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정규직 논란…줄줄이 터진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안정준 기자, 최민경 기자 2020.07.0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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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정규직화에 떠는 기업들 (上)

편집자주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 사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노노갈등과 비정규직-취업준비생 갈등 등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건 약과다. 현대위아를 시작으로 현대·기아차와 포스코, 현대제철 등이 겪고 있는 비정규직 직고용 소송(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이들 기업의 하청업체 직원들은 자신들을 원청업체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이 소송에서 대법원이 근로자 손을 들어준다면 우리 사회는 전무후무한 정규직 고용 사태에 휘말리게 된다. 인국공 사태를 압도하는 민간기업 직고용 소송의 실태를 점검해본다.

인국공이 끝? 본게임이 온다…현대위아에 쏠리는 눈
묻지마 정규직 논란…줄줄이 터진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논란이 온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급기야 국민 여론까지 양분되고 있지만 어느 쪽의 논리도 소홀히 볼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공공기관'의 영역에만 속한 논쟁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민간기업들로 정규직 전환 문제의 불씨가 옮겨붙고 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위아 평택2공장 파견업체 근로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직접고용요구소송)'은 이제 대법원 판결이 임박했다.



'인국공 논란'을 넘어 우리 사회는 이제 현대위아 소송이라는 더 광범위하고, 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하청업체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공정이 많은 기업들은 충격파가 클 전망이다.

재계는 특히 정부와 법원이 기업들의 현실에도 제발 눈을 돌려줄 것을 호소한다. 기업 실정을 외면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되레 고용 안정은 커녕 좋은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인력의 자회사 정규직 고용이 과연 나쁜 것이냐는 질문의 해답도 함께 찾아야 한다.



현대위아 평택2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80여명은 지난달 23일부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현대위아가 우리를 직접 고용하라"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낸 상태다.

이들은 2공장으로 별도 구분된 생산라인을 담당한다. 현대위아는 자사 직원들과 하청업체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 혼재 근무는 없다는 입장이다. 2016년 한국타이어 사건에서도 이런 이유로 적법 도급이 인정됐다. 하지만 1·2심은 모두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 최종 판결만 남겨둔 상태다.

현대위아는 2공장 투자회사(자회사)를 만들어 하청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하청업체 노조는 결사반대다. 노조는 "현대위아가 소송을 접게 하려고 자회사 정규직을 내걸며 노조를 탄압한다"며 현대위아 대표이사를 파견법 위반으로 다시 고발했다.


포스코는 현대위아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다. 광양제철소 천장크레인 근로자 16명이 역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적법한 도급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2심은 1심을 뒤집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포스코측은 크레인 근로자가 협력업체 직원들끼리만 업무를 수행해 혼재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대위아와 포스코의 소송은 사실 '인국공 사태'와 닮았다. 보안직 채용 과정은 민간기업 사무직과 다르다고 하지만 답 없는 취업시장에 내몰린 취준생들의 눈에는 줄어드는 TO(선발인원)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대위아도 마찬가지다. 취업 희망자들에겐 비정규직 직고용은 내 취업 문턱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파장의 범위는 두 사안이 사뭇 다르다. 인국공 논란은 이미 정부 방침이 결정된 안이다.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에 한정된 영역이다. 인국공 논란의 영향력은 그 범위는 제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위아 (57,500원 ▼600 -1.03%)와 포스코 직고용 논란은 그 영역이 인국공과는 비교가 안된다. 이 직고용 논란은 대법원 판결을 수반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대법원이 직고용을 명령하면 민간기업들은 무조건 이를 지켜야 한다. 합의로 마무리된 삼성전자서비스나 "한국을 떠나겠다"며 불복하는 한국GM과 전혀 다른 상황이 불가피하다.

재계가 현대위아 소송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수많은 민간기업들이 비슷한 소송으로 그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대법원 판결을 수용하느냐, 한국을 떠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판결의 시점 상 현대위아가 가장 앞단에 섰을 뿐, 이 판결을 기다리는 기업은 대한민국 전 산업계라고 봐도 될 정도"라고 밝혔다.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직고용' 소송 줄대기..‘묻지마 정규직’ 논란, 전 사회로 번진다
묻지마 정규직 논란…줄줄이 터진다
현대위아 하청업체 직원들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대법원 판결이 비정규직 '직접 고용'으로 확정될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기업들에게 날벼락이 될 전망이다. 올 2분기 실적급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직접 고용이 이뤄진다면 기존 직원들과 함께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32,350원 ▼250 -0.77%)에 식당 운영과 통근버스 운전 인력을 공급하는 웰리브가 바로 이런 사례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웰리브가 자회사인 웰리브수송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했다. 원청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이 업황 악화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웰리브 입장에선 이런 고용은 큰 부담이 됐다. 웰리브는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을 승계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노조가 "비정규직화를 위한 꼼수"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자회사 설립을 통해 직접 고용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많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 직원 파견 논란이 불거진 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패소하자, 2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자회사로 고용 승계를 해주는 돌파구를 만들었다.

지속되는 경영난에 한국 철수까지 검토했던 한국GM도 직고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한국GM 인천 부평·경남 창원·전북 군산공장 하청 노동자 82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청인 한국GM의 고용 방식이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앞서 고용노동부도 한국GM 창원공장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774명을 불법 파견으로 인정해 직고용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노조 측은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에 대한 구속수사를 촉구하며, 직고용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GM이 군산공장을 철수하면서 3000여명의 직원을 내보냈는데 잇따른 소송 판결로 공장 하나를 돌릴 수 있는 인력인 2000여명의 협력업체 직원을 직고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직고용이 한국GM 경영 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밝혔다. 한국GM 관계자는 "관련 소송만 15건에 이른다"며 "정부 방침대로 도급직 운영을 해왔는데 법원은 이 또한 불법이라고 판결하면 누굴 믿고 기업을 하느냐"고 밝혔다.

이 뿐 아니다. 현대·기아차와 현대제철 (31,650원 ▲200 +0.64%), 현대위아 (57,500원 ▼600 -1.03%)현대차 (250,000원 0.00%)그룹 주요 계열사는 물론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금호타이어 (6,460원 ▼150 -2.27%) 등도 줄줄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상고심이 대기 중이다. 법원 판단에 따라 노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직고용의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

새로운 소송전도 계속 예고된다. 불법 파견 문제를 제기하는 업종·업무범위가 계속 확대되고 있어서다. 그동안 불법 파견이 인정됐던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뿐 아니라 서비스업무와 지원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관련 소송은 계속 늘어날 수 있어 산업계 전반에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원청과 직접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 협력업체는 물론 원청의 1차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까지도 원청의 파견근로자로 인정해 직고용 의무를 씌우는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불분명한 파견법은 그대로 두고 협력업체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만 강요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직고용만 강요할 게 아니라 자회사 고용 등 사회적인 대타협안을 마련해줘야 기업들이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석환 기자, 우경희 기자

직원 1100명인데 2000명 추가 고용하라고?…파견법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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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현대위아 사태를 놓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1100명 직원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이보다 2배 많은 2000여명의 협력업체 직원들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끊고 이제 막 경영 정상화를 노리는 현대위아 입장에선 또 다시 깊은 난관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기존 직원의 2배를 고용해야 하는 현대위아의 위기가 코로나19(COVID19)로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차 부품업체를 고사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 난감한 현대위아의 운명은 현대위아 스스로가 아닌 '법'의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 현행 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는 파견이 금지된다. 특히 이 법에 따르면 파견 금지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거나, 2년 넘게 사용할 경우 원청 회사가 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현대위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바로 이 파견법에 근거해 2014년과 2017년 법원에 1, 2차 근로자지위확인소송(직접고용요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두 번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 확정 판결도 원심과 마찬가지로 나오면 현대위아는 평택 1·2공장에 근무하는 2000여명의 비정규직 인력들을 전원 직접 고용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적은 원청업체의 직접 고용을 통한 '고용 안정'이다. 노동자 파견의 상용화와 장기화를 막고, 파견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한다는 파견법 입법 취지도 현대위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과 맥락은 같다.

그러나 현대위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조건 현대위아의 직접 고용만을 원하는 모양새다. 금속노조 현대위아 비정규직 평택지회는 평택공장 사내하청업체를 모아 자회사를 만들고,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현대위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회사와 사내하청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평택지회의 판단이다.

'고용 안정'을 대의로 절차는 법의 테두리에서 진행 중이지만, 대법원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면 고용을 지탱하는 산업 자체가 무너지는 역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묻지마 정규직 논란…줄줄이 터진다
현대위아는 지난해 2년 연속 당기순손실 고리를 간신히 끊은 상황이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급증했지만, 일회성 이익을 제외하면 전년보다 70% 정도 이익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 직원의 2배 정도나 되는 신규 직원을 직접 고용할 만한 여력이 안 된다.

현대위아발 직접 고용의 후폭풍이 자동차 부품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오면 부품업체 사내하청 중 최초 판례가 되는데 이 같은 직접 고용을 노린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다. 특히 자동차 부품업체는 수년째 불황을 맞고 있는데다 코로나19 악재까지 겹쳐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 하청업체 직원들의 직접 고용 부담까지 떠안으면 사실상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만약 대법원 판결이 1, 2심 판결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으로 고용 안정은 커녕 해당업체의 도산으로 고용 불안이 더 가중되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며 "업계 상황과 노사 이해관계가 합리적으로 절충되는 판결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최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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