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블루보틀까지 손뻗친 구글, 한국서는 그림의 떡

머니투데이 고석용 기자, 구경민 기자 2020.06.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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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외발자전거 탄 벤처생태계 (下)

편집자주 국내 벤처투자시장은 흔히 ‘외발자전거’에 비유된다. 투자시장에 비해 인수합병(M&A) 등 회수시장이 척박해서다. 회수시장이 여의치 않으니 투자시장이 성장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투자 여력이 큰 대기업들은 규제로 전략적 투자가 막혀 있다. K-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상당수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회사를 처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국내 벤처투자시장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본다.

글로벌 CVC 5년새 3.2배 성장…韓은 아직 '금지'
우버·블루보틀까지 손뻗친 구글, 한국서는 그림의 떡


300여개. 구글 지주사 알파벳의 자회사인 구글벤처스(GV)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활동하는 기업의 숫자다. 누적 투자규모는 450억달러(54조원)가 넘는다. IT·테크 분야부터 우버, 블루보틀 등 소비재까지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에디타스, 원메디컬 등 바이오 기업에도 투자한다. 모기업인 구글이 그리는 사업모델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구글처럼 자회사로 설립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를 통해 스타트업·벤처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CVC 투자액수는 571억달러로 5년전 대비 3.2배 성장했다. 같은기간 투자건수도 3234건으로 2.2배 늘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는 데는 재무적 실패를 감수하고서라도 연구개발(R&D)와 신사업 학습 기회로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구조하에서 직접 R&D 및 사업 다각화를 진행하는 것보다 스타트업을 투자·인수합병(M&A)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CVC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같은 전략적 투자를 하기 위해 설립한 전문 자회사다. 모기업과의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한다. 구글 지주사 알파벳은 물론 인텔(인텔캐피털), 세일즈포스(세일즈포스벤처스), 퀄컴(퀄컴벤처스) 등 수많은 기업들이 CVC를 운영하고 있다.



우버·블루보틀까지 손뻗친 구글, 한국서는 그림의 떡
미국은 물론 중국도 CVC 투자에 활발하다. 칭화대학교에 따르면 2018년 중국 CVC의 투자규모는 203억위안(2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대표 인터넷 기업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뿐 아니라 레노버, 하이얼 등도 CVC를 운영하고 있다.

CVC로 인해 벤처투자시장에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면서 회수시장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되고 있다. M&A 등 비중이 높아지면서다. 한국벤처투자 해외 VC 동향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 벤처투자 기업 중 M&A를 통한 회수는 627건으로 전체(882건)의 71%를 차지했다. M&A를 통한 회수가 3~5% 수준에 그치고 있는 국내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전세계가 CVC 주도로 스타트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대기업 자본이 벤처·스타트업계로 흘러들어가고 이를 통해 오픈이노베이션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석용 기자

중견·중소기업도 CVC로 신성장 동력 찾는다
우버·블루보틀까지 손뻗친 구글, 한국서는 그림의 떡
올초 벤처업계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예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의 비상장사)으로 불리는 프롭테크(정보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 기업 직방이 중견 건설사 우미건설과 손잡고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을 설립한 것이다.

삼성그룹(삼성벤처투자), 롯데그룹(롯데액셀러레이터)와 같은 대기업 주도형 CVC는 있지만 창업한 지 10년도 안 된 스타트업이 직접 CVC를 세우는 것은 드문 일이다. 과거 카카오가 창업 초기 CVC 케이큐브벤처스(현 카카오벤처스)를 설립했지만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대형 스타트업이 CVC를 세운 사례는 없다.

신성장 동력을 찾는 중견기업과 새로운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간에 협업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스타트업이 투자 펀드를 만든 것이라 더 관심이 집중됐다.

직방과 우미건설은 100억씩 출자해 총 200억 펀드를 만들고 CVC인 '브리즈인베스트먼트'(Breeze Investment)를 설립했다. 브리즈인베스트먼트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핀테크, 블록체인 등 다양한 프롭테크 분야의 기업들에 투자할 계획이다. 또 후속투자와 협력사업 연결까지 체계적인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직방 관계자는 "단순히 투자 수익을 위한 CVC 설립이 아니라 프롭테크 시장 확대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견기업들도 CVC를 통한 오픈이노베이션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선박부품 제조 중견기업 선보공업이다.

선보공업은 2016년 기업의 미래 먹거리 등 신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2세인 최영찬 대표가 선보엔젤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선보공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서다.

현재 설립 4년 차에 접어든 선보엔젤은 선보공업처럼 혁신이 절실한 부산의 중견기업들이 너도나도 투자에 동참하면서 국내 최초로 중견기업이 연합한 벤처투자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특히 전통적인 산업의 혁신 수요에 초점을 맞춰 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함으로써 중견기업과 스타트업 양쪽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오픈이노베이션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선보엔젤파트너스 관계자는 "오픈이노베이션과 상생혁신 등을 통해 산업으로의 진입 가능성이 낮은 스타트업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할 기회가 적은 중견기업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건설사 호반건설은 엑셀러레이터 방법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호반건설은 사업 다각화를 목적으로 50억원을 출자해 엑셀러레이터 법인인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설립했다. 호반건설은 플랜에이치벤처스를 통해 건설 관련 디지털 콘텐츠 제작, 인공지능 기반의 3D 설계 솔루션 개발 등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직접 투자로 스타트업과 협업에 나서는 중견기업들도 늘고 있다. 실제 퍼시스는 리모델링 스타트업 아파트멘터리에 직접 투자한데 이어 로지스팟(운송), 트레바리(커뮤니티) 등 스타트업과도 사업 협력을 모색 중이다.

구경민 기자

"CVC, 문어발 경영수단 아닌 혁신 파이프라인"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CVC(기업벤처캐피털)를 활성화해야 혁신기업이 탄생한다."

2016년부터 2017년 중반까지 중소기업청장을 역임한 주영섭 고려대학교 석좌교수는 최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대기업의 CVC 도입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했다.

정부는 지난 1일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보험회사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한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나마 21년만에 푸는 것이다.

주 교수는 정부의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세계의 흐름은 배려와 공생을 화두로 내세운 '자본주의 4.0' 시대정신"이라며 "초변화 시대에 혁신 없이 생존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이노베이션의 핵심은 M&A(인수합병) 등을 통한 혁신의 공유에 있는데 CVC가 그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며 "CVC는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벤처기업이 대기업에 기술을 공유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파이프라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CVC가 허용되면 대기업이 더 비대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그건 옛날 얘기다"며 "삼성, LG 등 몇몇 대기업을 빼놓고는 해외에 나가면 글로벌 기업이 아니다. 해외에서 경쟁하려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대응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CVC를 통한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CVC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대기업의 CVC 허용뿐 아니라 추가적인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과거에는 기업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스타트업·벤처기업,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해왔다"면서 "이는 처벌이 약하기 때문인데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천문학적인 배상을 할 수 있게 법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CVC나 M&A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M&A를 R&D(연구개발)로 간주해 세제혜택을 주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기술을 돈 주고 개발해야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사올 수도 있다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M&A를 R&D(연구개발)로 간주해준다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할 것이고 CVC를 통한 M&A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고 했다.

주 교수는 M&A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스타트업 CEO들도 기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며 "지분을 지키고 기업을 유지하려고 10년, 20년 기다려 IPO를 하려고 한다. 그런 생각이면 혁신을 이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대로 "미국 스타트업은 대부분 IPO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했다. 기술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한 기술을 유지하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IPO보다는 오히려 M&A를 목적에 두고 창업을 한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예를 들어 전체 기술을 다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을 타깃으로 한다면 구글이 필요한 기술만을 개발해 구글에 팔고 또 다른 기술로 창업을 한다"며 "이 같은 미국 생태계를 한국 기업이 따라가게 되면 국내 벤처 생태계는 활성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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