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50년 넘도록 인쇄업에 매달려온 남원호 B.G.I(Best Graphics International) 대표는 충무로 인쇄골목의 터줏대감이다.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장, 서울 중구 소상공인특화산업단 단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인쇄골목을 지키고 있다.
18살 '연습공'에서 '인쇄장인'으로 우뚝
남원호 대표의 18살때 모습(왼쪽). 남원호 대표가 국내외 인쇄 전문가들과 기념촬영하는 모습./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승승장구하던 남 대표는 1988년 인쇄업 창업을 결심했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인생의 승부를 보자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인쇄일을 하면서 이 일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며 "88년 올림픽 슬로건이 경제도약이었는데 나도 인생 도약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마포에 인쇄소를 마련해 낮에는 인쇄소에서 기계를 돌리고 밤에는 인쇄 공부를 했다. 2가지 컬러로만 인쇄를 하던 1980년대를 지나 1992년에 국내 처음으로 4가지 칼라로 인쇄하는 기계를 도입했다. 덕분에 전국에서 인쇄 문의가 쇄도했다. 1993년에는 천연향이 나는 인쇄물을 개발해 특허까지 받았다. 그렇게 만든 천연향 청첩장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따로 청첩장 사업체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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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단원 김홍도부터 보그잡지 표지도 복제
남원호 대표가 인쇄한 작품들./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 화판을 지하 1층에 있는 ‘만 로랜드’(Man Roland)라는 기계에 걸면 색을 입히는 작업을 거쳐 최종 인쇄물로 나온다. 만 로랜드 기계는 국내에서 화폐를 찍어내는 한국조폐공사와 B.G.I 두 곳만 보유하고 있다. 남 대표는 “돈도 찍어낼 수 있지만 이는 불법행위”라며 “상품권이나 복권 등은 하청을 받아 인쇄를 하기도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 대표가 이 기계를 들여온 건 2002년. 최첨단 기계에 남 대표의 기술력이 더해져 국내 최초로 고미술 복제인쇄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금강산 구룡폭포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의 고미술을 복제했다.
남 대표는 "고미술 복제는 고난이 기술을 요한다"며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무망점 인쇄 방식과 디지털 작업을 거쳐 고화질의 이미지를 만들어 복제하는 기술 등이 결합해 원본에 가장 가까운 텍스처를 구현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보유하고 있는 고미술 영인본(복제본)을 만들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1920년대 보그잡지 표지를 장식한 프랑스 삽화가인 셈(SEM)의 표지들을 카렌다로 만들었다. 당시 보그잡지 표지는 지금처럼 필름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그리는 그림 형식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구성됐다.
"CF감독 아들과 영상·인쇄 융합한 독창적인 것 만들고파"
그는 “흔히 인쇄업을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면 다양한 분야에서 인쇄가 기초적으로 필요하다”며 “선후배가 똘똘 뭉쳐 역량을 모으고, 지혜를 모은다면 인쇄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