또 기존 법안에 간단한 조항을 넣거나 자구를 수정하는 등 필요 이상의 개정안을 발의한다. 어떤 의원은 4년간 600건 이상 발의해 시민단체가 상을 줬다.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법안을 내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처럼 의원들이 시도때도 없이 법안을 내는 이유는 각 정당의 잘못된 평가 시스템 때문이다. 당이 공천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량평가로 의원들의 법안 건수를 체크한다. 각 당이 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 법안을 무작정 많이 발의했다고 상을 줄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법인지 따져서 평가를 해야한다. 아울러 법안을 발의하기 전에 규제영향평가를 받도록 해야한다. 이 법이 만들어졌을 경우 국민 편익이 얼마나 있는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정하게 분석해야한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입법영향평가제도 도입을 해결책으로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이 제도는 법률이 국가와 사회 또는 개인에게 미치는 중요한 영향을 입법 전후로 체계적으로 예측하고 분석·평가하는 게 골자다. 해외에선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걸 도입하려면 국회법 개정이 이뤄져야한다. 하지만 의원들의 반대가 거세다. 의원들의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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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국회의장(6선)을 지낸 정세균 국무총리가 따끔한 지적을 했다. 정 총리는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21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에 대한 자체적인 규제심사제도가 반드시 도입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 달라"고 했다. 정 총리조차 직접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규제에 막혀 일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신뢰받는 국회의 첫 번째 조건은 국민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다. 일하는 국회는 무조건 법안만 발의하는 국회가 아니다. 국민 삶에 반드시 필요한 법을 만들어 빠른 시일내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 쓸데없는 법이 넘치면 꼭 필요한 법이 묻힌다. 그러면 ‘일 안하는 국회’가 되는거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된 지 한달이 지났는데, 벌써 1100건 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한달동안 과연 얼마나 깊은 연구를 통해 발의됐을지 의문이다. 의원들이 보여주기식 쓸데없는 법안, 법 같지 않는 법을 발의하지 않는 게 ‘일하는 국회’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